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공부할 詩 7

선한 자에 대한 심문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선한 자에 대한 심문 . . 앞으로 나오라, 우리는 그대가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대는 매수되지 않지만, 집을 내리치는 번개 또한 매수되지 않는다. 그대는 그대가 했던 말을 지켰다. 그러나 어떤 말을 했는가? 그대는 정직하고, 자기 의견을 말한다. 어떤 의견인가? 그대는 용감하다. 누구에게 대항하는 용기인가? 그대는 현명하다. 누구를 위한 현명함인가? 그대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대는 누구의 이익을 돌보는가? 그대는 좋은 친구이다. 그대는 좋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친구인가? 이제 우리의 말을 들으라, 우리는 그대가 우리의 적임을 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제 그대를 벽앞에 세우리라. 그러나 그대의 미덕과 장점들을 고려하여 우리는 그대를 좋은 벽 앞에 세우고 그대를 좋은 ..

내가 아는 자본주의 / 이문재

. 내가 아는 자본주의 손과 세계 사이에 무언가 있다. 그 무언가가 손과 세계를 배반한다. 손과 세계를 서로 모른 체하게 한다. 입과 자연 사이에 또 무엇이 있다. 저, 이, 무엇이 입과 지구를 서로 무관하게 만든다. 결국은 눈이다. 일상적으로 일상을 일상화하는 눈 일상적인 눈을 다시 일상화하는 눈 저 눈은, 이 눈을 이 시각은, 저 시선을 노예화한다 저, 이,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길은 무엇보다도 눈을 감는 것이다. 두 눈을 꾹 감고 인위적으로 코와 귀, 손과 입, 피부와 감각을 그리하여 저 옛날을, 이 온몸을 애타게 불러오는 것이다. -이문재 2014. 문학동네

재봉질하는 봄 / 구봉완

재봉질하는 봄 .................. 구봉완 염소를 매어놓은 줄을 보다가 땅의 이면에 음메에 소리로 박혀 있는 재봉선을 따라가면 염소 매어놓은 자리처럼 허름한 시절 작업복 교련복 누비며 연습하던 가사실습이 꾸리 속에서 들들들 나오고 있네 비에 젖어 뜯어지던 옷처럼, 산과 들 그 허문 곳을 풀과 꽃들이 색실로 곱게 꿰매는 봄날, 상처 하나 없는 예쁜 염소 한 마리 말뚝에 매여 있었네, 검은 색 재봉틀 아래 깡총거리며 뛰놀던 새끼 염소가, 한 조각 천 해진 곳을 들어 미싱 속으로 봄을 박음질하네 구멍난 속주머니 꺼내 보이던 언덕길 너머 보리 이랑을 따라 흔드는 아지랑이 너머 예쁜 허리 잡고 돌리던 봄날이었네 쑥내음처럼 머뭇머뭇 언니들은 거친 들판을 바라보던 어미를 두고 브라더미싱을 돌리고 있었네,..

너와집 한 채 /김명인

. 너와집 한 채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

흰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 신대철

흰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신대철 죽은 사람이 살다 간 南向을 묻기 위해 사람들은 앞산에 모여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소년들은 잎 피는 소리에 취해 山 아래로 천 개의 시냇물을 띄웁니다. 아롱아롱 山울림에 실리어 떠가는 물빛, 흰나비를 잡으러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저 아래 저 아래 개나리꽃을 피우며 활짝 핀 누가 사는지 조금씩 햇빛은 물살에 깎이어 갑니다. 우리 살아 있는 자리도 깎이어 물 빝바닥에 밀리는 흰 모래알로 부숴집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흰 모래 사이로 피라미는 거슬러오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그대를 위해 사람들은 앞산 양지 쪽에 모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