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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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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정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김영남 <정동진역>.민음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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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시인이 펴낸 시창작서 '시클'에서
詩를 쓰는 전범으로 소개한 詩 한 편.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
맛있을까? 싱겁거나 질기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 있다.
시집이 나온 건 1998년, 지금부터 23년 전.
그 세월 동안 정동진은 많이 닳았고
세상 詩의 기준도 많이 바뀌어서
정동진도, 이 詩도 이제는 심드렁해졌다.
그래도 기억은 늘 푸르러
7번 국도 그 상쾌한 질주와 어깨를 치던 동해 파도는 마음속 여전한 그리움이다.
정동진도, 詩도 닳았지만
가슴을 씻는 동해, 깊은 표정은 변치않길 마음에게 부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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