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순간의 꽃 / 고은
취몽인
2021. 8. 16. 19:57
순간의 꽃 / 고은
*
이 세상이란
여기 나비 노니는데
저기 거미집 있네
*
책을 미워한다
책 읽는 놈들을 미워한다
이런 놈들로
정신이 죽어버렸다
밥그릇들 포개어진 식당같이 빈 돼지우리같이
*
방금 도끼에 쪼개어진 장작
속살에
싸락눈 뿌린다
서로 낯설다
-고은 <순간의 꽃>.문학동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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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眼
33년생.
작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와 동갑.
중질도 하고, 민주투쟁도 하고, 문단 상석에서 갑질도 하고, 아니 어쩌면 갑질도 되고..
한 세상 걸쭉하게 산 사람. 그 걸쭉함 덕에 말도 詩처럼 대우받았을지 모르는 사람. 왠지 불편했던, 그래도 매년 이 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노벨상 변죽이 된 사람. 솔직히 글빨은 좋은 사람. 영산강 하구 닳은 물처럼 보여 그간 그 詩 별로 안 읽고싶었던 사람.
詩眼
별로 안 읽어봐 잘 모르는 詩.
어쩌다 읽어보면 재주는 좋아. 깊이도 좋아. 가끔은 얕아. 결정적으로, 그 시절 그 곳에서 빛나는 법을 알아. 만인보, 재주 부리기 좋은 소재. 영산강 하류, 폭 넓은 강물에는 특별한 빛이 없어. 김수영이 살았으면 뭐라 씹을지 궁금. 환속한 땡중의 동안거 흉내내기가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섵부른 도에 속지 않기를. 그래도 평생 갈고 닦은 재주는 훌륭함. 깊이는 알 수 없으되 깊어 보이고 싶은 마음은 분명함.
心眼
한참 어린 후배 시인의 분노와 좌절에 소송을 건 단 하나의 사실로 보건데 알콜중독자, 명예중독자 이거나 노망이 들었다 생각됨. 그렇지 않다면 한국 문학의 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