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시가 내게로 왔다 2 / 김용택 엮음

취몽인 2020. 9. 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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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비


아무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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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놓은 시집을 모두 다 읽었다.
언젠가부터 詩를 공부 삼아 읽었다 싶다.
헛된 일이다.
詩한테 미안한 일이다.
당분간 시집을 사지 않기로 한다.
쟁여놓은 詩만 다시 읽어도 몇 년을 걸릴 일.
이젠 공부하지 말고 다시 감상하기로 한다.
詩는 제가 오고 싶을 때 올 것이다.
좋은 시인이 고른 좋은 詩부터 다시 읽는다.
시집 한 권에 마음 울리는 詩는 겨우 몇 편,
고르는 수고를 고수에게 맡기면
시집 한 권 매 쪽마다 가슴 뛸 수 있으니
어찌 이만큼 경제적일 수 있겠는가?
이제 그만 詩 앞에서
머리를 풀고 마음을 열자.
바다를 모르는 나비가 어찌 깊이 닿을 수 있겠는가
그저 출렁이는 파도나 구경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