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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집이 떠나갔다(정우영)

취몽인 2007. 12. 20. 11:09

집이 떠나갔다

아버지 가신지 딱 삼 년 만이다

아버지 사십구재 지내고 나자

문득 서까래가 흔들리더니

멀쩡하던 집이 스르르 주저앉았다

자리보전하고 누워 끙끙 앓기 삼 년

기어이 훌훌 몸을 털고 말았다

나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렇듯 날씨 매운 날 가시는가

손끝 발끝이 시려왔을 뿐이다

실은 그 날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숨소리 끊기자 모두 다 빛을 잃었다

아버지 손 때 묻은 재떨이와 붓, 벼루가

삭기 시작했고 문고리까지 맥을 놓았다

하여 사람들은 집이 떠나감을

한 세계가 지는 것이라 하는가

두 손 모두어 경배하고

나이 마흔넷에 나는 집을 떠난다

출처 : 솔잎에 내린 안개
글쓴이 : 은빛 빗방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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