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와 글 공부

[스크랩] 시는 어디서 오는가? /장옥관

취몽인 2010. 3. 24. 11:09

 

시는 어디서 오는가? 


― 시적 발상

           장옥관 (시인)


  시창작 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원천적 단계과 의미화 단계, 형상화 단계. 원천적 단계는 선천적, 후천적 차원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시창작 교육에서 다룰 수 있는 부분은 교육에 의해 계발될 수 있는 후천적 차원. 후천적 차원은 독서와 체험, 사색의 세 범주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화 단계를 다른 말로 하면 시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알맹이(관념/사상, 감정 따위)가 있어야 시를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허긴 알맹이 없는 시가 시중에 많이 나돌고 있다. 시가 그럴듯한 말로 아름답게 치장하거나, 설익은 관념을 그대로 노출하거나, 넋두리, 푸념에 가까운 질펀한 감정의 잔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선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적 인식의 개념을 명료하게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형상화 단계는 시적 인식을 언어표현을 통해 실현화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어쩌면 형상화 단계가 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를 빚는 솜씨를 가졌다 하더라도 시적 인식이 없거나 잘못되면 빈 수수깡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적 인식의 핵심은 감수성, 관찰, 상상력이 핵심이다.


  우선 감수성에 대해 살펴보자. 시를 쓰고 싶은 의욕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인상적인 느낌(즉 아름다운 자연, 극적 사건, 감동적인 순간 등에서 갖게 되는 심리적 충격)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이런 충격이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대수로운 사건에서도 이런 충격을 자주 받게 된다. 감수성은 천성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훈련에 의해서도 길러질 수 있다.


  1. 감수성 기르는 방법


  감수성은 말 그대로 느끼는 능력. 느낌은 감각적 경험을 통해 우리의 정신 속으로 들어온다. 감수성을 기르는 방법은 느낌을 강화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느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 ‘햇살이 눈부시다’라는 느낌을 갖는 순간, 한번 중얼거려본다. 그러면 햇빛의 찬란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 다음 햇살이 어떻게 환한지 느껴본다. ‘햇살 속에 유리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찌푸린 미간 때문에 눈썹이 다 없어질 것 같네’처럼 그 순간의 느낌을 되풀이해 느껴본다. 이처럼 느낌을 강화하게 되면 감각의 깊이가 생기고 남들보다 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 시각을 통한 대상 파악


  광명에도 초박의 암흑이 발려있는 것 같다.

  전깃불 환한 실내에서 다시

  탁상용 전등을 켜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분명 한 꺼풀 얇게 날아가는 휘발성분 같은 것

  책이나 손등, 백지 위에서 일어나는

  광속의 투명한 박피현상을 볼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이 때로 한 순간 살짝 벗겨내는

  그대 이마의 그늘 같은 것

  그런 아픔이 있다, 오래 함께 한 행복이여.

- 문인수,<그늘이 있다>


  나. 청각을 통한 대상 파악


  말이 되지 않는다. 손아귀에 꽉 꽉 꽉 구겨 쥔 에이 포 용지를 냅다 방구석으로 던졌다. 어, 처박힌 종이 뭉치에서 웬 관절 펴는 소리가 난다. 뿌드드드 드드 부풀어오르다, 부풀어오르다, 이내 잠잠해 진다.


  종이도 죽는구나


  그러나 입 콱 틀어 막힌 그 마음의 밑바닥에 얼마나 오래 눌어붙어 붙어먹었으면, 그리고 그 무거운 암흑의 産道를 얼마나 힘껏 빠져 나왔으면 그토록 환하게

뼈 부러지게 기뻤을까


누가, 날 구겨 한 번 멀리 던져다오

- 문인수,<꽃>


  다. 후각을 통한 대상 파악


  사연인즉 이렇다 외출에서 돌아와 책상 앞에 앉는 순간, 오물을 뒤집어 쓴 돼지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잠시 한눈을 파는 동안 돼지들이 등비급수로 늘어나더니만 작은 사무실을 차지해 버렸고 아예 두개골 속으로 들어와 골치를 들쑤시는 것이다 견디다 못해 마침내 소굴을 찾아 나서니 이런! 물 대접에 담아 놓은 감자가 바로 범인이었던 것

싹이 난 감자 몇 알, 물 대접에 담아 볕 좋은 창가에 놓아두고 나갔다 온 참이다 움켜쥔 주먹처럼 단단하던 감자는 흐물흐물 허물어지고 바야흐로 흰 거품이 버글버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 부신 빛깔이라니― 무지개가 선 것처럼 공기 알갱이들이 뽀얗게 커튼을 치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티 한 점 없이 완벽한 악취, 쓰레기통에도 넣을 수 없어 수돗간에 내다두었다

돼지들이 사라지고 난 뒤 무심코 나가본 하수구 어이쿠! 그리마, 노린재, 괄태충, 쇠파리 온 동네 날것 물것들이 죄 모여 꼬물꼬물, 꿈틀꿈틀, 붕붕붕…… 한바탕 잔치판을 벌이고 있었던 것 그예 감자는 쭈글쭈글 갈색 피부만 남았고, 지독한 향기 흰 젖이 되어 여린 목숨들 거두고 있었다 쭈그러든 자궁― 거무죽죽 검버섯의 할머니가 그 자리에 누워 계셨던 것이다

- 장옥관,<냄새에 대한 보고서>


  라. 근육감각을 통한 대상 파악


  모시 반바지를 걸쳐 입은 금은방 김씨가 도로 위로 호스질을 하고 있다./아지랑이가 김씨의 장딴지를 거웃처럼 감아 오르며 일렁인다./호스의 괄약근을 밀어내며 투둑 투둑 흩뿌려지는 幻의 알약들/아 아 숨이 막혀, 미칠 것만 같아/뻐끔뻐끔 아스팔트가 더운 입김을 토하며 몸을 뒤튼다./장딴지를 감아 올린 거웃이 빳빳하게 일어서며 일제히 용두질을 시작한다./한바탕 대로와 아지랑이의 질펀한 정사가 치러진다./금은방 김씨가 잠시 호스질을 멈추고 이마에 손을 가져가 짚는다./아 아 정말 살인적이군, 살인적이야/금은방 안, 정오를 가리키는 뻐꾸기 시계의 추가 축 늘어져 있다.

- 김지혜, <이층에서 본 거리> 부분


  라. 공감각을 통한 대상 파악

  1


  흥덕왕릉*의 숲에는 비밀이 있다 섭씨 19도, 서풍과 함께 듣는 솔방울 소리, 부재를 위해 텅 빈 공간이 부푸는 한낮, 밤이 아니라도 등불이 하나 둘 차례차례 켜지는 느낌, 일만 그루 소나무가 손 뻗어 나를 만지도록 정지하는 것, 일만 그루의 소나무에 매달리는 섬모 운동, 내게 필요한 것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우는 울음이다


  2


  비밀이 탄로난 이유가 갑자기 휘몰아닥친 장대비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왕국을 베고 눕고자했다 왕이 누리던 고요 외에 십삼층 석탑 같은 왕의 비애를 열어 보고자 했다 어떤 기미도 없이 절규의 힘으로 빗방울이 관 뚜껑 닫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비를 오게 하는 왕국의 슬픔이다


  * 경북 경주시 안강읍 인근의 신라 흥덕왕릉. 흥덕왕은 죽은 장화부인을 못 잊어 내내 독신으로 살았다.

- 송재학,<비밀>


  기타 미각, 촉각, 기관을 통한 대상 파악은 생략.


  2. 관찰하는 방법


  일상의 범상한 눈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리한 관찰이 필요하다. 순간순간 변하는 햇빛에 의해 몸을 바꾸는 사물, 계절의 변화에 반응하는 나무의 섬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사물들이 항복을 할 때까지, 즉 작은 세계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예 :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꽃 하나하나를 들여다 본다/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 - 황동규, <풍장?58 일부) 평소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지 한 번 살펴보자.


  □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이토 게이치)


  (1) 나무를 그냥 나무로 본다.

  (2) 나무의 종류와 모양을 본다.

  (3)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4) 나무의 잎사귀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5) 나무 속에 승화되어 있는 생명력을 본다.

  (6) 나무의 모양과 생명력의 상관관계를 본다.

  (7) 나무의 생명력이 뜻하는 그 의미와 사상을 읽어본다.

  (8) 나무를 통해 나무 그늘에 쉬고 간 사람들을 본다.

  (9)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1-4는 외형적 관찰임. 그나마 일상적 상식적 차원에서는 1-2의 눈으로 본다. 3-4는 한 걸음 앞선 태도이긴 하지만 외형적인 관찰이며 따라서 그다지 깊은 관찰이라 할 수 없다. 5-7은 그렇지 않다. 일상적 상식적 차원을 벗어나 보이지 않는 나무의 모습이 우리 앞에 드러난다. 나무의 생명력이나 그 의미, 사상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대상이다. 즉 그 내면을 보는 시각. 상상력의 소산으로 나무가 변용 되고 있으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8-9에 이르러 비로소 눈부신 비약적 변용으로 나무는 자리를 옮긴다. 쉬고 간 사람들이 쉬는 그 동안에 이런 일, 저런 일을 생각해 본 인생의 갖가지 사연이 얽혀 있는 자리인 것이다. 9단계에서 상상력의 극대화를 기해 인생 만사와 우주의 삼라만상을 포괄할 수 있다. 한 나무를 통해 이처럼 광대한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기적. 그 기적을 낳는 원동력이 상상력이다. (예 : 뉴턴의 만유인력은 이런 상상력에서 출발)


  * 의인화된 나무가 어떤 이미지로 나타나 있는가.


  그 잎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부비며 나무는/소리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 정현종, <사물의 꿈 1- 나무의 꿈>


  * 나무/꽃의 어떤 모습이 의미화 되고 있는가.


  저 꽃의 영혼은/추워서 방으로 들어갔단다//추운 집밖을 나서다 보니/시든 꽃 한송이/영혼이 저만 따뜻한 곳 찾아 들어가버린//아니면 시들어가면서 꽃이/영혼 먼저 들여보냈나?//영혼이 놓아두고 간/시든 꽃잎들은/이제 아무데로나 떨어져내릴 것이다//추위를 견딜 마지막 힘조차 잃었는가//방 안에서 잠시 쉬었다/봄이 되면/다른 꽃을 찾아들리//꽃들은 끝내 시들고/시들지 않는 영혼만이 천년 만년 새로운 꽃으로 옮겨 다닌다

- 이선영, <시든 꽃>


  가. 관찰하는 눈은 정확하고 선명해야 한다.


  텔레비전을 끄자/풀벌레 소리/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어둠 속에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그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브라운관이 뿜어 낸 현란한 빛이/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크게 밤공기 들이쉬니/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

- 김기택,<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나. 사물만 보지 말고 그 빈자리를 보자.


  사과를 손에 들고 꽃이 있던 자리, 향을 맡는다/꽃이 피던 자리에는 벌이 와서 울던 소리가 남아 있다/아내에게 미안한 일이다 꽃이 얼마간 피어있던/꽃받침을 아내는 기억 못 한 것 같다 벼껍질로 남은/몇 개 꽃받침은 사과의 배꼽, 오목한 상흔, 낙화보다/슬픈 시간이 갔다 꽃은 자신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가/한 입에 쪽이 지는 홍옥 소년의 향긋함,/해숙씨/사과엄마는 그 연분홍 어린 꽃이 아니었겠니 그리고/어린 그 꽃은 과수의 아이가 아니었겠니

- 고형렬, <꽃자리>


  언덕에서 한 빈집을 내려다보았다/빈집에는/무언가 엷디엷은 것이 사는 듯했다/무늬들이다/사람들이 제 것인 줄 모르고 버리고 간/심심한 날들의 벗은 마음/아무 쓸모없는 줄 알고 떼어놓고 간/심심한 날들의 수없이 그린 생각/무늬들은 제 스스로 엷디엷은 몸뚱이를 얻어/빈집의 문을 열고 닫는다/너무 엷디엷은 제 몸뚱이를 겹쳐/빈집을 꾸민다/때로 서로 부딪치며/빈집을 이겨낸다/언덕 아래 빈집/늦은 햇살이 단정히 모여든 그 집에는/무늬들이 매만지는 세상 이미 오랬다

- 이진명, <무늬들은 빈집에서>


  다. 비유적으로 연상하기


  진달래는 고혈압이다/굶주린 눈멀어/우글우글 쏟아져 나오는 빨치산처럼/산기슭 여기저기서/정맥 터질 듯 총질하는 꽃//진달래는 난장질에/온 산은 주리가 틀려/서둘러 푸르러지고/겨우내 식은 세상의 이마가/불쑥 뜨거워진다//도화선 같은 물줄기 따라/마구 터지는 폭약, 진달래/진달래가 다 지고 말면/풍병(風病)든 봄은 비틀비틀/여름으로 가리라

- 강윤후, <진달래>


  3. 상상력 키우는 방법


  우선 어떤 현상, 어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어린아이의 눈처럼 사물과 현상을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고정관념에 대해서 네모난 수박에 대해 생각해보자. 둥글다는 본질적인 개념의 파괴, 네모난 틀 속에 갇힌 수박의 아픔을 생각해보자.) 즉 사물을 되도록 새롭게 보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


  둘째, 다르게 쓰기의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것인가’라고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르게 쓸 것인가’하는 생각으로 바꿔야 한다. 다르게 쓰기 위해서는 다르게 보는 방법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관찰의 세밀함이 필요한 것이다. 다르게 보는 방법을 가지기 위해서는 남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뒤집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뒤집기는 상식을 뒤엎는 질문을 통해 시작한다. 꽃이 아름답다는 고정관념, 똥이 더럽다는 고정관념, 섹스는 추하다라는 고정관념, 밤이 어둡다는 고정관념, 모성애가 숭고하다라는 고정관념, 윤리적인 삶이 바람직하다라는 고정관념. 미추과 선악, 몸과 정신을 뒤바꿔 생각해봐야 한다. 거기에서 인생의 진실이 숨어 있다.


  셋째 대상, 사물, 사건에 내 생각의 초점을 맞추지 말고 대상이 주가 되게 써야 한다. 여기에서 사물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나의 관점을 버리고 대상의 눈으로 나를 보라는 것. 삐걱거리는 교실의 마루바닥은 종일 얼마나 힘들까, 선풍기는 하루 종일 고개를 흔드느라 얼마나 고단할까. 이것은 사랑의 눈으로 대상을 보는 방법이다. 죽은 사물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면 삼라만상이 다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우리는 그것을 다만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동화와 투사의 방법이자 서정시의 가장 특징적인 동일화의 방법이다.


  넷째 자신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감동이 없는 시는 시가 아니다.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서 출발한다.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일, 인간이기에 저지르게 되는 잘못, 용기 없음과 우유부단함, 억눌러도 억눌러도 치솟는 욕망의 모습들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가까운 곳에서 시를 찾는 눈이다. 시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 주변의 자잘한 사건들에서 시는 찾아온다. 밥하고 빨래하고, 부부싸움하고 자식을 꾸짖는 일, 시장 보는 일과 잔치와 상가를 찾는 일, 다투고 시기하고 증오하는 이웃과 친구들의 이야기. 이런 것들이 우리의 공감을 자아낸다.

시적인 이야기 방식은 언제나 구체에서 추상으로, 감각에서 깊이로, 평범에서 비범으로,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사소함에서 소중함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이성복)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시의 언어는 관념어, 문어가 아니라 구체어, 구어가 필요한 것이다.



  가. 동화적 발상


  흰 목련꽃을/엄마, 여기 조개꽃이 피었어!/밥물이 끓어 넘친 자국을/엄마, 여기 눈이 내렸어!/벚꽃이 지는 걸/엄마, 바람이 꽃을 아프게 하는 거야?/좋은 냄새를/엄마, 이게 꽃이 피는 냄새야?//겁도 없이//5년/10년/일생이 걸려도/내가 못 가는 거리를//단숨에!


- 양선희, <어린 것들>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 관습의 옷을 벗고 어린이의 순수한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일상인들은 현실에 잘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특별한 체험 외에 일상적 체험에 대해서는 그저 상투적으로 인식한다. 반면 어린이는 눈에 들어오는 것, 귀에 들리는 것, 혀에 닿는 사물들이 다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최대한 동원해서 대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태도가 바로 일상적, 상식적 인식의 껍질을 벗는 방법이 된다. 관습적 인식,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명한 사실이나 현상에도 의심을 해보는 버릇을 가져야 한다. 어린이의 호기심이 되어야 질문이 나온다.


  나. 뒤집기


  사각의 공간에 구더기들은/활자처럼 꼬물거린다/화장실은/작고 촘촘한 글씨로 가득 찬/불경같다/살아 꿈틀대는 말씀들을/나는 본다.

- 이대흠, 「이동식 화장실에서」


  일상은 관심과 호기심을 빼앗아 낯익음의 세계로 내몰고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굳게 만든다. 고정관념, 상식을 버리고 무조건 뒤집어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숨어 있는 진실이 드러난다. 보편적 진리나 생각, 신념까지도 거꾸로 뒤집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선악, 미추, 대소, 고저, 장단, 청탁 따위의 개념을 반대로 규정해보는 훈련. 역발상은 시적 긴장을 얻는데 효과적이다. 시에서 중요한 구성원리로 작용하는 역설이나 아이러니도 따지고 보면 다 역발상에 기초하고 있다.


  다. 관점 바꾸기


  뱀을 볼 때마다/소스라치게 놀란다고/말하는 사람들//사람들을 볼 때마다/소스라치게 놀랐을/뱀, 바위, 나무, 하늘//지상 모든/생명들/뭇 생명들/소스라치다

- 함민복, <소스라치다>


  사과 과수원을 하는 착한 친구가 있다. 사과꽃 속에서 사과가 나오고 사과 속에서 더운 밥이 나온다며, 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 그루 그루마다 꼬박꼬박 절하며 과수원을 돌던 그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사과꽃이 새치름하게 눈뜨는 저녁이었다. 그날 나는 천 년에 한 번씩만 사람에게 핀다는 하늘의 사과꽃 향기를 맡았다.


   눈 내리는 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툭, 칼등을 쳐서 사과를 혼절시킨 뒤 그 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붉은 사과에 차가운 칼날이 닿기 전에 영혼을 울리는 저 따뜻한 생명의 만트라. 사과야 미안하다 사과야 미안하다. 친구가 제 살과 같은 사과를 조심조심 깎는 정갈한 밤, 하늘에 사과꽃 같은 눈꽃이 피고 온 세상에 사과 향기 가득하다.

- 정일근, <사과야 미안하다>


  의인법 혹은 활유법은 시적 인식의 기본. 비정하고 차가운 마음은 사물과 교감할 수 없다. 따뜻한 시선을 던져야 사물이 자기 자신의 내밀한 세계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나락을 벨 때 벼들이 아프다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죽여야겠다고/가을 산 중턱에서 찬비를 맞네/ 오도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하고/ 너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 안도현, <단풍나무 한 그루>


  저 빗물 따라 흘러가봤으면,/빗방울에 젖은 작은 벚꽃 잎이/그렇게 속삭이다가, 시멘트 보도/블록에 엉겨 붙고 말았다 시멘트/보도블록에 연한 생채기가 났다/그렇게 작은 벚꽃 잎 때문에 시멘트/보도블록이 아플 줄 알게 되었다/ 저 빗물 따라 흘러가봤으면,/비 그치고 햇빛 날 때까지 작은/벚꽃 잎은 그렇게 중얼거렸다/고운 상처를 알게 된 보도블록에서/낮은 신음 소리 새어나올 때까지

- 이성복, <그렇게 속삭이다가>


라. 부끄러움에서 시작하기


  비 오시는데/종일/헤어진 여자 허리 생각에 몸 뒤척인다//저기 타는 천리 불꽃/빗발로는/끝내 진화할 수 없는 것인가!//온몸 달아 간절했으니/신체의 한 末端이 타버리는 모양이다/오매 사람 잡네,/이 灼熱感!//점점 골똘해지는 씹 생각에 몸이 다 탄다/날 저물고 비 그쳐 淨口業眞言*/합장하고 千手經 일절 뒤 나무관세음보살……/천 번 입 속으로 읊조렸더니/시끄러운 몸이 겨우 잠든다


  * 입으로 지은 업을 맑게 하는 진언

- 장석주, <천리 불꽃>




  내 영혼 흠잡을 데 없네. 감기 몸살 안 하고 술 안 먹고 노래방 안 가고, 높새바람에나 깃을 칠까, 착한 내 영혼 누군들 기뻐하지 않으리. 사람들 바로 살게 가르치고, 명절 선물 불편하면 거절할 줄 알고, 수재 의연금 잘 내고, 냈다는 건 마지못해 떨어놓는 내 영혼 참으로 겸손하다. 한때 내 영혼 나쁜 줄만 알았네, 샘 많고 별나고 잘 삐치던 내 영혼, 하지만 이젠 추어탕 집 아줌마도 내 인상 좋다 하니, 자손 대대로 복 받겠네. 착한 내 영혼, 더 늙기 전에 러시아 식 스포츠 마사지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네. 


- 이성복, <내 영혼 흠잡을 데 없네>


  한 번은 옆 침대에 입원한/환자의 오줌을 받아 주어야 했다/환자는 소변기를 갖다대기도 전에 얼굴이 뻘개졌다/덮은 이불 속에서 바지를 내리자/빳빳하게 솟구쳐 있는 그것,/나도 얼굴이 빨개졌다/이불 속에서 소변기를 걸쳐놓고/그것을 잡고 오줌을 눌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말아야 하나... 무안한 눈은/창 밖 벚나무 가지 위로 오르는데/벚나무도 뜨겁게 솟구치는 제 속을 받아내는지/펑펑 눈부신 소리로 꽃을 뿜어냈다/그리고 한참 동안, 조용하게/벌어진 꽃나무의 상처를 핥아주고 있던 햇빛이/후딱 일어나 수천 개의 혀를 내밀더니/내 눈을 휘감아 가버렸다/놀란 나는 캄캄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벚나무 아래에서 와와, 숨 멎는 소리만/내 눈에 고였다가 넘쳐흘렀다/그날 옆 침대에 입원한 환자는 내내 돌아누워/밥도 먹지 않았다

- 강미정, <벚나무>


  마. 하찮은 것에서 소중한 것을 길어내기


  작은누나가 엄마보고/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한 개 사라 한다./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아버지는 그걸 보고/런닝구를 쭉 쭉 쨌다.//엄마는/와 이카노./너무 째마 걸레도 못한다 한다./엄마는 새걸로 갈아입고/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 배한권, <엄마의 런닝구>  


 


  어떤 순결한 영혼은 먹지처럼 묻어난다. 가령 오늘 점심에는  사천 원짜리 추어탕을 먹고 천 원짜리 거슬러 오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까박까박 조는 남루의 할머니에게 '이것 가지고 점심 사 드세요' 억지로 받게 했더니, 횡단보도 다 건너가는데 '미안시루와서 이거 안 받을랩니다' 기어코 돌려주셨다. 아, 그걸 점심 값이라고 내놓은 내가 그제서야 부끄러운 줄 알았지만, 할머니는 섭섭다거나 언짢은 기색이 아니었다. 어릴 때 먹지를 가지고 놀 때처럼, 내 손이 참 더러워 보였다.   


- 이성복, <아, 그걸 점심 값이라고>


  결론적으로 평소 사물을 새롭게 보려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 사물을 볼 때마다 새롭게 대하려는 것은 애정과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이 보통 부지런하고 자유스럽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전 감각에 탄력성을 주지 않으면 결코 상투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또한 새롭게 본다는 것은 ‘연상한다’, ‘비유적으로 본다’는 말과 통한다. 어떤 사물을 보는 순간 또 다른 사물이나 정황을 즉각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사물과 사물, 정황과 정황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고, 여기에 인간의 마음을 맺어줌으로써 이 세상 모든 것이 고립되지 않고 상호교감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시인의 연상력이다. 대상을 논리적으로 따지려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즉각적으로 다른 어느 것과 연관시키는 것은 순진무구한 마음이 되어야 가능하다. 과학적 사고를 버리고 시적인 사고를 가져야 하며 감각을 활력 있게 가동시켜 비유적 사고를 해야 한다. 일상인들이 건성으로 스치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 어리석은 질문을 스스로 해보고 스스로 답해 봄으로써 신선한 대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시세상
글쓴이 : 조찬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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