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속으로 난 길
-한시의 언어 미학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빛
조선 후기의 문호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答蒼厓)〉란 글에는 마을의 꼬마가 千字文을 배우는 데 게으름을 부리자, 선생이 이를 야단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자 꼬마가 대답하는 말이 걸작이다.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天`字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 천자문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말이 천지현황(天地玄黃)이다. 그러고 보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했다. 꼬마의 생각에는 암만해도 하늘이 검지 않고 푸른데, 책 첫머리부터 당치도 않은 말을 하고 있으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고 만 것이다.
저 까마귀를 보면, 깃이 그보다 더 검은 것은 없지만, 홀연 乳金빛으로 무리지고, 다시 石綠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비추면 자주빛이 떠오르고, 눈이 어른어른 하더니 비취빛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또한 괜찮다. 저가 본디 정해진 빛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린다. 어찌 그 눈으로 정하는 것 뿐이리오. 보지 않고도 그 마음으로 미리 정해 버린다.
연암이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에서 한 말이다. 천자문이 푸른 하늘을 검다고 가르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보았던가? 까마귀의 날개빛 속에 숨겨진 여러 가지 빛깔을 관찰한 적이 있었던가? 연암은 이렇듯 시인에게 죽은 지식, 고정된 선입견을 훌훌 털어 버리고, 건강한 눈과 열린 가슴으로 세계와 만날 것을 요구한다. 또 〈답경지(答京之)〉란 글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외쳐 말하기를, `이것은 내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飛去飛來之字)이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相鳴相和之書)이로다`하였다. 오색 채색을 문장이라고 말한다면, 문장으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책을 읽었다.
라고 하였다. 이른 아침 푸른 녹음이 우거진 가운데 노니는 새들의 날개짓과 지저귀는 소리 속에서, 연암은 글자로 씌여지지 않고 글로 표현되지 않은 살아 숨쉬는 `불자불서지문(不字不書之文)`을 읽고 있다. 푸득이는 새들의 날개짓이 주는 터질듯한 생명력, 조잘대는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주는 약동하는 봄날의 흥취를 어떤 언어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옛 사람은 이를 일러 `생취(生趣)` 또는 `생의(生意)`라 하였다. 말 그대로 살아 영동(靈動)하는 운치(韻致)인 것이다. 생취나 생의가 없는 시는 결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사물의 심장부에 곧장 들어가 핵심을 찌르려면 죽은 정신, 몽롱한 시선으로는 안된다. 시인은 천지현황의 나태한 관습을 거부하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 선입견에 붙박혀 간과하고 마는 까마귀의 날개빛을 살피는 관찰력이 있어야 한다. 생동하는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포착되는 물상 속에 감춰진 비의(秘儀)를 날카롭게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시는 언어(言)의 사원(寺)이다. 시인은 그 사원의 제사장이다. 시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미학이다.
영양(羚羊)이 뿔을 걸듯
대저 시인은 천기를 누설하는 자이다. 시를 쓰는 능력은 누구나 타고 나는 것이 아니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송나라의 유명한 평론가 엄우(嚴羽, 약 1290-1364)는 그의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저 시에는 별도의 재주가 있으니, 책과는 관계하지 않는다. 시에는 별도의 지취(旨趣)가 있으니 이치와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고 이치를 많이 궁구하지 않으면 지극한 경지에는 도달할 수가 없으니, 이른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말의 통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윗길이 된다. 시라는 것은 성정(性情)을 읊조리는 것이다. 성당(盛唐)의 여러 시인들은 오직 흥취(興趣)에 주안을 두어, 영양(羚羊)이 뿔을 거는 것과 같아 자취를 찾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그 묘한 곳은 투철하고 영롱하여 꼬집어 말할 수가 없으니, 마치 공중의 소리와 형상 속의 빛깔, 물 속의 달, 거울 속의 형상과 같아서,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다함이 없다.
시에는 별재(別才)와 별취(別趣)가 있어, 책 속에서 얻는 사변적 지식이나 논리적 이치만으로는 시의 비밀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러면 책과 이치를 버려두어도 타고난 재능만 있으면 저절로 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엄우의 이 말은 다소 절충적이다. 이런 어정쩡함을 벗어나기 위해 엄우는 `불섭이로(不涉理路) 불락언전(不落言筌)`, 즉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야 말로 최상승(最上乘)의 법문이라고 부연한다. 이 말은 시인이 언어에 이끌려 다니지 말고, 언어를 주재하라는 주문이다. 시인이 한번 사변의 늪에 빠져 들게 되면 생취는 간데 없고 진부한 관념의 시체들만 뒹굴게 된다. 이것은 시가 아니라 구호이다. 표현의 기교에 지나치게 빠져도 안된다. 언어를 매만지며 단어들의 질량을 느끼는 일은 시인의 큰 기쁨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시인의 정신을 본질 아닌 말단으로만 쏠리게 한다. 그 결과, 시인의 정신은 간데 없고 가공된 언어만이 판치게 된다. 이것은 시가 아니라 암호이다. 옛 사람은 이를 조충전각(雕蟲篆刻), 즉 벌레를 조각하고 글자의 아로새기는 교묘한 재주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엄우는 시인이 지녀야 할 미덕을 `흥취(興趣)`에서 찾는다. 앞에서 말한 `생취(生趣)`와도 같은 말이다. 영양이 뿔을 건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이는 본래 선가(禪家)의 비유로, 《전등록(傳燈錄)》에 설봉존자(雪峯尊者)의 말로 전해진다. 영양은 뿔이 앞으로 꼬부라진 염소이다. 그런데 이 영양은 잠을 잘 때 외적의 해를 피하기 위해 꼬부라진 뿔을 나무가지에 걸고 허공에 매달려 잠을 잔다고 한다. 따라서 영양의 발자취만 보고 따라가다가는 어느 순간 발자취는 끊어져 버리고, 영양은 간 곳이 없다. 시인이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지 영양의 발자취 뿐이다. 발자취가 끝난 곳에서도 영양은 그 실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정작 시인이 전달하려는 의미는 문면에 있지 않고 글자와 글자의 사이, 행과 행의 사이, 혹은 아예 그것을 벗어난 공중에 매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독자 또한 영양의 발자취에 지나치게 현혹되거나, 그것만이 전부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시인이 쳐 놓은 언어의 통발에 걸려 들어서는 안된다. 언어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흥취를 지닌 시란 어떤 시인가. 그것은 투철하고도 영롱하여, 무어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엄우는 이를 다시 몇 가지 비유를 통해 가시화 한다. 공중지음(空中之音), 상중지색(相中之色), 수중지월(水中之月), 경중지상(鏡中之象)이 그것이다. 허공에 울려 퍼지는 소리나 형상 속에 깃들어 있는 미묘한 색채, 그리고 물 속에 찍힌 달, 거울 속의 형상은 모두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물 속의 달은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흔들려 사라지고 만다. 달의 실체는 하늘에 떠 있고, 물은 그 실체를 투영할 뿐이다. 물 속에 녹아 있는 소금은 어떤가. 다만 짠 맛으로 소금의 성분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을 뿐, 만지거나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다. 흥취 또한 이와 같아서 시인의 정신은 저만치 허공에 떠 있고, 언어를 통해 수면 위에 그 정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한편의 훌륭한 시는 독자로 하여금 느껴서 알게 할 뿐, 따져서 납득시키려 하지 않는다.
엄우는 `언유진이의무궁(言有盡而意無窮)`란 말로 위 단락을 끝맺었다. 시란 말은 끝났어도, 뜻은 다함이 없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비유컨대 종을 치면 종소리는 긴 파장을 내면서 허공으로 퍼져 나간다. 이렇듯이 시는 독자로 하여금 읽는 행위가 끝나는 순간부터 정말로 읽는 행위를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의 언어는 젓가락으로 냄비 뚜껑을 두드리듯 해서는 안되고, 범종의 소리와 같은 유장한 여운이 있어야 한다.
허공 속으로 난 길
시는 시인이 짓는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는 사물이 직접 말을 건넨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은 〈이언인(俚言引)〉이란 글에서 "시는 만물이 사람에게 가탁하여 짓게 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 귀와 눈으로 들어와서 丹田 위를 맴돌다가 끊임 없이 입과 손을 따라 나오니, 시인과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물은 제 스스로 성색정경(聲色情境)을 갖추고 있어, 단지 시인의 입과 손을 빌어 시가 언어로 형상화 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 때 시인은 사물의 몸짓을 언어로 전달하는 매개자일 뿐이다. 따라서 시는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 시인이 직접 다 말해서는 안된다.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 시에서 말하고 있는 표면적 진술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엄우가 말한대로 영양의 발자취일 뿐이다. 표면적 진술에만 집착하는 독자는 시를 읽을 자격이 없다. 행간에 감춰진 함축, 언어와 언어가 만나 부딪치며 속삭이는 순간순간의 스파크, 그런 충전된 에너지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취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실제 몇 수의 작품을 함께 감상해 보기로 하자.
어제 밤 松堂에 비 내려
베개 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자던 새 둥지를 뜨지 않았네.
昨夜松堂雨 溪聲一枕西
平明看庭樹 宿鳥未離栖
平明看庭樹 宿鳥未離栖
고려 때 시인 고조기(高兆基)가 지은 〈산장우야(山莊雨夜)〉란 작품이다. 어찌보면 덤덤하기 짝이 없는 시이다. 간 밤 비가 와서 아침에도 새가 둥지에 틀어 박혀 있다는 것이 시인이 말하고 있는 전부인 셈이다. 그러나 독시(讀詩)를 여기서 그치면 영양의 발자취만을 따라가다 끝내는 눈 앞에서 놓치고 마는 격이다.
제목으로 보아, 시인의 거처는 속세를 떠난 호젓한 산중이다. 시인은 간 밤에 비가 왔다는 사실을 처음엔 알지 못했다. 다만 기억 나는 것은 잠결 베개머리 서편으로 들려오던 시냇물 소리 뿐이다. 시냇물 소리를 새삼스럽게 느낀 것으로 보아 계절은 봄이다. 간밤 시냇물 소리에 잠을 설친 시인은 새벽녘 들창을 연다. 여늬 때 같으면 동 트기가 무섭게 조잘대며 시인의 잠을 깨웠을 새들이 오늘 따라 잠잠한 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새들은 왜 둥지를 떠나지 않고 있을까? 간밤의 비 때문에 숲이 온통 젖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새들의 하는 양을 보다가, 간밤 꿈결에 어렴풋하던 시냇물 소리가 기실은 비 때문에 물이 불어났기 때문임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산이 있고, 그 속에 집이 있다. 방 안에는 시인이 있고, 둥지 안에는 새들이 있다. 사방은 고요하고, 정신은 해맑다. 이른 새벽 들창을 열어 가만히 밖을 내다 보는 시인의 시선 속에 떠돌고 있는 法悅의 生趣. 이것을 더 이상 무슨 언어로 부연할 수 있겠는가.
이웃 집 꼬마가 대추 따러 왔는데
늙은이 문 나서며 꼬마를 쫓는구나.
꼬마 외려 늙은이 향해 소리 지른다.
"내년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할걸요."
隣家小兒來撲棗 老翁出門驅小兒
小兒還向老翁道 不及明年棗熟時
小兒還向老翁道 不及明年棗熟時
위 시는 조선 중기의 시인 이달(李達, 약1539-1612)이 지은 〈박조요(撲棗謠)〉, 즉 대추 따는 노래이다. 파란 하늘 아래 빨갛게 대추가 익어가는 村家의 가을 풍경을 소묘한 것이다. 이웃 집 대추가 먹고 싶어 서리를 하러 온 아이가 있고, "네 이놈! 게 섰거라."하며 작대기를 들고 나서는 늙은이가 있다. 서슬에 놀라 달아나던 꼬마 녀석도 약이 올랐다. 달아나다 말고 홱 돌아서더니 소리를 지른다. 의미 그대로 번역하면 4구는 "영감! 내년엔 뒈져라"가 된다. 그래야 내년엔 마음 놓고 대추를 따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늙은이가 아무리 잰 걸음으로 쫓아 온다 해도, 꼬마는 얼마든지 붙잡히지 않고 달아날 자신이 있었던 게다.
이달은 이러한 즉물적 풍경의 섬세한 포착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렇다면 이 시의 주제는 무엇일까. 문면에 드러난 것은 대추 서리하다가 들킨 꼬맹이의 버르장머리 없는 말버릇이다. 그렇다고 이 시의 주제를 "젊은 애들 버릇 없다"쯤으로 설정하는 어리석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파란 가을 하늘과 빨갛게 익은 대추의 색채 대비, 커가는 어린 세대와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늙은 세대의 낙차,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정감 넘치는 시골의 순후한 풍경이, 마치 단원 김홍도의 붓끝에서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듯 하다.
다음은 조선 중기의 시인 백광훈(白光勳)의 <홍경사(弘慶寺)>란 작품이다.
가을 풀, 전조(前朝)의 절
남은 비, 학사의 글
천년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보네.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이 작품을 다시 이렇게 배열해 보면 어떨까.
가을 풀
고려 때 절.
남은 비
학사의 글.
천년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
고려 때 절.
남은 비
학사의 글.
천년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
이미지의 배열이 박목월의 <불국사>를 연상시킨다. 처음 1.2구에서 시인은 돌올하게 가을 풀과 고려 때의 절, 남은 비석과 학사의 글을 제시한다. 각 단어의 사이에는 일체의 서술어가 생략되어 있어, 1구에서 시인이 가을 풀에 묻혀 버린 퇴락한 고려 때의 절을 말하려 한 것인지, 가을 풀처럼 보잘 것 없이 영락해버린 고려 때의 절을 말하려 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전자라면 `추초(秋草)`는 `전조사(前朝寺)`의 배경을 이루고, 후자라면 등가적 심상이 된다.
2구의 `잔비(殘碑)`와 `학사문(學士文)`의 관계도 그렇다. `잔비`는 동강나 굴러다니는 비석인데, 거기에 예전 이름난 학사의 글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시인의 의도는 퇴락한 절과 굴러다니는 비석처럼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예전 명문의 허망함을 일깨우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그 긴 세월 문장 만은 아직도 빗돌에 남아 전함을 말하려는 것인가? 이 또한 명확치 않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을 시시콜콜히 갈라 따지는 것은 오히려 시의 총체적 이해에 장애가 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1.2구의 조응관계를 본다면 `추초`와 `잔비`, `전조사`와 `학사문`이 각각 대응을 이룬다.
다시 여기에 3.4구가 이어진다. 천년을 흘러가는 물이 있고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이 있다. 이번엔 1.2구와는 달리 천년의 긴 세월과 저물녘의 한 때가 나란히 놓여짐으로써 1.2구의 대응관계는 3.4구에서는 대조의 관계로 전이된다. 물은 천년을 한결 같이 그렇게 변함 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구름은 어떠한가. 그것은 언제나 잠시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변하며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아닌가. 즉 3.4구는 천년과 하루에서 만이 아니라 물과 구름을 통해서도 대립의 관계가 형성된다. 4구의 `견(見)`의 주체는 누구인가. 시인 자신으로 볼 수도 있고, 천년을 흘러가는 물일 수도 있다. 주체를 시인으로 이해한다면 3.4구는 자연을 통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착잡한 심회를 노래한 것이 된다. 또 주체를 물로 이해한다면, 천년을 의연히 변치 않고 흐르는 물이 온갖 덧 없이 변화해가는 것들을 묵묵히 지켜 보고 있음을 뜻하게 된다.
가을 풀은 여름 날의 번화를 뒤로 하고 시어져 간다. 그 풀과 같이 예전의 영화를 뒤로 하고 퇴락한 절. 예전 학사의 명문을 새긴 비석에는 세월이 할퀴고 간 상처만 남았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이미 가고 없는데 그래도 글만은 아직 남았다. 천년을 쉬임 없이 흐르는 물, 물은 흘러 갔건만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 위에 해는 지고 구름은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간다. 한 해가 가고, 하루도 가고, 구름도 왔던 자리로 돌아가고, 인간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비석에 새겨진 글씨처럼, 흘러도 흘러도 그 자리에서 넘치는 강물처럼 모든 것은 또 그대로가 아니었던가.
위 시에서 서술관계가 생략됨으로 해서 발생되는 모호성Ambiguity은 일상적 언어에서처럼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 되는 양작 택일의 성격을 띠지는 않는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결과적으로 시의 함축과 내포를 더욱 유장한 것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20자에 불과한 짧은 시인데 담긴 함축은 참으로 심장하다. 한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대목이다.
이상 세 편의 감상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 시인이 글자로 말하고 있는 지시적 사실은 시에서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 그 행간에 감춰진 울림, 언어의 발자취를 벗어나 허공에 매달려 있는 떨림이 중요하다. 그런 울림이 아예 없거나 그런 떨림을 외면한 시는, 단청(丹靑)의 수식과 대중의 기호에만 영합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에 지나지 않는다. 천진(天眞)에서 우러나오는 흥취가 결여된 시는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짜증나게 만든다.
눈과 귀가 있다 말하지 말라
이미지의 구성이 이렇게 탄탄하고, 언외의 함축이 이렇듯 유장하다 보니, 한시의 감상은 매우 지적이고 감성적인 바탕이 요구된다. 그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도 없고, 아무나 알 수도 없다. 조선 후기의 문인 홍양호(洪良浩, 1724-1802)는 <질뢰(疾雷)>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레 소리에 산이 무너져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고, 해가 중천에 솟아도 소경은 보지 못한다. 도덕과 문장의 아름다움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며, 왕도와 패도, 의(義)와 리(理)의 구분을 속인은 변별하지 못한다. 아아! 세상의 남아들이여. 눈과 귀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총명은 눈과 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조각 영각(靈覺)에 있는 것이다.
알아들을 수 있는 귀, 바라 볼 수 있는 눈 앞에서만 예술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 눈과 귀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다. 정신의 심층부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일러 영각(靈覺)이라고 한다. 또 《채근담》에서는 "세상 사람들은 고작 유자서(有字書)나 읽을 줄 알았지 무자서(無字書)를 읽을 줄은 모르며, 유현금(有絃琴)이나 뜯을 줄 알았지 무현금(無絃琴)은 뜯을 줄을 모른다. 그 정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껍데기만 쫓아 다니는데 어찌 琴書의 참 맛을 알 도리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좀 길지만 이규보(李奎報)가 시로써 시를 논한 <논시(論詩)> 한 수를 읽어 보기로 하자.
시 지음에 특히 어려운 것은
말과 뜻이 아울러 아름다움을 얻는 것.
머금어 쌓인 뜻이 진실로 깊어야
씹을 수록 그 맛이 더욱 순수하나니.
뜻만 서고 말이 원활치 못하면
껄끄러워 그 뜻이 전달되지 못한다.
그 중에서도 나중으로 할 바의 것은
아로새겨 아름답게 꾸미는 것뿐.
아름다움을 어찌 반드시 배척하랴만
또한 자못 곰곰히 생각해 볼 일.
꽃만 따고 그 열매를 버리게 되면
시의 참 뜻을 잃게 되느니.
지금껏 시를 쓰는 무리들은
풍아(風雅)의 참 뜻은 생각지 않고,
밖으로 빌려서 단청을 꾸며
한 때의 기호에 맞기만을 구하고 있다.
뜻은 본시 하늘에서 얻는 것이라
갑작스레 이루기는 어려운 법.
스스로 헤아려선 얻기 어려워
인하여 화려함만 일삼는구나.
이로써 여러 사람 현혹하여서
뜻의 궁핍한 바를 가리려 한다.
이런 버릇이 이미 습성이 되어
문학의 정신은 땅에 떨어졌도다.
이백과 두보는 다시 나오지 않으니
뉘와 더불어 진짜와 가짜 가려낼까.
내가 무너진 터를 쌓고자 해도
한 삼태기 흙도 돕는 이 없네.
시 삼 백 편을 외운다 한들
어디에다 풍자함을 보탠단 말가.
홀로 걸어감도 또한 괜찮겠지만
외로운 노래를 사람들은 비웃겠지.
作詩尤所難 語意得雙美
含蓄意苟深 咀嚼味愈粹
意立語不圓 澁莫行其意
就中所可後 彫刻華艶耳
華艶豈必排 頗亦費精思
攬華遺其實 所以失詩眞
爾來作者輩 不思風雅義
外飾假丹靑 求中一時耆
意本得於天 難可率爾致
自천得之難 因之事綺靡 (헤아릴 천)
以此眩諸人 欲掩意所궤(다할 궤)
此俗寢已成 斯文垂墮地
李杜不復生 誰與辨眞僞
我欲築頹基 無人助一궤(竹 아래 貴)
誦詩三百篇 何處補諷刺
自行亦云可 孤唱人必戱
含蓄意苟深 咀嚼味愈粹
意立語不圓 澁莫行其意
就中所可後 彫刻華艶耳
華艶豈必排 頗亦費精思
攬華遺其實 所以失詩眞
爾來作者輩 不思風雅義
外飾假丹靑 求中一時耆
意本得於天 難可率爾致
自천得之難 因之事綺靡 (헤아릴 천)
以此眩諸人 欲掩意所궤(다할 궤)
此俗寢已成 斯文垂墮地
李杜不復生 誰與辨眞僞
我欲築頹基 無人助一궤(竹 아래 貴)
誦詩三百篇 何處補諷刺
自行亦云可 孤唱人必戱
모두 32구에 달하는 긴 시이다. 詩의 참 뜻을 벗어난, 알맹이 없는 화려한 수식만 일삼는 당대 사단(詞壇)의 통폐를 날카롭게 통매한 내용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는 세상, 현란한 기교로 대중의 기호에만 영합하는 시인들, 그들은 눈속임에만 급급하여 함축함양(含蓄涵養)하는 공부는 내팽개친 지 오래다. 참다운 시정신은 이미 땅에 떨어져 회복의 희망도 찾을 길 없다. 어찌할 것인가. 이규보의 이러한 한탄은 오늘의 시단에도 여전히 유효할듯 싶다.
이명(耳鳴)과 코골기
다시 연암에게로 돌아가자.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의 한 도막이다.
어린 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에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에 아이가 서로 맞대고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하였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고는 것이 게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기도 하며, 불을 부는 듯, 솥이 부글부글 끓는듯, 빈 수레가 덜그덕 거리는 듯 하였다. 들이마실 때에는 톱을 켜는 것만 같고, 내쉴 때에는 돼지가 꽥꽥거리는 듯 하였다.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는가?`하는 것이었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고는 것이 게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기도 하며, 불을 부는 듯, 솥이 부글부글 끓는듯, 빈 수레가 덜그덕 거리는 듯 하였다. 들이마실 때에는 톱을 켜는 것만 같고, 내쉴 때에는 돼지가 꽥꽥거리는 듯 하였다.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는가?`하는 것이었다.
왜 연암은 난데 없이 이명과 코골기를 들고 나왔을까. 이명은 자기만 알고 남은 결코 알 수가 없다. 코골기는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자기만 모른다. 사람들이 안목이 없어 나의 이 훌륭한 작품을 알아 보지 못한다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자아도취의 이명증(耳鳴症)에 걸린 꼬마이다. 남의 적절한 지적에도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사람은 코고는 버릇이 있는 시골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시인들이 자신의 이명에는 쉽게 도취되면서, 자기의 코고는 습관만은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암의 말을 더 흉내내면,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화이니, 만약 그가 병 아닌 어떤 것을 지니고 있다면 그 으스대는 양을 어찌 볼 것이며, 코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안 것에 발끈하니, 만약 그의 병통을 지적해 준다면 그 성내는 꼴을 또 어찌 차마 볼 것이랴.
예전 요동 땅에 정령위(丁令威)란 사람이 있었는데, 신선술을 익혀 신선이 되었다. 그뒤 800년 만에 학이 되어 돌아왔으나 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또 한나라 때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초할 적에 뒷날 자신의 저술을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어 장독대의 덮개로나 쓰일 것을 생각하며 탄식하였다. 막상 그가 죽고 나자 《태현경》은 세상에서 귀히 여기는 유명한 저술이 되어 낙양의 종이값을 올렸다. 그런데 당사자인 양웅 자신은 이를 보지 못하고 불우하게 세상을 떴다.
세상의 시인들이여! 그대들의 시는 정령위의 불로장생을 원하는가. 양웅의 기림을 받고 싶은가. 양웅의 성예(聲譽)를, 살아 정령위처럼 누리고 싶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
출처 : 맑은샘 기르기
글쓴이 : 불로초 원글보기
메모 :
'이야기舍廊 > 詩와 글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쓴 시와 잘못 쓴 시 (0) | 2013.08.19 |
---|---|
은유와 환유 (0) | 2013.08.16 |
[스크랩] 두번째 이야기 : 그림과 시 ㅡ 정민 (0) | 2013.07.26 |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0) | 2013.07.22 |
[스크랩] 생명력이 있는 시를 쓰려면 /신경림(시인) (0) | 2013.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