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95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보셨나요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보셨나요 ​ 빈집 바람벽에 빈 가방 하나 시꺼멓게 걸렸다. 한쪽 손잡이 끈만 저물녘 대못질의 벼랑끝에 매달렸다. 잔뜩 벌어진 지퍼. 고성방가다. ​ 위의 시는 문인수 시인의 적막소리라는 시집에 실린 ‘가방’이란 시의 일부다. 지퍼가 열린 채 벽에 걸린 낡은 가방을 보면서 시인은 고성방가의 소리를 듣는다. 이 고성방가는 물론 귀로 듣는 실제 소리가 아니다. 그저 시인의 마음 속에만 들리는 아우성이다. ​ 우리는 소리를 귀로 듣는다. 그러나 간혹 시인들이나 종교에 심취한 성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우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도를 하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는 내용을 뉴스를 통해 접할 때도 있다. 특별한 ..

비루한 독서

. 13명의 한국 소설가와 6명의 아시아권 작가들이 나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이 책의 독자는 과연 누구일까? 좀 더 엄밀히 따져 이 책의 마케팅 타깃은 누구일까? 아마 글 쓰기를 하고 있거나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 사실은 시나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 범위가 달을 둘러싼 달무리 정도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당장 나만 해도 자선 바자회 헌책 판매코너에서 이 책을 굳이 고른 이유가 내 글을 쓰는 데 무슨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였으니. 시집은 이제 시인이 되고 싶어하는 또는 시인을 동경하는 얼치기 딜레땅뜨들이 없으면 아무에게도 팔리지 않는다. 이 좁은 땅에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하는 사람 8만명이 잘 나가는 소수의 시인을 잘 나가게 ..

나는 왜 왼쪽에서 비롯되었는가?

나는 왜 왼쪽에서 비롯되었는가? 변변치 않은 시집을 한 권 내고 나니 여기저기서 묻는 사람들이 좀 있다. 왜 시집 제목이 ‘나는 왼쪽에서 비롯되었다’ 인가? 모름지기 시집 제목이란 시집 전체 또는 시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일 거라고 짐작하는데 이 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일 클 것이다. 스스로 좌빨아라는 고백인가? 하는 의심이 제일 클 것이다. 보수 꼴통의 도시 내 고향 친구들의 경우는 거의 그렇게 단정하고 있는 것 같다. ^^ 그 생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다. 내 정치성향은 온건 진보이니 왼쪽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시집 제목은 위의 정체성 대변이외에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으면 좋다. 평생 광고쟁이로 살아온 내가 그걸 모르겠는가? 그 점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고 할 수 있으려..

봄나들이

. #봄나들이 사월 끝날과 오월 첫날에 걸쳐 봄나들이를 다녀왔다. 서울서 출발 옥천의 #박기영 시인 책들이겸 옻순잔치에 가는 길의 산천은 앳띤 청년의 푸르름이 가득했다. 난생 처음 온갖 옻순요리를 맛보고 그간 페북에서만 봤던 인연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가져간 시집 몇 권 건네고 또 몇 권 받아오기도 했다. 생각 같아선 오신 분 모두에게 드리고 싶었으나 면구해서 말았다. 페북에서 객적은 소리 심심찮게 하는 신휘시인은 산속 노을 같았다. 좋아요 100개가 무색하게 진중한 농부시인의 시집 #추파를던지다를 욕조에 뜨건 물 받아 땀 빼며 읽는다. 역시 반가웠던 초설시인, 낯선 나를 정말 반갑게 대해줘서 큰 빚을 진 느낌이다. 태동기와 계단, 먼 옛날의 힘이 크다. 상봉형도 보고 내 시집 내준 곰곰나루 박덕규선배도..

봄의 생일

봄의 생일 - 봄의 생일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우리 집 용어를 빌리면 봄 생일이다. 음력 3월 7일. 좋은 봄날에 태어났다. 아내는 생일이 또 한번 있다. 양력 11월 7일. 주민등록상 생일이다. 나와 결혼한 이래 공식적인 생일로 챙기는 날이다. 비정상에는 늘 사연이 있다. 멀쩡히 국립대 상대를 나와 대기업에 턱하니 입사를 한 잘난 아들이 어느날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 맏딸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경악했다. 그러나 자식을 이길 재주는 없고 결혼을 시킨 후 어머니의 뒤끝은 매섭고 오래 갔다. 나는 9월이 생일이다. 마뜩치 않은 며느리가 아들하고 동갑인 것도 싫은데 생일도 더 빠르다. 마침 그 며느리 주민등록 생일이 11월이다. 앞으로 네 생일은 11월로 해라. 남편 ..

화환

. 화환 얼마전 서초동 대검청사앞에 윤석렬총장을 응원하는 화환 수백개가 늘어서 진풍경을 이뤘다는 뉴스를 봤다. 애국자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모여 꽃다발의 장사진을 차렸다니 가히 훌륭한 나라다. 花環. 꽃으로 만든 큰 가락지. 무슨 경사를 축하하는 자리나 슬픔을 위로하는 자리에 가면 들어서는 길목에 죽 늘어선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진심 여부와는 관계없이 당사자의 위세 정도에 따라 헌상하는 이들의 숫자가 결정되고, 따라서 길이나 규모로 세도를 가늠하기도 하는 성공의 척도, 화환. 최근에는 업자들이 네트워크를 이루어 주문은 전국 각지에서 해도 제작과 배달은 도착지와 가장 가까운, 화원도 아닌 조립 공장 같은 곳에서 일괄 제작되다보니 한 곳에 늘어선 화환 수십 개가 다 똑같은 꽃, 똑같은 리본, 똑같은 ..

지난 시간의 메모

. 메모장에 이런 글이 남아있다. 지금 나는 이미 환갑인데. 얼마전 만 58년의 삶을 꽉 채운 생일이 지났다. 우리 나이로 치면 내년이면 예순이 된다. 60세, 상상도 못했던 세상이 내 앞에 오는 것이다. 환갑, 영감, 할배, 뒷방, 퇴물, 은퇴, 뭐 이런 단어가 앞으로 두 달 뒤에 나를 자연스럽게 수식하게 되겠지. 아니다, 나는 아직 아니다 하고 외쳐도, 실제 조금 성급할 지라도 장강의 뒷물은 어쩔 수없이 나를 떠밀 것이다.

끝에는

. #끝에는 사진은 이집트 피라미드를 위에서 찍은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본 뾰족한 끝은 저렇게 좁지만 평면인 공간으로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왜 끝까지 뾰족한 꼭지점으로 만들지 않았을까요? 혹시 꼭대기에 오를 사람을 위한 건 아닐까요?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올 신의 자리일까요? 출근은 했지만 아무 일도 못하고 앉아 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벨라차오가 흐르네요. 사지로 떠나는 파르티잔의 노래. 우크라이나 생각도 나고 선거판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 생각도 납니다. 절대 상상도 하기 싫은 무뢰한, 무뇌인의 당선 가능성이 불쑥불쑥 불안을 일으킵니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집채만한 큰 돌을 옮겨 피라미드를 쌓은 건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유와 정의를 쟁취한건 아내의 눈물을 뒤로 하고 집을 떠난 파르티잔의 행동이..

즐거운 시간

. #즐거운시간 왠만해선 일요일에 약속을 하지 얗는다. 일주일에 하루 아내가 있는 집에서 뒹구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저녁 약속이 생겼다. 거절할 염치가 없어서.. 늘 그렇듯 약속장소에 50분 정도 일찍 도착하서 근처 커피숍을 찾아 혼자 커피 마시며 쪼끄마한 문고판 책을 읽는다. 평생 차 없이 외출할 땐 책 한 권을 들고 다녔다. 손에 들고 다니는게 귀찮아 주머니에 집어넣기 좋은 문고판을 가지고다닌다. 오늘은 언저 샀는지,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없는 범우문고 릴케를 들고 나욌다. 마지막까지 이태준의 무서록과 경합했다. 몇 쪽이나 읽을지, 언제 다시 읽을지는 알수없다. 220227

잊지말아야 할 것들

환갑이다. 60년을 살았다.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턱없이 짧을 것이다. 얼추 따져보면 길게 살면 20년, 하지만 앞으로 10년 내에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가 됐다. 10년, 3,650일. 지금처럼 하루하루가 속절없이 지나가는 속도를 생각하면 금방 다 까먹을 수 있는 숫자다. 아껴서 잘 써야할 숫자이기도 하다. 지극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꿈 같다. 상투적이라는 말은 결국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히 느낀 사실이라는 뜻도 된다. 모두들 꿈 같은 세월을 살다 뒤돌아보고 뒷걸음으로 걷다 뚝 떨어져 이 생을 마친다. 꿈은 그렇게 툭 깨거나 아연 끝나는 법이다. 타고난 유약함과 게으름으로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란 건 해보지 못했다. 늘 누군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