이야기舍廊/詩 읽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취몽인 2019. 6. 21. 16:29

 

시선집은

한 호흡으로

한 시인의 세월을

따라갈 수 있어 좋다.

 

무료한 오후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정호승 시선집을 읽었다.

 

시인은

분노하고

절망하다가

사랑한다.

 

시선집을 읽기 전에

나는 사랑하는 시인을 주로 알았다.

거꾸로 안 셈이다.

 

잘나가는 시인의 시를

나는 통속이라 미워했었다.

사랑의 꽃이

고통의 뿌리로부터 비롯된 것을

제대로 몰랐던 탓이다.

 

하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요즘도 나름 이유가 있으니

오래 미안해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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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소년 /정호승

 

 

별들에게 껌을 팔았다

지게꾼들이 지게 위에 앉아 떨고 있는

서울역에서 서부역으로 가는 육교 위

차가운 수은등 불빛이 선로 위에 빛나는 겨울밤

라면에 만 늦은 저녁을 얻어먹고

양동에서 나온 소년

수색으로 가는 밤기차의 기적소리를 들으며

별들에게 껌을 팔았다

밤늦도록 봉래극장 앞을 서성거리다가

중림동 성당의 종소리를 듣는

겨울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