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않는 꽃 피지 않는 꽃 봄 지나고 한 여름인데 때 아닌 제비꽃 한 떨기 맺혔습니다 나비도 벌도 높이 외면하는데 지난 한 철 화사했던 기억을 못잊었나 입다문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뒤늦은 할 일 꼭 해야 한다고 꽃잎 닫고 둘이서 부둥켜 안았습니다 아무도 안와도 누구도 못봐도 괜찮답니다 피.. 詩舍廊/GEO 2020.04.08
큰 나무를 생각함 1. 큰 나무를 생각함 1. 뿌리는 시작일까 끝일까 햇빛은 닿는 것일까 떠나는 것일까 나무 한 그루 서있다는 것 수직은 위를 향함인가 아래를 향함인가 내려오는 것이 생명인가 올라가는 것이 삶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비뚤어진 동심원 나이테 한 줄이 목숨인가 수직이긴 한 것인가 누구를 위.. 詩舍廊/GEO 2018.01.26
꽃 걱정 꽃 걱정 봄이니 피는 꽃이니 보긴 좋아도 그저 좋은데 봄비에 성긴 꽃잎 지니 어둠 속에 걱정이 젖는다 봄이니 꽃잔치 한다는데 빈가지만 쓸쓸하니 우짜면 좋노 봄 내내 꽃 대목 기다린 뚝방 점빵 곰보 할매 우짜면 좋노 20170406 詩舍廊/GEO 2017.04.06
분꽃 2 분꽃 2 하얗게 질린 폭염경보가 액정에 부르르 뜬다 서쪽으로 난 문틈새로 흰 칼이 사선으로 꽂혔다 담배 냄새로 찌든 네 시가 눅진하게 깜빡인다 이제는 조카놈 고추끝 같은 어둠을 걷을 시간 162805 詩舍廊/GEO 2016.08.05
감자 감자 선한 얼굴에 쿡 접힌 웃음 덜 익은 막 동생이 참외 박스 가득 감자를 보내왔다 한 알 집으니 일천한 농투성이 옹이 맺힌 흙 한 줌이 손을 덥석 잡으며 한 마디 건넨다 형님, 잘 사이소 20160624 詩舍廊/GEO 2016.06.24
고구마 두 개 고구마 두 개 널 깎아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한 개에 천이백원 먹기엔 너무 비싸 널 뽑아 돌려보낼 생각도 없어 벌써 일주일 무슨 생각을 하는거니 머리를 풍덩 꼬나박고도 도무지 눈을 뜨지 않는 건 봄을 기다리는 거니 길이는 미리 준비해 두었어 발만 내밀면 되 그러면 넌 떠날 수 .. 詩舍廊/GEO 2015.03.12
앵두나무 앵두나무 반 빚으로 처음 산 내 집 한 뼘 앞마당에 마른 앵두나무 있었다 내 키 만한 가는 줄기 여럿 솟아 한 아름 생뚱맞게 있었다 몇 년 담배 피러 나와 몰래 오줌도 주고 가지도 솎고 공을 들였다 어느 봄 눈 쌓이듯 꽃 터지고 피 맺히듯 쏟아진 앵두 이름 그대로 단 맛 신 맛 조금 입안.. 詩舍廊/GEO 2014.11.18
숲길을 걸으며 숲길을 걸으며 높이 사이로 굽어지는 좁은 길을 걷는다 연두가 초록에 굴종하는 여백을 뚫고 슬쩍 기운 둥치들이 끝없다 비 젖은 길은왼쪽으로 휘며 표정을 감춘다 숲은 여전해도 갈 곳을 알 수 없는 내일 걸어 온 길도 이 숲 속 구비진 흔적 완고히 솟은 이들 사이로 참 오래 걸어왔다 그.. 詩舍廊/GEO 2014.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