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時調 123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지금까지 열다섯 개 이빨이 빠졌다 빈 자리는 몇 없다 볼트로 채워졌다 입구는 언제나 먼저 봉쇄되는 법이다 가늘고 짧은 왼쪽은 십 년 전에 기울었다 오래 걷지 못하고 마디는 쉬 아픈데 멀쩡한 오른 어깨는 왜 반대로 기우는지 작년에는 묵은 뿌리를 바다에 버렸다 근거는 흘러갔고 가지도 늙는 중 아직은 미련하게도 욕심 몇 점 여전해 세상에 내가 속해도 세상을 이겨보겠다 꼿꼿이 고개 들고 먼 길을 바라보는데 자꾸만 울리는 소리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선 자리 흔드는 시간의 실금들 가슴에 무릎에 조금씩 그어지니 오래된 동행의 얼굴 미안하기 그지없다 220324

詩舍廊/時調 2022.03.24

자백

. 자백 내 본색은 시정잡배 오래 숨기고 살았다 비겁하나 정의로운 척 속물이면서 고고한 척 평생을 지적질 하고 내 잇속만 챙겼다 친구가 그릇되면 엄하게 추궁하고 정치에 비위 상하면 초인인 척 비웃었다 태생이 삼류인 처지 해온 짓도 다 삼류 지난 밤만 돌아봐도 얼마나 가당찮은가 울화를 쏟았지만 사실은 자가당착 본색을 어쩔 수 없으면 찌그러져나 있던지 220317

詩舍廊/時調 2022.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