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대하여
마음이 경각에 닿을 듯
간절해지는 황혼 속
그대는 어쩌려고 사랑의 길을 질문하고
나는 지그시 눈을 먼 데 둔다.
붉새가 점점 밀감빛으로 묽어 가는
이런 아득한 때에
세상은 다 말해질 수 없는 것.
나는 다만 방금까지 앉아 울던 박새
떠난 가지가 바르르 떨리는 것하며
이제야 텃밭에서 우두둑 펴는
앞집 할머니의 새우등을 차마 견딜 뿐.
밝고 어둔 것이 서로 저미는
이런 박명의 순순함으로
뒷산 능선이 그 뒤의 능선에게
어둑어둑 저미어 안기는 것도 좋고
저만치 아기를 업고 오는 베트남여자가
함지박 위에 샛별을 인 것도 좀 보려니
그대는 질문의 애절함을
지우지도 않은 채로 이제 그대이고,
나는 들려오는 저녁 범종 소리나
어처구니 정자나무가 되는 것도 그러려니
이런 저녁, 시간이건 사랑이건
별들의 성좌로 저기 저렇게 싱싱해질 뿐
먼 데도 시방도 없이 세계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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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1
늦가을 강변, 잔광 속의 미루나무여
무장무장 스치는 쓸쓸함이여
이런 날이면, 삼류 인생에나 적합한
오줌색 갱지 빛깔을 닮은 삶의 내력들을
무너질 만큼 무너지는 박명 속에 부려 놓고
늦가을 강변, 억새꽃 노을 녘을 향해
긴 울음의 목을 쳐드는
황소의 바리톤 하나 정도는 건졌으련만
네가 보고 싶어 울었다. 는
삼류 소설의 지문 같은 것으로나
내 하루 분량의 고독을 세우는 자코메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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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근처는
마음의 물길이
노을을 바라보나 보다
황혼
저물녘
붉새
석양
저 서쪽 붉은 하늘이
곧 가야할 길처럼 보일 때
그것은 아마도
아름다움을 지나
미지처럼 다가 올 수도 있겠지
해 지는 하늘을
저무는 마음을
유난히 많이 그린 시집 한 권
꽃의 권력은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가슴 언저리는 서늘하게 물든다
붉새 몇 마리로
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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