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길 / 박영근

취몽인 2010. 7. 14. 11:35

 

 

 

 

 

 

 

 

 

 

 

 

길 / 박영근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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