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숟가락 늙은 어머니 혼자 사는 집에는 아직도 어린 내가 여기저기 숨어 있다 아내와 함께 싱크대 청소를 하는데 숟가락 하나 눈에 띈다 둥근 볼이 깊고 손잡이도 길게 둥근 삼십 몇 년 전 고향 떠날 때 굳이 따라온 고봉밥 퍼먹던 열 몇 살 시절 끼니 오래 밥 구경 못한 녀석을 위해 고프지 않은 밥 한 술 떴다 200417 詩舍廊/애완事物 2020.04.17
피지 않는 꽃 피지 않는 꽃 봄 지나고 한 여름인데 때 아닌 제비꽃 한 떨기 맺혔습니다 나비도 벌도 높이 외면하는데 지난 한 철 화사했던 기억을 못잊었나 입다문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뒤늦은 할 일 꼭 해야 한다고 꽃잎 닫고 둘이서 부둥켜 안았습니다 아무도 안와도 누구도 못봐도 괜찮답니다 피.. 詩舍廊/GEO 2020.04.08
칼춤 칼춤 말하지 않으니 사방을 베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늘 조심하며 얼굴 내미는 승강기도 이마를 깔고 앉았다 내려가는 물 소리도 현관문의 꼬르륵 허기도 사정없이 베는 둔각의 날 빈 곳 마다 그어진 칼자국 안으로 찌르며 도는 동그라미 언제나 피 흘리는 칼끝 과도한 휘두름에 잘린 그림.. 詩舍廊/~2021습작 2015.03.16
풀 풀 함석 지붕 끝에 풀 한 포기 비 오고 먼지 젖어 흐르다 끝에 맺힌 끼니 목숨 붙들 뿌리나 있을까 파란 하늘 끝에 바싹 마른 새 한 마리 2013. 9. 30 詩舍廊/GEO 2013.10.02
자존심 자존심 삼십년 묵은 은행나무 집 가렸다 허벅지 잘렸다 담벼락 타고 호박 넝쿨 나무를 탔다 그래도 삼십년 발목 틀어 호박잎 만한 잎다발 피워 뭉특한 생명 지키고 있다 2013. 9. 30 詩舍廊/GEO 2013.09.30
풀 한 포기 풀 한 포기 진국 다빠진 화분 하나 줏어다 남은 과꽂씨 몇 알 뿌려뒀더니 근본 모르는 풀 한 포기 탁란으로 불쑥 솟았다 한 줌 중 겨우 틔운 과꽃 두 싹 애지중지 물 주다 툭 바라보면 염치없이 혼자 키 큰 녀석 어깨 떨구고 먼 산만 본다 이름은 모르지만 길섶에서 많이 본 녀석 어쩌다 구.. 詩舍廊/GEO 2013.07.28
물 세 방울 물 세 방울 베란다 옆 화분 하나 하늘 무너지게 비 내려도 피어오르는 흙냄새 맡으며 입맛만 다신다 밤새 숨 골라 아침에 맺었던 한 방울 물이 그립다 허리에 걸린 장마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아랫춤으로 흘러내려가 버렸다 젖었던 기억까지 증발한 아스팔트 옆 가로수 아래 깨진 병 속 .. 詩舍廊/GEO 2013.07.03
플라타너스 플라타너스 오월 밤에 봄비 내린다 붉은 철쭉은 젖어 슬프고 라일락 향기는 씻겨 속상한데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의 기둥 플라타너스 첫 입술이 열린다 봄은 이 밤에야 마지막 잠을 깨누나 2013. 5. 9 / 모던카페 詩舍廊/GEO 2013.05.10
사월 사월 1. 언젠가부터 봄은 어쩔줄 모르는 계절이다 산 너머엔 아직도 눈이 내리고 꽃들은 제각기 눈치로 핀다 내일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연두색 기침을 쏟으며 아내는 꽃무늬 바지를 매만진다 2. 마른 목을 북으로 꺽고 고개만 치켜든 목련은 불편하다 그래서 목놓아 떨어지는게지 남.. 詩舍廊/GEO 2013.04.17
개나리 가족 개나리 가족 한 이틀 비 내리더니 뾰족히 고개 든 강가 개나리들 빗방울 듣듯 돋아납니다 겨우내 싸리빗살로 바람 찬 하늘을 쓸던 메마른 손 부시며 묻어납니다 하루 낮 졸린 햇살이면 지난 가을 모아뒀던 은행잎 미소 꺼내 강변 긴 길 노랗게 웃겠지요 하지만 아셔야 해요 꼬맹이들 달음.. 詩舍廊/GEO 201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