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病에게

취몽인 2007. 11. 8. 17:30

 

 

病에게

 

--- 조지훈 ---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 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 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의 外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긋이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 후략.

 

'이야기舍廊 > 좋은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정호승의 <강변역에서>  (0) 2007.11.20
[스크랩] 신경림의 갈대  (0) 2007.11.20
[스크랩] 우체국 계단 / 김충규  (0) 2007.10.30
개구리  (0) 2007.10.25
식당 의자  (0) 2007.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