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새로운 자유 50

사다리 경제학

사다리 경제학 한때는 집집마다 사다리가 있었다. 지붕에 올라갈 일이 있으면 뒤란에서 들고 와 세웠다. 높이가 모자라면 장대와 각목을 덧대면 더 올라갈 수 있었다. 누구나 올라갈 수 있었다. 요즘은 A자 모양 알루미늄으로 만든다. 높이가 모자라면 펼쳐 두 배를 만들어 이층에도 올라갈 수 있다. 집에는 없고 사람을 사면 사다리도 따라온다. 올라가는 일에도 돈을 줘야한다. 아무나 올라갈 수는 없다. 지붕에 올라간 사람들이 사다리를 치워 버리기도 한다. 다시는 내려갈 일 없노라 절대로 올라올 수 없노라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저 올려다볼 뿐 그 위에서 뭔 일이 있는 지 알 수도 없다. 아무도 올라갈 수가 없다. 높은 곳은 높은 이들의 소유다. 사다리는 이제 떡볶이 값 치를 사람 정할 때만 필요하다. 220404 수정

충혼탑

. 충혼탑 기억 나니? 주머니에 차비밖에 없어 어렵게 불러낸 너와 버스를 타고 갔던 앞산. 가을이 끝나가고 있어서 산은 붉고 길은 바람 같은 잎들이 불고 있었지. 종점 못미쳐 내려 몇 번이고 잡으려는 손을 뿌리치는 너를 앞세우고 걸었던 산길.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아찔한 마음이 우리를 잇고 있던 길이었지. 우리가 왜 그 긴 계단을 올라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 다듬어진 화강석 풍경이 마음을 끌었던가? 忠魂, 애국자들의 영혼이란 말이겠지. 앞산 아랫춤을 걷어올리고 뾰족하게 발기한 계몽의 탑을 향할 때에도 우리의 연애는 아직 흥분하기엔 어렸는데. 너는 그저 양쪽으로 뻗은 난간을 따라 웃으며 걸었는데. 정의나 혁명을 약간의 흥분을 동반한 잘난 척으로 쓰고 있던 대학 일 학년. 대학생 오빠와 데이트하는게 신기..

말똥구리

. 말똥구리 최소한 지금 당신 눈에 보이는 만큼 이 별은 속을 털렸다 역사를 뒤져 탄을 캐고 기름을 뽑고 쇠를 끄집어내고 구리를 파내고 돌을 덜어내고 물을 퍼내고.. 이 별의 속은 파먹은 수박 한 통이다 빈 속으로 부글부글 앓는 중이다 본능적인 당신은 딛은 발밑이 꺼질까 부지런히 다진다 두 발로 네 바퀴로 삽으로 포크레인으로.. 생각해보라 비면서도 도무지 작아지지 않은 이 별의 속내를 말똥구리 같은 당신이 꺼낸 것들을 타고 입고 태우고 먹고 싸는 사이 속 없이 보이는 이 별이 그 깊은 허방을 다져 역시 끄집어져 나온 당신들을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빈 속으로 다짐하고 있는지 200723

. 힘 . . 한 며칠 소주값이나 벌어보자 남들 다 한다는 주식을 해봤다 남들 다 번다는 돈은 못벌고 눈알 빨개지고 마음만 뒤숭숭해졌다 늘 하듯 책은 읽었으되 마른 바닥에 다 튕겨져 버렸고 언제 뭘 쓴 적이나 있었던가 머리 속이 뻘밭이다 돌이켜보면 이런 일 솔찮이 있었더랬다 입술 꿴 미늘 가느다란 힘에 썩은 내장 뿌리까지 끌려나오던 그런 일 201212

카트리지 경제학

. 카트리지 경제학 인쇄도 되고 복사도 되고 스캐너도 되는데 프린터 값 단돈 10만원 두 달 겨우 쓰는 프린트 잉크 카트리지 1세트는 물경 8만원 잉크값에 2만원만 보태면 새로 살 수 있는데 기계를 버리는 건 왠지 아까워 로스리더(loss leader)라고 하지. 약간 개념이 다르지만 미끼상품이라고도 하고. 한 때 백화점에서 배추 한 포기를 백 원에 팔았던 일 기억해? 문도 열기 전에 아줌마들이 줄을 섰었지. 한 포기 이천원 하는 배추 두 포기를 이백원에 사고 삼천팔백원 벌었다 쾌재를 부르던 아줌마들은 백화점을 나설 때 애초 생각지도 않았던 뭔가를 잔뜩 사고 십만원도 넘는 돈을 백화점에 지불하고 나오지. 삼천팔백원 벌었다는 기쁨에 빈지갑쯤은 아랑곳하지 않지. 기계는 단숨에 돈을 번다 그 기계를 움직이게 ..

사다리의 경제학

. 사다리의 경제학 장대를 세로로 양쪽에 놓고 팔뚝 길이 각목을 일정 간격으로 못박아 사다리를 만들었다 지붕에 올라갈 일이 있거나 처마에 전깃불을 달 때 집 뒤에 눕혀 놓은 걸 들고와 세웠다 높이가 모자라면 장대와 각목을 덧대면 올라갈 수 있었다 누구나 올라갈 수 있었다 요즘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A자형으로 세워 도배할 때 쓰기도 하고 높이가 모자라면 펼쳐서 두 배를 만들어 이층에도 올라갈 수 있다 집에는 없고 사람을 사면 사다리도 따라 온다 올라가는 일에도 돈을 줘야한다 아무나 올라갈 수는 없다 어떤 곳에선 옥상에 올라간 사람들이 사다리를 치워버리기도 한다 다시는 내려갈 일 없노라 외치기도 하고 절대로 올라올 수 없노라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러면 그저 올려다 볼 뿐 그 위에서 뭔 일이 있는 지 알수도 ..

3%의 경제학

. 3%의 경제학 초면이지만 상관없다 하늘에서 땅으로 바닥에서 허공으로 부지런히 오가기만 한다면 껍데기라도 괜찮다 모니터 가득 붉게 푸르게 숨쉬는 이름들 가쁜 호흡일수록 좋다 솟았다 곤두박질 치면 따라가 뒷덜미를 잡는다 한 동안 우물쭈물하는 놈 다시 치솟으면 던지고 더 쳐박혀도 던진다 10%가 될 수도 있지만 3%면 멈춰야한다 남들이 5%를 기다릴 때 먼저 돌아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다 잃어도 3%다 인생, 꼬박꼬박 3%씩 이겨본 적 있는가 2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