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가족 그리고 기억 35

재경대고 동기회 이야기

재경대고21회 동기회 이야기 1. 1985년 겨울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일 년 쯤 됐는데 당시에 보험회사에 다니던 양의구란 친구의 전화가 왔습니다. 학교 다닐 때 한번도 본적 없었던 친구였습니다. 용무는 서울 사는 대고 21회 동기들 모임을 하니 참석하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소는 서소문 중앙일보 뒷편 김치찌개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여섯명이 모였나 오래 돼서 기억이 희미합니다. 당시 서소문에 회사가 있었던 저와 중앙일보에 다니던 김시걸, 그리고 양의구, 또 몇몇이 있었는데 생각이 나질 않네요. 그렇게 재경21회 모임이 처음 시작됐습니다. 벌써 37년전 이야기입니다. 모임을 처음 주도했던 의구는 이제 이세상 사람이 아니고 우리도 모두 환갑 나이가 됐습니다. 어..

엄마. 1주기

. #엄마 일 년 전 이 시간, 의식을 놓은지 17시간째 혼자 중환자실에 누워계셨던 엄마. 점심 면회 시간에 기적적으로 잠깐 의식을 찾아 아들과 손을 맞잡고 눈을 맞췄다. 이제 괜찮아 질거야. 아들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아들이 돌아가고 세 시간.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혼자 작별의 말도 못 건내고 떠났다.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 왔을 땐 이미 떠난 뒤. 그 정오의 시간 아들의 손을 잡고 힘겹게 바라보던 눈빛은 엄마의 마지막 인사였다. 그것도 모르는 아들에게 혼자 건낸.. 떠날 때도 엄마는 마지막 힘을 쏟아 할 일을 했고 아들은 여전히 철 없었다. 그 힘 없이 잡았던 손, 젖은 눈빛이 내 남은 생을 또 지키리. 늘 가고싶어 하신던 곳에서 잘 계시지요? 그러셔야 합니다. 엄마

자백

자백 동생의 세뱃돈을 갈취한 적 있다. 심부름 거스럼돈으로 사탕을 사 먹은 적 있다 모퉁이 가게에서 사과 한 알을 훔친 적이 있다 아버지 주머니에서 얼마간 돈도 훔쳤다 성적표를 고쳤었다 아주 자주 책값을 뚱쳤다 친구의 책을 몰래 팔아먹었다 돈을 빌려 쓰곤 갚지 않은 적이 많다 작정하고 도둑질도 여러번 했다 그 중에는 정말 비양심적인 좀도둑질도 있다 거짓말 따위는 죄목에 넣을 수도 없다 착한 소녀에게 음심을 품었다 착한 여자의 진심을 짓밟은 적이 있다 배신을 했으며 변절도 했다 고변도 했다 뇌물을 받았으며 횡령도 했다 외도도 했다 사기도 분명 쳤을 것이며 경미하지만 뺑소니도 쳤다 음주운전을 수차례 했다 적성국 주민을 신고 없이 접촉한 적도 있다 국세 체납 경력이 있고 술 취해 택시 기사 안경을 분질러 벌금..

파란만장한 우리집 #팝콘 이야기.

. 파란만장한 우리집 #팝콘 이야기. 7년전, 키우던 두 곳의 집에서 파양된 팝콘이 우리 집에 왔습니다. 처음 집에 왔을 때 분리불안이 심하고 자꾸 자기 꼬리를 물어 늘 피를 흘리곤 하는 조그만 강아지는 우리 가족들을 당황스럽게 했었지요 아픈 곳도 많아 온 지 일년만에 양쪽 다리 슬개골 수술, 대퇴골 수술, 자궁적출수술을 했지요. 그리고 제 스스로 물어 뜯은 꼬리가 결국 괴사지경이 돼서 꼬리 절반을 자르는 단미 수술까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번엔 자꾸 통증이 오는 지 비명이 잦아 병원에 갔더니 후두골 이형성증으로 인해 척수에 물이 차서 위험하다는 진단이 나왔어요. 온 식구가 고민하다가 몇 달 전에 또 수술을 했습니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요즘은 안 아픈것 같아요..

파란만장한 우리집 #팝콘 이야기.

. 파란만장한 우리집 #팝콘 이야기. 7년전, 키우던 두 곳의 집에서 파양된 팝콘이 우리 집에 왔습니다. 처음 집에 왔을 때 분리불안이 심하고 자꾸 자기 꼬리를 물어 늘 피를 흘리곤 하는 조그만 강아지는 우리 가족들을 당황스럽게 했었지요 아픈 곳도 많아 온 지 일년만에 양쪽 다리 슬개골 수술, 대퇴골 수술, 자궁적출수술을 했지요. 그리고 제 스스로 물어 뜯은 꼬리가 결국 괴사지경이 돼서 꼬리 절반을 자르는 단미 수술까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번엔 자꾸 통증이 오는 지 비명이 잦아 병원에 갔더니 후두골 이형성증으로 인해 척수에 물이 차서 위험하다는 진단이 나왔어요. 온 식구가 고민하다가 몇 달 전에 또 수술을 했습니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요즘은 안 아픈것 같아요..

건욱에게

. 형이다. 여러모로 고생 많았다. 엄마는 늘 바라시던 고통없는 천국으로 가셨다고 우리도 믿자. 그저 자네나 나나 살아 생전 호강 못시켜드린 건 우리 사는 동안 반성할 일인 것같다. 명절에 보고 이야기 하겠지만 네 형수나 조카들 앞에서 뒷 수습 이야기를 길게 하는게 싫어 내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서 말한다. 엄마는 살아 생전 늘 네 걱정이었다. 그래서 상계동 아파트를 네 삶의 기반으로 물려주고 싶다 하셨다. 기본적으로 형도 생각은 엄마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내 형편이 썩 좋지는 않아 네게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게 있다. 처음에는 아파트를 팔아서 최우선적으로 네가 살 원룸 오피스텔을 네 명의로 하나 사고 나머지 중에서 내 노후를 위한 개인택시 면허를 하나 사는 정도로 네게 양해를 구할까 했었다. ..

남편

, 남편 - 나는 이 나이 되어서 남편을 안 것 같다. 감성적이고 다소 소심해서 이기적이고 남의 편만 드는사람. 사소한 말이 없어 무뚝뚝함에 정 없이 차갑다 생각했다 ᆢ섭섭했다 지금도ᆢ 말보다 글을 좋아하고 시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반듯하고 정의롭고 따뜻한사람이다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사람 이제 보니 남편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글ㆍ그림 시를 사랑하는 따뜻한 그런 남편이다 2020. 09 29.

어머니를 떠나보낸 기록

어머니가 떠나간 얼마간의 기록 2020 8/19 느낌이 좋지 않아 이 기록을 시작한다 낡은 아파트에 혼자 누워 '나는 이렇게 꺼져가는구나.' 하고 있을 어머니. 돌아오는 일요일은 그녀 남편의 37번째 기일. 8/21 한번도 어머니를 사랑한 적 없다. 스스로 기이할 정도로. 그것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은 어머니의 책임으로부터 비롯됐다. 어머니가 죽으면 나는 울지 않을 것이고 비로소 한 자유를 얻게 되리라 생각한다. 비정한 일이지만 오래 된 일이기도 하다. 08/23 아버지 기일. 목이 아프다. 그럴 리 없지만 혹시 코로나면? 노인에게 옮기면 치명. 싸간 반찬 내려놓고 예배 대신 기도만 잠깐 하고 나왔다. 황당한 어머니 모습. 역병보다 자식들 금방 가는게 더 무서운 얼굴. 손녀에게 생전 안하던 말 한다.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