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스크랩] 성북동 비둘기

취몽인 2007. 11. 20. 17:04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김광섭 (한국 시인)  [金珖燮]    1905. 9. 22 함북 경성~1977. 5. 23 서울.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고뇌와 민족의식을 관념적으로 읊다가 

                           차츰 구체적인 현실을 노래했다. 시어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본관은 전주 호는 이산(怡山).

출처 : 사랑, 그 그리움들
글쓴이 : 旼省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