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쓰기 위한 방법 [김찬옥]
'좋은시란 어떤 것이다' 라고 감히 정의 내릴 수는 없다. 다만 그동안 읽고 쓰는 과정에서 느끼고 깨달았던 부분을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이다.
'미쳐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있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사사로운 일들을 끊고 오직 시 하나에만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은 차면 넘치게 되어 있다.
'궁하면 열릴 것이다.' 부유한 생활 속에선 정신을 딴 곳으로 빼앗길 수가 있다. 그렇다고 처절한 아픔을 겪은 자만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러 가지 많은 것은 체험한 자는 머리가 터지도록 고뇌하지 않아도, 좀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시의 소재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보면 관조만 하지 말고 직접 참여하고 가담하라는 것이다. 사물이나 상황 속으로 거침없이 다가가 말을 걸면 그것들은 답하게 되어있다. 이때 서로 눈빛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첫눈에도 느낌이 좋은 사람의 관계처럼 시상이 반짝이기 마련이다.
시의 소재란 저 산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나와 가장 근접한 거리에 있다. 시의 소재가 궁한 것은 사물을 보는 혜안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널려있는 시의 소재를 찾지 못하고 뒷골목에서 방황할 때가 있다.
불교에서 '늘 깨어있으라' 하듯이 시인은 언제나 깨어 시를 맞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대하듯 늘 가슴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면, 시는 길을 걷다가도, 밥을 하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변기 위에서도 언제든지 내 속으로 들어 올 수가 있다. 헌데 우리는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욕심만 앞설 뿐이지 그 길목에 현실이란 거미줄을 쳐 놓았다.
상상으로만 쓴 시는 공감대를 주지 못한다. 작가가 겪고 있는 상황을 시로 풀어낼 때 시가 가장 진솔하고 투명해질 수가 있다. 시인은 때로 바람둥이가 되어야 한다. 뭔가 찡하니 가슴을 울리게 하는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다가가 말을 걸고 그것들과 내통할 줄도 알아야 한다. 시인의 생활 속에서 찾은 시 한편을 소개한다. 이 시 한편으로도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금방 알 수가 있다.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 밭에 덮어 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 보고는
갑자기 손끝이 후끈거려서 또
그 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환히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아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이요
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그냥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어쩝니까 벌건 대낮에
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
근데요 이를 또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습니다요
이덕규 [어처구니] 전문
이덕규 시인은 경기도 화성에서 농사를 짓는 시인이다. 이 시는 어느날 마늘 밭에 덥힌 비닐하우스를 들치다가, 막 땅을 뚫고 나온 마늘 싹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여자로 의인화해서 쓴 시이다. 얼마나 시가 재치있고 자연스럽고 재미있는가. 어떤 사물을 관조만 하고 쓴 시는 깊어질 수가 없다. 그의 생활의 터전인 마늘밭에서 노란 싹에 맺힌 물방울을 감히 겁탈했기에 이런 좋은 시를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시는 거짓말을 못한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시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달콤한 사랑에 빠져있으면 절로 연시가 나올 것이고, 고통에 처해 있다면 아픈 시가 나올 것이다. 또 시를 보면 그 사람의 연배를 알 수가 있다. 꽃은 가만히 있어도 향기가 우러나듯이 자신도 모르게 몸의 울림은 퍼져나가게 되어있다.
낙타를 타고가리라. 저승 같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낙타]전문
낙타를 통해 시인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말한다. 이젠 서서히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너머에 있는 죽음의 길도 이젠 생각해 보아야 할 길목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이승에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겪으며 전쟁을 치르듯 한 생을 치른다. 이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선 다 부질 없는 짓이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으면 낙타를 통해 눈을 닫고 입을 다물어야 했을까. 낙타처럼 태연하게 떠나고 싶은 것이다. 그는 다시 세상에 나가라 한다 해도, 다시 낙타가 되어 나올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고 가엾은 사람 (자신)하나 길동무해서 떠난다고 한다. 몇 생을 살아도 결국 죽음 앞에서 부질없기는 마찬가지인 듯 하다. 언젠가는 우리 앞에도 다가 올 그날이 느껴져 좀 허탈하기도 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어 가슴이 뭉클해진다.
마지막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대화하듯이 자연스럽게 쓴 시 한 편을 더 소개한다. 시가 너무 형식에 얽매이다 보면 경직되기가 십상이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가 없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가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 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가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이정록 [의자] 전문
평상시 어머니가 아들에게 한 말이다. 실제로 어머니께서 모든 사물을 받쳐주고 있는 것들을 의자라고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허리 아파 병원에 가는 일과, 참외 호박 밭에 지푸라기를 깔자는 것만으로 시인은 의자라는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대화체 그대로 써서 어찌 보면 가벼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시이다. 얼마나 주제가 선명하고 따뜻하고 여운이 남는 시인가. 이런 의사소통 하나에서도 시의 소재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시인의 능력이다.
위 세편의 시는 내가 좋아하는 유의 시이다. 내가 좋다고 해서 모두가 좋을 수는 없다. 시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시를 만나면 좋은 시가 되는 것이다. 이정도의 시라면 편향되지 않고 모두에게 감동을 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읽기 쉽고 여운이 남는 시를 골라 본 것이다.
이런 중요한 시간에 좋은 시를 읽는 것만으로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음 먹은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듯, 시인들도 시론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쓰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습관이란 하루아침에 깰 수 없기에 이 자리를 비롯해 다시 한번 복습해 보자는 뜻이다.
O.시란 낯설게 하기, 몸 바꾸기이다. 어떤 사물을 그대로 보지 말고 시적 이미지로 몸을 바꿀 때 시의 몸이 형성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보아 낼 때 신선한 시가 될 수 있다.
O.하이데거의 '시간의 이론'을 보면 "모든 사물은 스스로 말하고 있다. 내가 사물대신 말하지 말라. 사물이나 상황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 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감정이 통제 되지 않아 내가 사물대신 다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 보니 시가 객관성을 잃고 자신의 넋두리나 하소연하는 관념시, 추상적인 시가 되고 만다.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사물이나 상황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다.
O.시인은 독자에 대한 과잉친절이 문제이다. 시가 가지고 있는 상징을 시인이 다 설명해 버리면 독자는 너무 심심해 진다. 독자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그 방법만 일러주면 되는 것이다.
O. 원관념이 가져다주는 메타포 보다 더 강한 메타포는 없다. 원관념을 그대로 쓰면 왠지 시가 되는 것 같지 않아 문장 하나하나에 에두르기를 한다. 보조관념인 악세사리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으면 사물이나 상황이 보조관념에 치어 말을 못한다. 한 두 개의 보조관념을 조화롭게 받쳐줄 때 시가 투명해질 수가 있다.
O. 지나친 과장이나 꾸밈은 시를 유치하게 만들 수가 있다. 天衣無縫, 시란 짜깁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사람의 옷처럼 바늘로 꿰맨 자국이 없어야 한다.
O. 시는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말도 그 시와 맞지 않으면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아깝다고 해서 이말 저말 다 집어넣다 보면 시가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O. 시인은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이다 보면 시가 경직될 우려가 있다.
O. 시에선 밑그림이 선명해야 해야 한다. 무얼 얘기하고 싶은지 핵심이 투명하게 드러나야만 전달이 된다.
O. 원관념과 보조 관념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통속적인 시가 되고, 너무 멀면 난해한 시가 될 수 있다.
O.사물이나 상황을 꼼꼼히 묘사하고 그 의미를 재해석하는 노력이 남달라야한다.
O. 시를 쓰는 시점을 현재로 하는 것이 훨씬 리얼하다. 꼭 과거로 해야 할 경우 과거로 돌아가서 현재에 서있는 형태로 쓰면 된다.
O.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에게 분명한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왜 이 시를 쓰려하는지? 무엇을 쓰려 하는지? 어떻게 쓰려는 것인지? 목적이, 그 주제가 분명할 때 창작에 들어가면 시의 주제가 선명할 것이다. 어떤 시는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무슨 목적으로 그 시를 썼는지 주제도 없는 시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시들은 독자를 우롱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 외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중요한 사항 몇 가지만 골라 보았다.
손자병법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고 했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선 내 시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보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문제점을 알고 있다면 앞으로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시 쓰기도 사람이 하는 짓이라 사람의 관계를 너무나 빼 닮았다. 아무리 좋은 사람의 관계도 적당한 간격을 유지할 때 아름다운 법이다. 시도 그 적절한 거리가 형성될 때 시의 주제가 선명해진다. 예쁜 사람보다는 매력있는 사람이 마력이 있다. 시가 투명해야 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속이 다 보이면 마력을 끌지 못한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거나 난해한 시는 독자가 한쪽으로 치우칠 수가 있다. 나는 중간을 참 좋아한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적절하게 배려한 시가 읽히기도 쉽고 여운도 남아 나는 그 경계에 서있다. 중심을 지키는 것은 양쪽을 다 어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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