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않는 꽃 피지 않는 꽃 봄 지나고 한 여름인데 때 아닌 제비꽃 한 떨기 맺혔습니다 나비도 벌도 높이 외면하는데 지난 한 철 화사했던 기억을 못잊었나 입다문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뒤늦은 할 일 꼭 해야 한다고 꽃잎 닫고 둘이서 부둥켜 안았습니다 아무도 안와도 누구도 못봐도 괜찮답니다 피.. 詩舍廊/GEO 2020.04.08
물 세 방울 물 세 방울 베란다 옆 화분 하나 하늘 무너지게 비 내려도 피어오르는 흙냄새 맡으며 입맛만 다신다 밤새 숨 골라 아침에 맺었던 한 방울 물이 그립다 허리에 걸린 장마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아랫춤으로 흘러내려가 버렸다 젖었던 기억까지 증발한 아스팔트 옆 가로수 아래 깨진 병 속 .. 詩舍廊/GEO 2013.07.03
플라타너스 플라타너스 오월 밤에 봄비 내린다 붉은 철쭉은 젖어 슬프고 라일락 향기는 씻겨 속상한데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의 기둥 플라타너스 첫 입술이 열린다 봄은 이 밤에야 마지막 잠을 깨누나 2013. 5. 9 / 모던카페 詩舍廊/GEO 2013.05.10
사월 사월 1. 언젠가부터 봄은 어쩔줄 모르는 계절이다 산 너머엔 아직도 눈이 내리고 꽃들은 제각기 눈치로 핀다 내일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연두색 기침을 쏟으며 아내는 꽃무늬 바지를 매만진다 2. 마른 목을 북으로 꺽고 고개만 치켜든 목련은 불편하다 그래서 목놓아 떨어지는게지 남.. 詩舍廊/GEO 2013.04.17
개나리 가족 개나리 가족 한 이틀 비 내리더니 뾰족히 고개 든 강가 개나리들 빗방울 듣듯 돋아납니다 겨우내 싸리빗살로 바람 찬 하늘을 쓸던 메마른 손 부시며 묻어납니다 하루 낮 졸린 햇살이면 지난 가을 모아뒀던 은행잎 미소 꺼내 강변 긴 길 노랗게 웃겠지요 하지만 아셔야 해요 꼬맹이들 달음.. 詩舍廊/GEO 2013.04.12
이제 그만 꽃 지자 이제 그만 꽃 지자 마지못해 피우던 봄은 이제 그만 서러운 웃음을 닫고 내려서자 마디 마다 맺힌 상처들이 아물면 아무렇지 않다 손 흔들고 마침 부는 바람 어깨를 빌리자 꽃 피지 않는다 비웃는 이 몇이나 되겠는가 피어 있으면 잠깐 머물러 웃다 그저 나무로구나 모두 떠나는 것을 혼.. 詩舍廊/GEO 2013.04.01
맹글로브 숲에서 맹글로브 숲 초겨울 오후 예고된 첫 눈 사이로 묵은 나무들이 걷는다 바닥을 더듬느라 닳은 잔뿌리 마다 남루한 의심을 걸치고 저절로 걷는다 숲과 바다는 그저 우뚝 사이를 메우는 머리없는 나무들 떠도는 것들은 맴돌며 가라앉고 다족류의 습관으로 바닥은 분주하다 눈이 와서 기쁘고 .. 詩舍廊/GEO 2013.02.21
스프링 스프링 한 달 보름 바람이 불고 여러 날 찬 비 내리더니 잘린 손가락끝에서 기어이 두려움이 튀어 오른다 기억처럼 눈부시게 피어나는 것들 하나 둘 덮었던 그림자를 뒤집고 어둠을 틈타 또깍 깍지를 꺽는 소리 잠시 바라 본 분홍 뒤의 집요 활짝 열리는 것은 젖혀진 어제의 어깨 손을 뒤.. 詩舍廊/GEO 2012.04.16
자벌레 자벌레 세상을 따지겠다온 몸 뻗어 달려온 나절이 있었습니다 뙤약볕 한 식경 끝에 마디 하나 겨우 지났지만 한 조각 그림자 끌며 차마 주저 앉지 않는 것은 내 삶의 길이가 내 닿는 세상 전부임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2008. 8. 7 초고 / 2012. 2.13 개작 詩舍廊/GEO 2012.02.13
명자꽃 명자꽃 눈 똥그랗게 뜨고 뭘 그렇게 보니 온 천지가 꽃 난리인데 작은 가락지로 피어 무슨 약속을 기다리니 쉽게 지지 않겠다 하얀 손 단단하게 쥔 명자꽃 곱디 고운 다짐 2011. 12. 21 詩舍廊/GEO 201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