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 2743

유월

. 유월 * 친구 어림도 없는 시애틀에서 친구가 왔습니다. 멀리서 온 것 만큼 먼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세월이 그냥 가는 건 아니었고 소주는 여전히 무책임 했습니다. 판단이란 건 다 틀렸더군요. * 사람을 오래 만나면 다음 하루는 힘들다. 예의는 체력을 먹고 차려진다. * 잘 지낸다. 큰 근심도, 대단히 아프지도 않고 혼자서 잘 지낸다. 보고싶은 사람은 오래 참다가 간신히 보고 그리고 후회하며 잘 지낸다. 빈 방에 혼자 앉아 잘 지낸다, 스스로에게 소식을 전하며 나도 잘 지낸다. * 오늘은 아무 일도 없는 날 시집 한권 내고 나니 뚝 끊어진 詩 아쉽진 않아 사람 마음 다 거기서 거기 슬픔은 지난 세월 속에 맺혀 있으니 또 언제고 스멀스멀 기어 나올 테니 * 부모님 두 분 인천 앞바다로 떠나신 뒤론 비만 ..

돌담 풍경

. 돌담 풍경 / 김재덕 겨울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희미한 남쪽 바다 멀리 낮은 섬 웅크린 대평포구 무뚝뚝한 절벽까지 아무도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장작 옮기는 사내 입 다문 검둥 개 겨우 파란 마늘밭 낮게 엎드린 마당까지 모두 슬픈 줄 알았습니다 울타리 넘은 바람 한 줄기 코끝을 지납니다 가느다란 스침을 따르는 조용한 미소를 봅니다 참 낮은 목소리들이 들렸습니다 바다는 잘게 소근거리고 섬은 두근거립니다 풀잎도 설핏 인사를 건네고 절벽은 푸르게 웃습니다 아, 그것은 조용한 대화였습니다 돌담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선 수 많은 수평들이 귓속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 마음을 눕혀 놓고 돌아 왔습니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