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457

사과

. 안녕을 위해 내키지 않는 사과를 했다. 좋은 분의 불편을 덜어드리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세요? 김재덕입니다. 우선 죄송하단 말부터 드립니다. 지난 열흘 이리저리 생각을 해봤지만 저간의 사정과 관계없이 제 표현들이 많이 무례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말투가 있듯 글에도 글의 투가 있을텐데 그 투가 제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발끈했습니다. 그게 국장님 스타일의 유머일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입장을 바꿔 국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호의의 표현을 삐딱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의 옹졸함이 막말을 확대 재생산했던 건 부인할 수 없고 그로 인해 마음을 상하게 해드려 다시 한번 사과 드립니다. 선을 넘으셨다 하셨으니 다시 돌이키기는 쉬지 않겠지만 사과는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2021년 10월 ~

. 2021년 10/1 실업자 첫날. 추석이다. 어머니 돌아가신지 일 주일이다. 아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할 일도 없다. 그저 불쑥불쑥 돋는 서러움 같은 것만 목구멍속으로 우겨넣기에 급급하다. 10/2 동생도, 아이들도 다 제 집으로 돌아가고 아내와 둘이 비빔냉면과 갈비탕을 사먹었다. 신호 위반 딱지를 뗐고 낮잠을 자지 않으려 애쓴다. 실업자에게 잠들지 못하는 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아내와 개인택시 차량을 새것으로 살것인지 중고로 살것인지 의논했다. 새차를 사라한다. 평생 한번쯤은 새차를 탈 자격은 있다 말한다. 과연 그런가? 10/5 어머니는 법적으로 세상에서 말소되었다. 주민등록이 지워지고 호적은 여백이 되었다. 어머니 이름으로 진 빚을 갚았다. 어머니 이름으로 된 돈들은 법이 아직 인출을..

목숨

. 목숨 겨우내 사무실은 추웠다. 낮에는 난방기와 난로를 켜고 지냈고 저녁에는 따뜻한 집으로 퇴근했다. 난방이 꺼진 빈 사무실은 밤새 더욱 추웠을 것이다. 그 싸늘하고 어두운 곳에서 몇 그루 식물은 대책없이 떨었을 터 주인이 돌아와 온기를 켜줄 아침을 기다리며. 겨울은 조금씩 끝이 보이는데 황금죽은 허리가 시들어가고 금전수는 여기저기 잎이 얼었다. 저 친구들이 다시 살 수 있을까? 잎을 만져보면 싸늘한데. 빈 응접실에 난방을 최대한 틀고 더운 바람이 쏟아지는 길목에 세워놓았다. 언 손 녹이고 조금만 더 견뎌달라 부탁한다. 지금만 지나면, 내년 겨울엔 꼭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겠다 약속한다. 부디 죽지마라. 목숨이여.

총무

. 재경동창회 총무가 됐다. 이제 대부분 환갑이 된 고등학교 친구들. 연락이 닿는 서울 사는 이의 명단이 180명. 핸드폰에 연락처를 입력하는데 한참 걸린다. 익숙한 이름도 있고 모르는 이름도 많다. 동기 중 한 7%는 세상을 떠났다 한다. 뭐 특별한 일이야 있으랴. 경조사 연락하고, 가끔 모임이나 주선하고, 회비나 독촉하면 되겠지. 그래도 이 나이쯤에서 오래된 친구들에게 합법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음에 의의를 둔다. 보청기 영업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속셈은 비밀이다.

틱낫한스님

. #틱낫한스님 이 분 신세를 평생 지고 있다. 지금도 마음이 날뛸 때면 깊이 들이쉬며 .. 마음엔 평화 천천히 내쉬며 .. 얼굴엔 미소 거듭 하며 나를 찾는다. 오늘 우리와 입장을 달리하셨지만 내가 숨 쉴 때마다 곁에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책 한 권이 평생 삶의 지침이 되는 일은 귀하다. 나는 크리스찬이고 예수와 4복음서를 오래 끼고 살고있지만 잘 살기 위해 거듭 내쉬고 들이쉬는 숨은 틱낫한의 가르침을 따른다. 사랑은 예수의 것이고 평화는 틱낫한의 것이다. 내겐 220122

손목

. 손목 주말에 잠깐 일탈 떠났다 삐긋 손목에 탈이 났다 가만 있으면 괜찮은데 뭔가를 들어올리려면 아프다 목이라는 이름 팔목 발목 손목 (머리)목 어디론가 가는 길목들은 제방향에서 모질게 어긋나면 아프다 한 이틀 조신하게 살펴보고 시원찮으면 병원에 가자 생각중이다 다음 주 김장 울력인데 그때까지 안나으면 마눌한테 민폐다 손에게도 팔목에게도 길목을 불편하게 해서 미안타 201109

유산

. 유산 실업급여의 시간이 지나고 내년 삼월쯤 개인택시를 하겠노라, 그걸 내 마지막 직업으로 삼겠노라 마음 먹고 있었다. 개인택시 면허 조건이 내년 1월부터 완화 적용되므로 단기적으로 면허가격이 오를 것이다. 현재 8천만원 정도인 시세가 1억 가까이 오를 전망이다. 1억. 큰 돈이다. 어떻게든 대출을 끌어서 마련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가시면서 그 돈을 내게 남기셨다. 물론 집에 묻혀있는 돈이고 혼자인 동생을 위해 더 많이 줘야하지만 개인택시 면허만큼은 내 몫으로 돌아왔다. 1974년, 아버지가 대구 두류산밑에 지은 우리 식구들의 첫 집. 그 집이 고덕을 거쳐 상계동까지 왔다가 내 노후 삶의 밑천이 된다. 그렇게 내 부모는 끝까지 나를 챙겼건만 나는 그분들에게 뭘했는지.. 어머니 장례..

집행유예의 시간

. . 집행유예의 시간 9/1 오후 1시. 한 달의 시간. 권고사직에 따른 1개월 유급휴가의 첫날. 미리 세워둔 시간 계획표에 따라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 마음이 거부하는 운동, 몸을 끌고 겨우 하는 척만. 김종철선생의 책 60쪽, 아폴리네르의 두 편을 황현산선생을 따라 읽었다. 詩의 길을 조금 배운듯. 순서를 바꿔 오후에 볼 영화를 오전에 미리 봤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그래비티. 라면에 밥 말아먹고, 세탁기 빨래 돌려 널고. 동생 생일. 손 다친 어머니 안부전화. 온 식구가 아프다. 하루도 아프단 소리 안 듣는 날이 없다. 마음이 아프다. 일 주일은 이렇게 은둔하기로.. 페북도 안본다. 9/2 오전 11시. 책을 읽고. 내 글의 방향성에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곧 그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회의에 ..

180317

이유도 잘 모르면서 미안하다 그런 꼴이 싫어 화를 냈다. 나도 그 따위 내 모습을 싫어한다 띄엄띄엄 당신이 하는 말을 생각하면 요즈음이 당신에겐 어려운 시절 같이 만든 세월이지만 당신 혼자에게 남은 흉터 같은 것 그런 줄 잘 몰랐다 이런 말도 당신한테는 잘난 적이겠지 나는 내가 싫다 왜 여기 있는지, 왜 이 꼴로 있는지 나 혼자 이 따위로 사는 지 왜 가족까지 괴롭게 하는 지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그럴 수도 있었는데 나는 지금 왜 여기 있는 지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힘 들었을 젊은 날 당신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꿈 속을 사는 남편을 보는 당신 아직 완전히 나는 꿈을 벗어나지 못한 가장이고 당신 남편이다 그건 죽을 때까지 힘들지 않을까 미안한 일이다 사랑을 기본으로 한 배려, 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