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지우개 다 깨진 속에 약을 넣는 일 지워지길 바라면서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일 생각한다 라는 말은 정말 하고싶지않은 일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지고 싶 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게 한다 지워지는 것은 생각을 이기는 일 더 센 약을 넣은 이는 이미 지워져 분노한다 지워진 사람의 분노.. 詩舍廊/明盛藥局 2020.03.23
칼춤 칼춤 말하지 않으니 사방을 베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늘 조심하며 얼굴 내미는 승강기도 이마를 깔고 앉았다 내려가는 물 소리도 현관문의 꼬르륵 허기도 사정없이 베는 둔각의 날 빈 곳 마다 그어진 칼자국 안으로 찌르며 도는 동그라미 언제나 피 흘리는 칼끝 과도한 휘두름에 잘린 그림.. 詩舍廊/~2021습작 2015.03.16
풀 한 포기 풀 한 포기 진국 다빠진 화분 하나 줏어다 남은 과꽂씨 몇 알 뿌려뒀더니 근본 모르는 풀 한 포기 탁란으로 불쑥 솟았다 한 줌 중 겨우 틔운 과꽃 두 싹 애지중지 물 주다 툭 바라보면 염치없이 혼자 키 큰 녀석 어깨 떨구고 먼 산만 본다 이름은 모르지만 길섶에서 많이 본 녀석 어쩌다 구.. 詩舍廊/GEO 2013.07.28
명자꽃 명자꽃 눈 똥그랗게 뜨고 뭘 그렇게 보니 온 천지가 꽃 난리인데 작은 가락지로 피어 무슨 약속을 기다리니 쉽게 지지 않겠다 하얀 손 단단하게 쥔 명자꽃 곱디 고운 다짐 2011. 12. 21 詩舍廊/GEO 2011.12.21
미루나무 미루나무 가로로 낮아지는 산 가로로 어는 강 가로로 누운 집들 가로로 눈이 내려 세상은 가로로 쌓이고 가로의 들판에 가로로 뻗은 길 가로로 걸어가는 사람들 가로로 찍히는 발자국 세상은 가로로 흐른다 가로의 세상에 똑바로 미루나무 한 그루 세로로 외로워 말라 너 또한 오래된 가.. 詩舍廊/GEO 2011.11.08
달팽이 달팽이 달리다 서다 달팽이 뺑뺑이 집 지고 꽉막힌 저녁의 남태령을 넘는다 앞으로도 구르고 꽁지 빨갛게 옆으로도 구른다 하루 종일 달려도 그저 몇 걸음 또아리로 말리는 등 뒤의 생계 멈춰도 멈출 수 없는 관성 빙글빙글 섞이는 남은 하루 신호는 어김 없고 또 달팽이 달리다 서다 굳.. 詩舍廊/GEO 2011.10.19
피라미 피라미 파르르 느닷없이 던져졌다 과도한 응답에 대한 복수 또는 어긋난 과녁으로 그늘도 아닌 착지의 코 앞 탁한 물빛의 안부들 미늘 없는 빛살들이 비늘 사이사이 꽂힌다 파닥파닥 꺼지지 않는 물결의 기억 아가미 한 입 마다 바닥은 점점 깊어 간다 마지막 갈증을 세고나면 한결 가벼.. 詩舍廊/GEO 2011.09.29
앵두나무 앞뜰 앵두나무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어린 목련이 또각또각 꽃 지우는데 목 떨궈 외면할뿐 여린 손목 담쟁이 어깨를 간질여도 마른 팔로 대꾸가 없다 지난 이 맘 때 무성히 쏟던 붉은 별자리는 어디에도 없고 비껴 든 비비추 깍지 낀 틈으로 기어 오르던 거친 흙의 슬픔은 깊다 가지마다 고개 돌리고 오랜 바람 마저 긋는 침묵으로 너는 어디로 가는지 쏟아진 별빛들 터져 아우성으로 솟는 발치 연푸른 촉소리 들리지도 않는지 *2007년 6월 26일 초고 / 2011년 9월 20일 수정 詩舍廊/GEO 2011.09.20
마늘 마늘 마음을 찧는다 꾹 눌러 엎어진 종 뺑 돌려 깍여진 불알 울림도 없이 부순다 말라가는 한 시절 한 모금 고통까지 뽑아 송곳니로 맺은 독기 여섯 개의 하늘로 매웁게 매웁게 피우고 싶었는데 빠각빠각 종소리 플라스틱 가랭이 사이에서 눈두덩이 터져 나가며 마늘을 찧는다 2011. 9. 16 詩舍廊/GEO 2011.09.16
모과나무 모과나무 2011. 8. 22 못생긴 열매를 단 탓인가 높이 오른 모과나무 깊은 주름이 세로로 깊다 주름 안과 주름 밖 세월에 얽은 온 몸엔 요며칠이 떨어지고 오늘이 또 일어나고 굴곡 유난한 허리춤엔 텅빈 매미 한 껍질 마른 어제처럼 매달려 빈 울음 운다 고개 든 하늘에 걸린 못생긴 무과 두.. 詩舍廊/GEO 2011.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