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스크랩] 나는 바퀴를 보면 안 굴리고 싶어진다/김기택

취몽인 2010. 8. 20. 14:03

 

 

 

나는 바퀴를 보면 안 굴리고 싶어진다/김기택 

 

 

하루 종일 내가 한 일은
바퀴 굴린 일

할 일 없는 무거운 엉덩이를 올려놓고
무늬가 다 닳도록 바퀴나 굴린 일


미안하다
무슨 대단한 일이나 있는 줄 알고
시키는 대로 좆 빠지게 돈 바퀴들에게
뜨겁고 빵빵한 바퀴 속에서
터지지도 못하고 무작정 돈 둥근 공기들에게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문학행사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꽃나무들
늘 뚫려 있어서 심심한 구멍들을 채우느라
괜히 비운 밥그릇과 술잔들

 

이토록 먼 곳까지 왔으니
시인으로서 뭔가는 남겨야 하겠기에
문학적인 체취가 은은하게 묻어나는 사인처럼
정성껏 남기고 온 똥오줌

 

미안하다

배부른 엉덩이 밑에서
온몸으로 필사적으로 뺑뺑이 돈 바퀴들에게

 

출처 : 시세상
글쓴이 : 조찬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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