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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17일 Facebook 첫 번째 이야기

취몽인 2012. 9. 1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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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 분류로 여러해살이풀들이 있다.
    나무처럼 수십 수백년은 살지못해도
    두서너 해는 꽃피우고 씨맺으며 산다.
    대부분 별 볼품없이 산이나 들에서
    조용히 제할 일들을 하다 사람들에게
    강제로 뽑히지만 않으면 수명을
    다하고 땅으로 돌아간다.

    주택가 오래된 석축틈에 핀
    낯익은 여러해살이풀 한 포기를
    태풍 머금은 빗속에서 오래 본다.
    몰래 피웠던 꽃은 이제 떨어지고
    아름다움이 사라진 자리에 설익은
    씨앗들을 잔뜩 맺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열매들은
    더 실해질 것이고 반대로 줄기는
    메마를 것이다. 이 친구가 몇 년을
    이 자리에서 살았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내년 봄엔 새잎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주변엔 새 생명들이
    고개를 들고 일어날 것이다.
    아마 이들이 그저 몇해만 살고
    죽는 것은 새 생명들을 위한
    배려일런지 모른다.
    이 주택가 석축에 늙은이, 젊은이
    우르르 모여있으면 일가가 몰살
    당하기 쉽상 아니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 잘나나 못나나
    제자리에서 제 할일을 하다
    적당한 때에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야만 이 지구에서 좀 더
    오래 버틸텐데.

    너무 많이 소유하고
    너무 오래 살게 된 인간이란
    다년생 동물이 세상의 수명을
    갉아먹고 결국 지들 새끼들도
    죽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비오는 차에 앉아
    흔한 환경론자의 논리를 스스로
    곱씹어 본다.

    여러해살이풀 꽃잎이 한방울
    비에 맞아 흩어진다.
    저녁에 식물도감 뒤져 잊어버린
    친구의 이름을 다시 외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