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와 글 공부

[스크랩] 정호승

취몽인 2010. 8. 29. 16:06

정호승

정호승(鄭浩承)

1950년 경상남도 하동 출생
1983년 경희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설굴암에 오르는 영희> 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 당선
1976년 김명인, 김창완, 이동순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위령제> 당선
1989년 제3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시집 :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 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작가 이야기  

순결한 동심의 정서와 맑고 아름다운 서정의 결
평론가 하응백의 간명한 표현처럼 정호승은 '사랑'의 시인이다. 눈사람처럼 순백한, 그래서 눈사람과 사랑의 교감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순도 높은 서정 세계는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에서부터 다채롭게 펼쳐진다. 시인 특유의 순결한 동심의 정서가 맑고 아름다운 서정의 결을 일관되게 유지케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는 값싼 감성을 자극하는 싸구려 산파극이나 요즘 베스트셀러 순위를 점령하고 있는 수많은 대중시와는 자못 다르다. 무엇보다도 그의 순정한 사랑과 동화적 시심의 뒤란에는 가난과 소외, 불행과 고통에 대한 동정과 타자에 대한 연민의 정서가 배음(背音)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무하고 그 생채기를 치료하는 어머니 젖가슴과 같은 '따뜻한 슬픔'!
두 번째 시집 <서울의 예수>에서도 사랑을 위한 기다림의 끈기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아직도 사랑할 자유밖에 없는/너희는 날마다 해 뜨는 곳에/그리움과 기다림의 씨를 뿌려라"('서울 복음 2'). 세 번째 시집 <새벽 편지>에서 시인의 사랑은 사회 전체로 확대 ·변주 ·일반화된다. 그는 전태일의 고귀한 희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허연 최루가스를 뒤집어쓰고/홀로 울고 있는 꽃다발 하나"('꽃다발')을 영전에 바친다. 네 번째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에서 시인은 역사와 시대에 대한 좌절과 절망에서 촉발된 통렬한 자기 반성을 시작한다. 엇갈리는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했을 때/너는 이미 숨져 있었고/네가 나를 사랑했을 때/나는 이미 숨져 있었다"('어떤 사랑').

이후 7년만에 상자한 다섯 번째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에서 시인은 사랑의 본성과 존재 원리에 대한 체득이 외로움과 숙명적으로 결합하여 우주적인 교감의 세계로 확산되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외로움이 내재된 슬픔 사랑을 그의 시적 영토로 이주시켜 다음 같은 절창을 낳는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수선화에게').

최근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를 간행했다. 사랑의 본질은 비움과 채움, 감춤과 드러냄의 끝임 없는 길항(拮抗)임을 간결한 시행에 담아 낸, 그야말로 이 시집에 진주처럼 박혀 있는 빛나는 소품 하나.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반달') 어쨌든, 그는 문학성과 대중성의 행복한 조화를 누리는 시인이다. (류신/문학평론가)



조선일보/문화
[문화] “시는 아픔을 치유”…등단30년 정호승씨 (2002.03.17)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의 시인 정호승(鄭浩承·52)이 등단 30주년이다. 그는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에 첫 당선하고, 이듬해 대한일보 시, 1982년 조선일보 단편소설이 각각 당선됐다. 그는 18일 어른을 위한 동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열림원)를 낸다. 그에겐 여덟번 째 시집이다. 17일 오전 그를 만났다. ‘짧은 질문, 20자 답변’ 제안에 그가 동의했다. 간혹 20자를 약간 넘기도 했지만.

―벌써 30년이다. 뒤돌아보면?

“참 게을렀다.”

―창조적 전성기는 언제였나?

“전성기가 지났을까? 시를 쓸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지금부터 모아야지.”

―전성기는 자각되는가?

“지난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니 후회도 있는 것.”

―가장 위대한 작품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나?

“기본적으론 있다. 그러나 판단은 내 몫이 아니다.”

―지난 30년, 개인적인 인생사는?

“인생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나는 고통의 곡선의 길을 따라왔을 뿐이다.”

―시인은 고독해야 하는가?

“가능한한 그렇지 않는 게 좋지.”

―시인의 밥벌이는 불가피한 것인가?

“시로 벌면 안되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노동으로 벌어야 한다.”

―현대시는 천재를 기다리고 있는가?

“천재는 많은데…. 천재는 당대에 발견되는 게 아니고 나중에….”

―본인은 천재를 닮았나?

“그렇다면 시를 요 모양 요 꼴로 쓰지는 않았겠지.”

―우리 시의 쟁점은?

“80년대까진 쟁점의 시대였고 논제도 있었다. 지금은 다 사라졌다. 이젠 완성도의 문제만 남았다.”

―시인에게 인기란?

“거품이지.”

―‘애독자’란 가능한가?

“시의 선호도는 가능하다. 나 자신도 특정시인을 좋아한다.”

―시·노래 모임인 ‘나팔꽃’ 운동은 왜 하나?

“우리 대중가요의 서정성 회복을 위해서.”

―현대시사에서 2002년은 어떤 지점인가?

“다양성이 심화·확대되는 기점….”

―시인에게 산문 쓰기는 상업적 목적이 아닌가?

“일부는! 허나 전부는 아니다. 완성도가 떨어지면 상업적이 된다.”

―당신에게 시란 무엇인가?

“인생엔 운명이 있고, 그 운명의 고통엔 위안이 필요하다. 나에겐 시였다. 시를 쓸 때 제일 기뻤으니까.”

―시인에게는 무엇이 유혹인가?

“자연과 사물의 마음이 유혹이다.”

―새로운 시집을 발표하게 될 때마다 시인은 위선적인 겸손을 ‘떨게’ 되지 않는가?

“떨게 되지. 그런데 시 속에도 이미 위선이 들어 있다. 그렇기에 겸손을 가장하는 것이지.”

―훌륭한 시인과 위대한 시인의 차이점은?

“시인에겐 수사(修辭)가 필요 없다.”

―시에게 신(神)이 있는가, 유령이 있는가?

“나에겐 신쪽이다.”

―꿈속에서 시를 쓸 때가 있나?

“한두 번. 아침에 일어나 메모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개꿈이지…”

―시에 종말이 있는가?

“없다.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신은 현대시사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고 있는가?

“참 미미하다. 한 마리 개미만큼.”

―지금까지 평론가나 독자가 알지 못한 비밀이 있는가?

“난 ‘거짓말’을 많이 한다. 속고 안속고는 내 문제가 아니고.”

( 출처 : 金侊日기자 kikim@chosun.com )


도합 15년의 外道…결국은 詩뿐이었다

나는 스스로 시를 버린 적이 세 번이나 있다. 1982년에 시집 ‘서울의 예수’가 나오고 87년 ‘새벽편지’가 나올 때까지 5년 동안, 90년에 ‘별들은 따뜻하다’가 나오고 97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가 나올 때까지 7년 동안, 그리고 99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가 나오고 지금까지 3년 동안, 나는 철저하게 시를 버리고 살아왔다.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등단한 지 30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도합 15년 동안이나 시 한 편 쓰지 않고 시를 버리고 살아왔으나 시는 지금까지도 나를 버리지 않고 있다. 마치 ‘돌아온 탕아’를 둔 아버지처럼, 내가 돌아오기만 하면 언제든 따뜻하게 맞이하고 돼지를 잡고 잔치를 벌인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 이제는 시가 나를 버려도 내가 시를 열심히 찾아가 효도할 생각이다. 이제 느린 것은 두렵지 않으나 멈추어 서는 것은 두렵다.

나는 일찍이 마흔 하나에 ‘월간조선’에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10년 동안 ‘수절’을 하다가, 21세기가 시작되는 벽두에 ‘현대문학북스’라는 출판사를 창업하고 위탁경영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마저도 지난 연말에 그만두고 다시 내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출판인이 아니고 시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물론 친소유무를 떠나 이해득실과 손익계산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그 얼마나 표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공부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그들을 이제 내 스승으로 삼고 있지만, 나는 늘 이렇게 깨닫는 일이 늦어 막대한 시간을 그 대가로 지불한다. 월간조선을 그만뒀을 때도 마찬가지다.

실은 그때 나는 문청 시절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을 쓰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 그러나 나는 결국 문학의 장르 중에서 나의 문학적 기질에 맞는 장르가 시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만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인생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죄가 가장 크다는데, 나는 이렇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뒤늦게 깨달아 인생을 허비하는 죄를 지었다.

그러나 용서하시라. 지금 나는 두 번 다시 그런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다시 시의 자리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은빛 니켈로 만든 십자고상이 하나 놓여 있다. 평생 십자가에만 매달려 살아온 청년 예수를 바라본다.

그가 잠시 고개를 들고 나를 보더니 “짜식!” 하고는 싱긋 웃는다. 나는 그 맑은 웃음에 그만 고개를 숙이고 묵상한다. 예수의 손에는 십자가의 못 자국이 나기 전에 먼저 목수 일로 생긴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내 삶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시를 쓸 수 없었다. 나의 삶 또한 만남과 헤어짐의 모자이크라는 것을,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과 시련이란 해가 떠서 지는 일만큼이나 불가피하다는 것을, 불행이 인간을 향한 신의 가장 확실한 표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단 한 편의 시도 쓸 수 없었다.

그 동안 내가 쓴 시들은 고통이 잠깐 잠잠해지고 난 다음에 집중해서 쓴 시들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문예지에 꾸준히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벼락치듯이 한 권 분량의 시를 써서 급하게 시집을 내곤 하였다.

깊은 사색의 사막을 건너지 못하고 무슨 자위하듯이 시를 썼으니 그 시들이 오죽하랴. 그 동안의 고통을 위로 받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다 보니 나로서는 자연히 그런 방법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괴테는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름다운 색채는 바로 빛의 고통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결과다. 고통과 시련과 역경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결코 인간이 아름다워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자 어느덧 50대 중년의 사내가 되고 말았다.

상처 없는 사람은 결코 먼 길을 떠날 수 없고, 이미 먼 길을 떠난 사람에겐 오히려 그 상처가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이제 그 상처의 힘으로 다시 시의 길을 가려고 한다. 세상에는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길이 있지만 꼭 가야 할 길이 있다. 이제 그 길이 시의 길임을 확신한다.

어린 시절 나는 시를 내 현실적 삶의 한 방편이나 도구로 활용했다. 시의 본질적 가치를 중요시하기보다 시가 왜 나의 현실에 필요한가 하는 데에 먼저 시의 가치와 효용을 두었다.

고3 때는 문예장학생을 모집하는 유일한 대학인 경희대학교에 무시험 입학하기 위하여 시를 썼으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문단에 등단해야만 졸업 때까지 문예장학금을 계속 받을 수 있어서, 그 장학금을 받기 위하여 또 열심히 시를 섰다. 이렇게 나는 시를 무기 삼아 현실적 난관을 타개해 왔고, 그때마다 시는 기꺼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시는 나로 하여금 시대와 현실을 제대로 보는 밝은 눈을 지니게 해주었다. 내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의 말석에 엉덩이를 디밀었을 때는 ‘10월 유신’이 선포된 지 불과 석 달 뒤였으며, 이후 1979년 유신정권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나의 20대는 줄곧 유신시대와 그 시기를 같이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그 겁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심약한 나는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숨을 죽였으며, 긴급조치가 선포될 때마다 국가가 국민에게 자행하는 그 거대한 테러 앞에 쥐새끼처럼 벌벌 떨었다.

그때 나는 70년대의 젊은 시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용기 있는 자는 행동하였으며, 나처럼 용기 없는 자는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스스로 비굴하게 느껴졌다. 한두 해도 아니고 70년대를 온통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김지하 시인을 감옥 밖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나의 심정은 참으로 안타깝고 비참한 것이었다.

당시 김지하 시인은 70년대의 모든 시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것이라고 생각되어, 나는 지금도 김지하 시인에게 감사와 부채 의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래도 그때 시는 섬약하고 용기 없는 나를 불쌍히 여겨 그나마 시를 쓰게 해주었다.

비록 목소리는 작고 여리고 부드럽고 잔잔하나 그래도 그러한 목소리로 한 시대의 눈물을 조금이나마 닦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만일 시가 없었더라면 유신시대를 사는 동안, 나는 더욱 부끄럽고 비참했을 것이다. 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군사독재시대의 한 모퉁이에서 숨을 할딱거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때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시인들, 김창완 김명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반시’를 결성, 소위 현실참여시의 기치를 높이 들 수 있었던 것도 시가 내게 베푼 은혜 중의 하나다. ‘민중의 차원 속에 동화하지 못한 오만한 언어에 대하여, 시의 본질인 정신보다는 수단일 뿐인 언어세공에 대하여,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맥락으로부터 이탈해 버린 관념적인 세계성에 대하여 부정의 입장에 서고자 한다’고 천명하던 ‘반시’ 창간사의 한 구절을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이제 탕아의 심정으로 다시 돌아와 아버지인 시의 가슴에 안기니 평화롭다. 시가 배불리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순수한 내 피와 살이 되어 내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만은 자명하다.

석수장이가 망치질을 백 번을 해도 돌덩이에 금 하나 가지 않다가 백 한 번째 내리치자 돌덩이가 둘로 갈라지는 경우, 그것은 백 한 번째의 망치질 때문에 돌덩이가 쪼개진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망치질 횟수가 모두 합쳐져 쪼개진 것이다. 나는 이제 백 번을 하고 백한 번째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는 백한 번째의 망치질에서 돌이 깨어지는 순간에 태어나는 그 무엇이다.

무엇보다도 내 그릇에 넘치게 물을 담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의 그릇이, 나라는 한 인간의 그릇이 간장종지만큼 작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고 그 그릇에 시라는 간장을 조금 담아 남들이 밥 먹을 때 조금씩 찍어먹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시로서 무엇을 이룰 생각은 버릴 것이다. 산다는 일이 무엇을 이루는 일이 아니듯, 시 또한 현실적으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감동과 위안을 주는 그 무엇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흙탕물이 질퍽한 연못에 떠 있는 아름다운 수련과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수련은 더러운 오물들이 떠다니고 온갖 쓰레기들이 가라앉아 있는 진흙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자신을 멋진 꽃으로 만들어줄 요소들만을 뽑아 올려 백색과 홍색의 꽃을 피운다. 주위의 열악한 환경에 아랑곳없는, 그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을 꽃으로 만들어줄 요소들만 뽑아 올리는 수련의 뿌리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싶다. 그런 뿌리의 마음이 되어야만 현재의 악에서 미래의 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하되 사랑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제 시를 열심히 쓰되 시에 얽매이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몇 차례나 시를 버리는 ‘탕아’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물새는 물에 젖지 않고 물에 뛰어든다. 나는 시를 쓰는 물새가 되어 물에 뛰어들다가 그만 물에 젖어버려도 좋다. 물에 젖지 않고 물에 뛰어드는 물새만큼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어떤가. 그래도 물새는 물새가 아닌가.




현실 인식의 시세계

                       ─ 정호승론

1.

현대 시문학사에서 동인지를 중심으로 한 시작 활동은 상당 부분 긍정적인 측면에서 평가되고 있다. 비교적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동년배들이 모여서 문학 활동을 하게 됨으로써,  개인적인 목소리로 제약될 수 있는 장애를 더불어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  동인들이 같은 목소리를 지닐 때의 강도가 개별적인 목소리의 강도보다 더 크고, 이에 대한 독자 대중의 방향도 이에 상응한다는 점에서 문학 운동으로서의 의의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동인지 중심의 문학 운동은 근대 문학사에서의 자유주의적 성향을 극복할 때만 운동으로서의 의의도 지닌다.  즉 여러 가지의 생각과 목소리를 갖고 있는 문학자들의 연합이나 집합체가 아닌 동지적인 집단으로의 수준에 이를 때, 동인지 문학 운동의 성과는 극대화된다.

이런 문학 운동의 의의를 지니는 동인지 활동은, 1970년대에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는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즉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정호승 등이 1973년에 ‘신춘문예’에 당선했던 시인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1973>이나, 이들을 중심으로 이후에 조직된 <자유시>, <반시>의 동인들의 활동은 어느 정도의 성과와 의의를 갖고 1970년대 시문학사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이런 활동들에 촉발되었던 1980년대의 <5월시>나 <시와 경제>와 같은 그룹들의 동인 활동은, 그들 활동으로서의 의의뿐만 아니라 이후 젊은 시인들의 문학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쳐, 문단의 새로운 세대를 형성케 했다. 이런 시인들의 성과는 최근 발행된 ꡔ오늘의 시ꡕ나 ꡔ올해의 시ꡕ에서 취급된 시인들의 작품 세계와 의의를 보아도 그 새로움을 짐작할 것이다.

<1973> 동인들이 등장하는 70년대 초반은 3공화국의 마지막을 장식하려는 군사 독재의 거센 반동적 행위인 삼선 개헌과 이를 공고히 한 유신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시대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하여 이 땅의 시인들은 저항과 절규의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김지하의 거센 판소리 리듬을 탄 풍자적 세계와 신경림의 민요적 리듬으로 형성된 서사적 민중의 세계의 모습뿐만 아니라, 소시민적인 시인들의 의로운 외침은 유신 독재의 차가운 얼음덩이를 녹이고 족쇄를 푸는데 공헌하였다. 즉 70년대 문인들의 역할은 어둠을 물리치고 밝아야 할 새벽을 기다리는 여행자와 투사였다. 그래서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보다 선진적인 생각의 소유자였으며, 이들의 문학 작품은 이런 민주화 운동의 지침서가 되었고, 그들 민중과 민주투사들의 삶에 희망과 위안을 주는 도구가 되었다.

또한 1970년대 초반은 민족사의 비극, 즉 분단된 조국의 한 부분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독재 정권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했던 시기이다. 그리고 시인들은 이 시기를 이런 이해의 양극단인 대학생과 군인의 처지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은 시대의 중심에서 문학 활동을 한 정호승은 당시 대부분의 대학생이나 젊은이들이 갖고 있던 현실에 대한 인식을 비교적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1973년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한 정호승은 이와 같은 문제들 및 이와 관련된 민중들의 모습들을 시로 형상화하기 시작하였다. “전생애를 짓누르고 있는 부자유와 폭력, 규범과 질서, 도덕과 윤리의 독재성에 대하여 저항” 정호승, 「나에게 있어서 시란 무엇인가?」, ꡔ1973ꡕ 3집,  1974, 35면.
하려고 한 그와 당시 민중들의 모습은 언젠가 이런 제약과 구속으로부터 해방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략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시들은 두 개의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처음의 것은 등단 이후 1979년 발행한 시집인 ꡔ슬픔이 기쁨에게ꡕ에 묶여 있는 것이며, 초기와는 약간 다름 모습을 보이는 격동의 1979년 이후에 발표한 시작품들을 중심으로 묶은 ꡔ서울의 예수ꡕ계열에 속하는 작품들이 또다른 계열이다. 이 글은 정호승의 이와 같은 작품 세계를 분석하여 그의 시세계의 의의를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부단히 변모할 가능성과 무한한 미래의 시세계가 열려 있는 시인에 대한 이와 같은 개괄적 검토는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시세계가 새로운 세계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히 잠재하여 있기 때문에 어떤 단정적 평가는 쉽게 부정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에서 최대한으로 벗어나기 위하여, 이 글은 현상적인 작품 세계의 점검에 머물고자 한다. 70년대와 80년대를 같이 살았던 우리 모두의 상식에 기초하여 그의 작품을 살피려는 것이다.

2

정호승 초기시는 자신이 화형식을 거행했던 서정주의 리듬과 소재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초기시에서 그의 생각과 감정은 자연 대상물에 의탁하여 표현된다. 즉 ‘객관적 상관물’을 동원하여 생각과 감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객관적 상관물의 형상화와 더불어 그가 선택한 소재들의 상당 부분이 민담적인 것이고 이야기와 전설을 내포하거나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이런 형상화 방법이나 소재 선택은 그가 부정하려 했던 서정주가 즐겨 쓰던 것이었다.

또 소재의 선택과 더불어 구사된 리듬과 표현법은 위와 같은 영향 관계를 부정하기 힘들게 한다. 그는 당시 시사에 거대한 우상처럼 존재하고 있었던 선배시인, 그러나 젊은 시인들에게는 독재자의 시녀와 같은 모습으로 보였던 사람의 화형식까지 했다. 그리고 이 우상을 철저하게 극복하고자 했지만, 그 늪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정호승의 이런 ‘자화상’을 다음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 아배는 등짐장수
소금 한 짐 등에 지고 장터 따라 떠돌던
내 죽은 아배는 등짐장수
(중략)
병천(竝川) 장터 들끓던 만세소리 들으며
닷새장 고개 넘는 나는 젊은 장돌뱅이
물밀 듯 장터마다 만세 불렀던
그날 내 할배는 등짐장수
소금 뿌리며 소금 뿌리며 장터 따라 떠돌던
그날 내 할배는 소금장수  
                             「장터」

그러나 정호승의 시가 서정주의 ‘자화상’과 달랐던 점은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다.  인간과 인생의 구경적 추구를 꾀했던 생명파 시인이라는 서정주를 추구함에 머물지 않고 현실과 역사의 현장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가 눈을 돌린 곳에는 일제 강점의 암울한 삶을 살았던 민중들이 있었고, 분단된 조국의 모습은 사격장 산마루에서 숭숭 구멍이 뚫린 총 맞은 소나무로 흐느끼고 있었고, 동란의 탄피를 줍는 아이들 귀에 들리는 엿장수 할아버지의 가윗소리로 들렸고, 아지랑이 피는 총구에 진달래를 꽂은 병사의 모습(「사격장」)으로 서 있었다. 할배의 낫을 버리고 지게를 벗어 던지고 도망간 마당쇠의 낫은 피눈물이 묻어 있었다. 총 맞은 국군을 지고 날랐던 지게를 벗어 던진 용기를 갖고 있는 민중의 모습이 (「지게」) 정호승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서럽게만 울던 문둥이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종의 자식으로 민중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작품 세계는 현실에 눈을 돌렸을 때, 더욱 강렬한 민중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봉건적인 세계, 민속의 세계, 민담의 세계를 뛰쳐나온 민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감옥이었다. 정호승의 초기 시세계는 이런 민중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순히 억압받는 민중이 아니라 군사 독재와 이들의 탄압을 꿋꿋하게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으로서 해방될 그 날을 기다리는, 봄을 기다리는 ‘눈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눈사람’은 그의 많은 시(「눈사람」, 「파도타기」, 「출감」 등)에서 등장하여 어둠을 마지막까지 지켜나갈 선지자로서 이 세상의 정의를 지키는, 끝끝내 솟아나는, 솟아나서 새로운 사회의 밑거름이 되는 희생자인 것이다. 봄이 오면 비록 녹아 없어지겠지만 어둠의 시대, 겨울의 시대에는 끊임없이 살아날, 우리 모두의 희망과 꿈을 갖고 있는 ‘슬픔’을 극복하는 현실체인 것이다.

어머니
감옥에서 나오시는 이 겨울 집집마다
숯불 피워 재 덮어서 알밤을 굽고
아이들은 골목마다 눈사람을 세웠다
어머니 눈사람으로 서 계시다가
눈사람 녹은 물로
감옥의 우물 속에 깊이 흘러가셨다
                            「출감」

어머니와 같이 있는 민중들 속에서 정호승은 지난 봄 감자 눈 속에 몰래 숨어 감자꽃처럼 피어나던 병사(「감자」)를 만나게 되고, 문둥이가 된 누이와 술집 작부가 된 유관순, 무악재 개나리를 헤치며 오는 어머니(「유관순」)를 만난다. 그리고 흰 성기를 단 미군에게 몸을 빼앗긴 어머니(「옥중서신」)를 만나면서, ‘눈사람’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포함한 민족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민중들 속에서 북한 어부의 딸과 남한 어부의 아들이 알몸을 처음 껴안고 첫눈과 함께 오고 있는 모습(「옥중서신」)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본 민중의 모습은 감자꽃처럼 활짝 핀 모습은 아니었다. ‘슬픔’을 간직한 모습인 채로 였으며, 맹인이거나 혼혈아였다. 시대의 어둠과 같이 눈이 먼 맹인 부부의 노래는 결코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더구나 아직도 외세의 강한 힘이 이 땅에 미치고 있으며, 그 모습이 비참한 형상으로 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슬픔’을 극복하기에는 아직도 무력하기만 한 민중의 모습이 (「가두낭송을 위한 시」) ‘봄눈’을 기다리면서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슬픔’은 당시 민중의 여러 슬픔이자 어둠의 형상화이다. 분단과 독재에 억눌린 민중이 간직한 슬픔이었다. ‘기쁨’을 기다리는 민중과 시인에게 칼을 집어넣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는 ‘눈사람’이 간직한 슬픔이었다.

사람들이 잠든 새벽거리에
가슴에 칼을 품은 눈사람 하나
그친 눈을 맞으며 서 있습니다
품은 칼을 꺼내어 눈에 대고 갈면서
먼 별빛 하나 불러와 칼날에다 새기고
다시 칼을 품으며 울었습니다
용기 잃은 사람들의 길을 위하여
모든 인간의 추억을 흔들며 울었습니다

눈사람이 흘린 눈물을 보았습니까?
자신의 눈물로 온몸을 녹이며
인간의 희망을 만드는 눈사람을 보았습니까?
그친 눈을 맞으며 사람들을 찾아가다
가장 먼저 일어난 새벽 어느 인간에게
강간당한 눈사람을 보았습니까?

사람들이 오가는 눈부신 아침거리
웬일인지 눈사람 하나 쓰러져 있습니다
햇살에 드러난 눈사람의 칼을
사람들은 모두 다 피해서 가고
새벽 별빛 찾아나선 어느 한 소년만이
칼을 집어 품에 넣고 걸어갑니다
어디선가 눈사람의 봄은 오는데
쓰러진 눈사람의 길 떠납니다
                          「눈사람」

정호승의 시에는 이제 슬픔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이 위의 시에서 드러난다. 용기 잃은 사람들은 모두 피해서 가지만, 인간의 희망을 만드는 눈사람의 희생 정신을 아는 소년이 나타난다. 이 새로운 투쟁의 계승자는 눈사람을 또는 봄을 위하여 새로운 투쟁의 길을 걷게 된다. 이제 비관만이 존재하는 어둠의 세계만이 아닌 새로운 아침의 거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는 북한의 소년이 띄운 ‘종이배’를 맞는 우리의 소년들도 통일을 위한 ‘종이배’를 띄워야 한다(「종이배」)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럴 때만이 칼을 품은 소년의 꿈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별을 찾아 나선, 별을 삼태기에 쓸어 담던 민중의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의 초기시들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1970년대의 어둡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의 강한 의지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당시 독재 정치 아래 민중 현실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정호승이 파악한 역사적 현실이었고, 이의 극복과 실현이 현실의 장애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독재 정권을 후원하는 외세의 힘마저 겹쳐 있어서, 눈사람이 찾고자 했던 그리고 백의 민족이 추구한 민족적・민중적 염원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그의 시에서 표현되어 있다. 비록 어떤 행동의 구체화를 보이지는 못하고서 현실을 드러내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이런 작품의 양상은 1970년대 문학 활동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정호승의 시세계를 두고, 질곡과 파탄을 계속해 온 민족의 역사에서 우리 민중의 모든 것을 해방시켜 줄 실체로 박해석, 「발문」, ꡔ슬픔이 기쁨에게ꡕ, 창작과 비평사, 1979. 눈사람을 설정한 시인의 기다림은, 기다림에 머물고 있다는 현재적인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염두에 둘 때, 이런 기다림마저 큰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의 기다림은 정말 지루하고 힘든 것이다. 신동엽처럼 「진달래 산천」의 활기참과 민주・민족적인 염원을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랬다. 옥중의 김지하 시인이나 카프 계열의 시인들의 시집을 들고 다니는 것마저 신변의 위험을 느꼈던 상황에서, 상당 부분 소시민적인 속성을 지녔던 1970년대의 시인들 속에서 정호승의 시세계는 한 단계 높은 곳에 있었다 할 것이다.

소시민들이 갖고 있는 제한적 성격 ─ 소극성, 행동에 대한 기피 현상 ─ 을 극복하고자 한 1970년대 문학 운동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결코 쉽지 않을 때 보여준 정호승의 지향과 몸부림은, 이런 관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이런 힘의 원동력의 원천에는 앞에서 잠깐 언급한 집단적 문학 활동의 힘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집단적 문학 운동 덕분에 1980년대의 문학 운동도 가능한 것이었다.

3

1979년에 불어닥친 유신 체제의 종말과 새로운 군사 독재의 음모는 1980년의 민주화의 봄에 찬물을 끼얹었고, 급기야는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을 대량 살육하는 만행으로 이어졌다. 군사 독재를 꾀하는 군인들에 의하여 민중들의 항쟁은 핏빛으로 물들였다. 그리하여 끊임없는 독재 정치의 슬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리고 눈사람을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며 승화된 시문학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정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문학자들의 노력이 곳곳에서 진행되었으며, 사회의 각계 각층의 사람들도 새로운 조직과 이념을 통하여 새로운 단계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였다. 즉 문학 운동이 다른 여타의 운동 세력들과 더불어(계승하여) 민주화 운동의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모습을 보인다.

1980년 광주를 계기로 하여, 노동 운동, 학생 운동은 문화 운동의 한계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면서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을 수행하는 단계에 이른다. 여기서 70년대 문화 투쟁의 사회 운동에서의 지도적 역할은 상대적으로 작아졌다. 더불어 문화 운동도 전면적으로 정치 투쟁의 측면을 수용하게 되었다. <자유실천문인협회>에서 시작하여 <민족문학작가회의>나 <민예총>으로의 발전은, 이와 같은 80년대의 문화 운동이 실천적인 측면에서 이룩한 성과였다. 이런 80년대 초반에 정호승이 보인 작품 세계는 많은 부분에서 7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이룩되는 것 같다. 즉 이전에 보이던 어둠과 슬픔이 계속되는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읊고 서울의 어두운 현실을 타개해 줄 이 시대의 예수 부활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이제 ‘눈사람’의 선지자, 백의 민족을 기다리기보다는 서울 한복판에 나타날 수 있는 서울 예수를 기다리고 있다.

이와 같은 정호승의 80년대 시작품은 죽음과 눈물을 형상화하고 있다. 즉 80년 5월 광주의 죽음과 민중의 눈물이 표현되기 시작한다.

봄이 가면 남쪽 나라 눈물꽃 피네
보리피리 불면 보리꽃 피고
까마귀 울어대면 감자꽃 피더니
봄은 가고 남쪽 나라 눈물꽃 피네
눈물꽃 지고 나면 무슨 꽃필까
종다리 솟아 날면 장다리꽃 피고
눈물바람 불어대면 진달래꽃 피는데
눈물꽃이 지고 나면 무슨 꽃필까
눈물꽃은 씨앗 하나 총맞아 죽어
봄이 가면 남쪽 나라 눈물꽃 피네
                               「눈물꽃」    

봄이 가 버린 남쪽 나라에는 눈물꽃만이 핀다. 장다리꽃이나 감자꽃이나 진달래꽃이 아닌 원통하여 죽은 망혼의 눈물꽃 ─ 피눈물꽃이 이 땅에 피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시인의 행동은 소시민적인 범주에 머무르는 한계를 보인다. 시인은 영등포 여관방에서 다산시집을 읽다가 눈물의 잠이 들었고, 그런 속에서 사랑과 자유의 노래를 부르고 싶은 종이새가 되어 꿈을 (「그 날밤」) 꾸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인 투쟁이 아닌 또 다른 봄을 기다리는 준비를 해야 했던 것이다. 죽은 자식과 총에 의해 희생된 아버지를 장사지내며 언뜻 한탄 같은 넋두리를 하였다.

사람들은 왜
무우시래기국 같은 아버지에게
총을 쏘았을까

혁명이란 강이나 풀,
봄눈 내리는 들판 같은 것이었을까

죽은 아기 위에 타오르는
마른 풀을 바라보며

내 가랑이처럼 벗고 드러누운
들길을 걸었다

전철이 지나간 자리에
피다 만 개망초꽃
                       「개망초꽃」  

이제 시인은 혁명이나 민중을 강이나 풀, 봄눈 내리는 들판 같은 것에서 찾지 않는다.  개망초꽃 같은 민중들의 모습을 전철 주위에서 발견한 시인은, 서울과 도시에 들어와 매일매일 부딪치는 군상들을 대하게 된다. 반월 공단의 풀처럼 짓밟힌 노동자, 불쌍한 집배원의 죽음, 목사의 죽음, 임신한 처녀의 죽음, 구두닦이 소년의 매맞음 등 신문의 사회면 소식의 풍부한 취재원인 서울의 거리에서 정호승은 죽음과 눈물을 만나는 것이다. 가난한 농촌을 떠나 노동자가 된 딸의 죽음을 보는 어머니의 눈물(「마지막 편지」), 고향의 늙은 부모님을 위해 컬러 텔레비전을 사가는 고향의 친구(「칼라 텔레비전」) 등의 신문의 기사 같은 내용의 시작품이 이 당시 정호승 시의 주류를 이룬다. 이는 그의 직업과 유관한 듯하다. 신문, 잡지 기자의 편집벽과도 유관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본 현실과 세계는 다시 맹인들이 살고 있는 맹인촌이거나 국립 서울 맹아학교와 같은 어둠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나 정호승의 80년대 시작품은 이런 어둠만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서 또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부활을 위한 죽음이었으며, 각박한 도시 속에서 짓눌려 살고 있는, 서울에 살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서울의 하늘에서 빵과 사랑을 누리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었다. 일견 70년대에 보여주었던 분단 현실이나 통일 조국에 대한 열망의 시적 형상화에서 한결 후퇴한 경향의 작품 세계를 보이면서, 진실한 소시민과 민중의 생활을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듯이 보인다. 어둠과 굶주림이 있는 밤에 사랑과 희망의 불씨를 간직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모닥불을 밟으며」)을 표현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예수 부활을 노래하고 있다.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닦는 소년」

이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시인은 별을 담아다가 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하는 자리를 찾는 것이다. 맹아학교의 학생과 선생님이 딸을 노래하고, 맹인촌에서 별을 기다리면서 어둠 속을 벗어날 희망을 위하여 자기의 자리를 성실히 지키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그의 시들에는 서울 예수를 기다리는 다양한 민중들이 노래되고 있다. 그러나 이 민중들의 아픔을 민중들의 즐거움이나 운동 속에서 보여주는 역동적인 힘으로써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성도 아울러 보여준다. 이런 정호승 시의 한계는 “우리 민중의 역사적・사회적 현실에 대해 구체적이고 뚜렷한 신뢰와 삶의 방법을 지니고 있지 못함” 정다비, 「민중적 감성의 부드러운 일깨움」, ꡔ서울의 예수ꡕ, 민음사, 1982, 93면.
에 기인한 것이며, 시인의 소시민적 의식과 행동, 생활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사회적 의식으로 구체화하여 적극적인 대응보다는 ‘부드러운 일깨움’(?)에 머물러 있다.

선생이기를 포기한 시인이 잡지사 기자로 취직했을 때의 확대된 시야는, 선생이었을 때의 순수성과 결백성을 지키기보다는 잡다한 세상사의 모습에서 본 여러 형태의 민중의 아픔을 드러내는 수준에 머무는 것 같다. 학생을 떠나 그는 소시민 사회에 깊이 빠져 간 것이다.

4

1980년대 후반 우리 시문학의 경향 중의 하나는, 근로하는 노동자 대중과 투쟁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새로운 세대의 주체 세력으로 형상화하는 것 같다. 군사 독재의 협박과 위협, 탄압 속에서도 꿋꿋하게 미래의 전망과 현재의 보람찬 투쟁을 위하여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이, 80년대 후반의 문학에서 제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새로운 단계의 문학과 그 지향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문학 운동은 1960년대 신동엽 시인이, 1970년대 정호승이 표현한 분단 조국의 현실과 통일 조국의 전망에 대한 문제와 구별될 수 없는 통일 문학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호승의 80년대 후반의 시작품은 아직까지는 그가 지금껏 추구한 작품 경향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새롭게 떠오르는 분노와 그래도 잃지 않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70년대에 밤과 어둠, 슬픔을 물리쳐 줄 ‘눈사람’을 기다렸듯이, 80년대 초반의 죽음과 어둠 속의 서울에서 별을, ─ 눈물 속에서 희망을 찾았던 것처럼 진달래가 피는 봄날을 그리며 녹는 것이 서러운(?) 진눈깨비를 정호승은 노래(「겨울날」)하고 있다. 꽃상여 타고 간 이 땅의 민주 열사들에 대한 추모와 이들을 앗아간 독재 세력에 대한 분노도 보여준다.

빈손을 들고 무덤으로 간다
국화 몇 송이 문득 강가에 내던지고
오직 빈손으로 저녁날 무덤가에 가서
마른 풀들의 가슴에 내 가슴을 묻는다
분노가 있어야 사랑은 있고
희망이 있어야 노래는 있는가
검정딱새 한 마리 내 뒤를 따라와
눈물의 붉은 비 거두어가고
어느덧 무덤가에 스치는 저녁별
                        「져녁별」

분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민중에 대한 사랑일 것이고, 이는 희망의 노래와 연결되는 것이다. 눈물 속에서 빛나는 저녁별은 언제쯤에나 새벽별이 되어 민중들과 같이 사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문뜩 떠오르는 분노만이 아닌 ─ 민중들의 투쟁과 싸움 속에 동참하지 못하는 많은 소시민과 소시민 작가들의 한계일 터이다. ─ 새로운 사회를 이끌고 있는 적극적인 삶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는 작업에서, 정호승의 80년대 후반의 시작은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속단은 위험한 것일 가능성도 많다. 아직도 많은 작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넓은 가능성과 미래가 70년대에 등단한 시인들에게 전개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정호승의 끝나지 않은 노래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정호승론 -- 현실인식의 시세계], {일모 정한모박사 퇴임기념 논문집 -- 한국 현대시 연구}, 민음사, 1989. 으로 발표된 글입니다









슬픔으로 가는 길 / 정호승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2005-09-10


연인 / 정호승

사랑이란 오래 갈수록 처음처럼 그렇게 짜릿짜릿한 게 아니야.
그냥 무덤덤해지면서 그윽해지는 거야.
아무리 좋은 향기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면 그건 지독한 냄새야.
살짝 사라져야만 진정한 향기야.
사랑도 그와 같은 거야.
사랑도 오래되면 평생을 같이하는 친구처럼 어떤 우정 같은 게 생기는 거야.
2005-09-10


바닷가에 대하여 / 정호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제 좋다
2005-09-10


새벽편지 / 정호승

죽음보다 괴로운 것은
그리움이었다

사랑도 운명이라고
용기도 운명이라고

홀로 남아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오늘도 내 가엾은 발자국 소리는
네 창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별들도 강물 위에
몸을 던졌다
2005-09-10


폭포 앞에서 / 정호승

이대로 떨어져 죽어도 좋다
떨어져 산산이 흩어져도 좋다
흩어져서 다시 만나 울어도 좋다
울다가 끝내 흘러 사라져도 좋다

끝끝내 흐르지 않는 폭포 앞에서
내가 사랑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내가 포기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는 이제 증오마저 사랑스럽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폭포가 되어
눈물 없이 떨어지는 폭포가 되어
머무를 때는 언제나 떠나도 좋고
떠날 때는 언제나 머물러도 좋다
2005-09-10


미안하다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내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2005-09-10


산을 오르며 / 정호승

내려가자 이제 산은 내려가기 위해서 있다
내려가자 다시는 끝까지 오르지 말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
춘란도 피고 나면 지고 두견도 낙엽이 지면 그뿐
삭발할 필요도 없다 산은 내려가기 위해서 있다

내려가자 다시는 발자국을 남기지 말자
내려가는 것이 진정 다시 올라오는 일일지라도
내려가자 눈물로 올라온 발자국을 지우자
눈도 내렸다가 그치고 강물도 얼었다가 풀리면 그뿐
내려가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 올라왔다

내려가자 사람은 산을 내려갈 때가 가장 아름답다
산을 내려갈 때를 아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강요당하지 말고
해방되기 위하여 속박당하지 말고
내려가자 북한산에도 사람들은 다 내려갔다
2005-09-10


추억이 없다 / 정호승

나무에게는 무덤이 없다
바람에게는 무덤이 없다
깨꽃이 지고 메밀꽃이 져도
꽃들에게는 무덤이 없다

나에게는 추억이 없다
추억으로 걸어가던 들판이 없다
첫눈 오던 날 첫 키스를 나누던
그 집 앞 골목길도 사라지고 없다

추억이 없으면 무덤도 없다
추억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꽃샘바람 부는 이 봄 날에
꽃으로 피어나던 사람도 없다
2005-09-10


새벽 기도 / 정호승

이제는 홀로 밥을 먹지 않게 하소서
이제는 홀로 울지 않게 하소서
길이 끝나는 곳에 다시 길을 열어주시고
때로는 조그만 술집 희미한 등불 곁에서
추위에 떨게 하소서
밝음의 어둠과 깨끗함의 더러움과
배부름의 배고픔을 알게 하시고
아름다움의 추함과 희망의 절망과
기쁨의 슬픔을 알게 하시고
이제는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리어카를 끌고 스스로 밥이 되어
길을 기다리는자의 새벽이 되게 하소서
2005-09-10


흐르는 서울역 / 정호승

선운사 동백꽃을 보고 돌아와
서울역은 붉은 벽돌 하나 베고 지친 듯 잠이 든다
나는 프란체스꼬의 집에 가서
콩나물비빔밥을 얻어먹고 돌아와
잠든 서울역에 라면박스를 깔고 몸을 누인다
잠은 오지 않는다
먹다 남은 소주를 병나발을 불고 나자
찬비가 내린다
동백꽃잎 하나가 빗물을 따라 플랫폼 쪽으로 흐른다
보고 싶은 사람은
흐르는 물과 같이 내버려두어도
언젠가는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게 되는지
한 미친 여자가 찬비에 떨다가
내게 입을 맞추고 옆에 눕는다
옷을 벗기자 여자의 젖무덤에서도 동백꽃 냄새가 난다
낡은 볼펜으로 이혼신고서를 쓰던 때가 언제이던가
헤어지느니 차라리 그대 옆에 남아
무덤이 되고 싶던 날들은 가고
다시 병나발을 불자 비안개가 몰려온다
안개 속에서 포크레인이 서울역을 끌고 어디로 간다
동백꽃 그림자가 눈에 밟힌다
2005-09-10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 정호승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사람을 멀리하고 길을 걷는다

살아갈수록 외로워진다는
사람들의 말이 더욱 외로워

외롭고 마음 쓰라리게 걸어가는
들길에 서서

타오르는 들불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면

어둠 속에서 그의 등불이 꺼지고
가랑잎 위에는 가랑비가 내린다
2005-09-10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언 땅에 그대 묻고 돌아오던 날
산도 강도 뒤따라와 피울음 울었으나
그대 별의 넋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 길을 멈추고
새벽이슬에 새벽하늘이 다 젖었다
우리들 인생도 찬비에 젖고
떠오르던 붉은 해도 다시 지나니
밤마다 인생을 미워하고 잠이 들었던
그대 굳이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2005-09-10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는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2005-09-10


막배를 기다리며 / 정호승

노을 지는 강가에 나가
막배를 기다리며
이제 기다릴 것은 다 기다렸으나
기다리는 막배가 오지 않았다
2005-09-10


너의 날개 / 정호승

푸른 하늘이 아니라도 좋다
햇살이 빛나는 눈물의
가을 하늘이 아니라도 좋다
너의 봄에는
별이 오지 않아도 좋고
너의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지지 않아도 좋다

너는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으므로
몰매를 맞고
사막의 언덕처럼
무릎을 꿇고 돌아왔으므로
가랑비도 내리지 않고
밤은 고요히 깊어갔으므로
어머니의 손길이
너의 가슴에 닿았을 때
너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으므로

푸른 하늘이 아니라도 좋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어둠이 내리고 별이 반짝여도
네가 날아가야 할
가을 하늘이 아니라도 좋다
2005-09-10


가을편지 / 정호승

가을에는 사막에서 온 편지를 읽어라
가을에는 창을 통하여
새가 날으는 사막을 바라보라
가을에는 별들이 사막 속에 숨어 있다
가을에는 작은 등불을 들고
사막으로 걸어가 기도하라
굶주린 한 소년의 눈물을 생각하며
가을에는 홀로 사막으로 걸어가도 좋다
가을에는 산새가 낙엽의 운명을 생각하고
낙엽은 산새의 운명을 생각한다
가을에는 버릴 것을 다 버린
그런 사람이 무섭다
사막의 마지막 햇빛 속에서
오직 사앙으로 남아 있는
그런 사람이 더 무섭다
2005-09-10


안개꽃 / 정호승


얼마나 착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깨끗하게 살았으면
죽어서도 그대로 피어 있는가
장미는 시들 때 고개를 꺾고
사람은 죽을 때 입을 벌리는데
너는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똑 같구나
세상의 어머니들 돌아가시면
저 모습으로
우리 헤어져도
저 모습으로
2005-09-10


마지막 편지 / 정호승

순아 오늘도 에미는 네가 보고 싶어
아픈 몸을 이끌고 역에 나갔다
와닿는 열차의 어느 칸에서고 네가
금방이라도 웃으면서 내릴 것 같아
차마 발길을 못 돌리고 에미는 또 울었다

남들은 다들 배우러 간다는데
원수놈의 돈을 벌어보겠다고
이른 새벽 종짓불 밝혀서 쑥국밥을 먹고
네가 고향을 떠나던 날
웬놈의 진눈깨비는 그렇게 뿌렸는지

처음엔 어느 곳 시다로 있다더니
곧 미싱사 보조가 되어 월급도 올랐다고
좋아라고 보내오던 네 편지
봉투째 부쳐오던 네 월급

이번 구정엔 틀림없이 에미 보러 온다기에
에미는 동네마다 옷장사를 나갔는데
눈 오는 시장바닥을 떠돌면서 기다렸는데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네가 먼저 가다니
이 에미를 남겨두고 네가 먼저 가다니

썰렁한 네 자취방 윗목에는
아직도 빈 라면 봉지가 나뒹구는데
순아 하늘에는 겨울에 무슨 꽃이 피더냐
이 겨울 하늘에도 눈물꽃이 피더냐
2005-09-10


기다리는 편지 / 정호승

서울에도 오랑캐꽃이 피었습니다
쑥부쟁이 문둥이풀 마늘꽃과 함께
피어나도 배가 고픈 오랑캐꽃들이
산동네마다 무더기로 피었습니다
리어카를 세워놓고 병든 아버지는
오랑캐꽃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물지게를 지고 산비탈을 오르던 소년은
새끼줄에 끼운 연탄을 사들고
노을 지는 산 아래 아파트를 바라보며
오랑캐꽃 한 송이를 꺾었습니다
인생은 풀과 같은 것이라고
가장 중요한 것은 착하게 사는 것이라고
산 위를 오르며 개척교회 전도사는
술 취한 아버지에게 자꾸 말을 걸고
아버지는 오랑캐꽃 더미 속에 파묻혀
말이 없었습니다
오랑캐꽃 잎새마다 밤은 오고
배고픈 사람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산그늘에 모여 앉아 눈물을 돌로 내려찍는데
가난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함께 가난을 나누면 된다는데
산다는 것은 남몰래 울어보는 것인지
밤이 오는 서울의 산동네마다
피다 만 오랑캐꽃들이 울었습니다
2005-09-10


슬픔을 위하여 / 정호승

슬픔을 위하여
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
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
첫아이를 사산(死産)한
그 여인에 대하여 기도하고
불빛 없는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그 청년의 애인을 위하여 기도하라.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하다.
나는 오늘 새벽,
슬픔으로 가는 길을 홀로 걸으며
평등과 화해에 대하여 기도하다가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저 새벽별이 질 때까지
슬픔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말라.
우리가 슬픔을 사랑하기까지는
슬픔이 우리들을 완성하기까지는
슬픔으로 가는 새벽길을 걸으며 기도하라.
슬픔의 어머니를 만나 기도하라.
2005-09-10


햇살에게 / 정호승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2005-09-10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 정호승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잠이든 채로 그대로 눈을 맞기 위하여
잠이 들었다가도 별들을 바라보기 위하여
외롭게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기 위하여
그 별똥별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어린 나뭇가지들을 위하여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가끔은 외로운 낮들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민들레 홀씨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인간을 위해 우시는 하느님의
눈물도 받아 둔다
누구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들의 집을
한번 들여다보면
간밤에 떨어진 별똥별들이
고단하게 코를 골며 하느님 눈물이
새들의 깃털에 고요히 이슬처럼
맺혀있다.
2005-09-10


가을 / 정호승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2005-09-10


정동진 / 정동진

밤을 다하여
우리가 태백을 넘어온 까닭은 무엇인가
밤을 다하여
우리가 새벽에 닿은 까닭은 무엇인가
수평선 너머로 우리가 타고 온
기차를 떠나보내고
우리는 각자 가슴을 맞대고
새벽 바다를 바라본다
해가 떠오른다
해는 바다 위로 막 떠오르는 순간에는
바라볼 수 있어도
성큼 떠오르고 나면
눈부셔 바라볼 수가 없다
그렇다
우리가
누가 누구의 해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서로의 햇살이 될 수 있을 뿐
우리는 다만
서로의 파도가 될 수 있을 뿐
누가 누구의 바다가 될 수 있겠는가
바다에 빠진 기차가
다시 일어나 해안선과 나란히 달린다
우리가 지금 다정하게
철길 옆 해변가로
팔장을 끼고 걷는다 해도
언제까지 함께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겠는가
동해를 향해 서 있는 저 소나무를 보라
바다에 한쪽 어깨를
지친 듯이 내어준
저 소나무의 마음을 보라
내가 한때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기대었던
그 어깨처럼 편안하지 않은가
또다시 해변을 따라
길게 벋어나간 저 철길을 보라
기차가 밤을 다하여
평생을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 형행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
평행을 이루어
우리의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기차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은 늘 혼자 남는다
우리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은 울지 않는다
수평선 너머로 손수건을 흔드는
정동진의 붉은 새벽 바다
어여뻐라 너는 어느새
파도에 젖은 햇살이 되어 있구나
오늘은 착한 갈매기 한 마리가
너를 사랑하기를
2005-09-10


소나기가 올때는 첫사랑을 시작하지 마세요 / 정호승

첫사랑이니까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거니까
소나기 내리는 한여름 날씨처럼 불안하니까
소나기가 그치면 사랑도 끝나지는 않을까
그런 필요없는 걱정을 하게 되니까

'첫사랑은 원래 이루어질 수 없는 거래'
이런 말들로 아무리 위로를 삼으려고 해도
해마다 여름만 되면
여름마다 소나기가 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나면

그곳에,
우리들이 처음 만난 그곳에
소나기를 피하러 온 사람들만
처음보는 사람들만
비를 맞아서 그런 건지 눈앞은 흐릿하기만

소나기가 올 때는 그애도 내 생각을 할까
고민만 하게 되니까
2005-09-10


종소리 / 정호승

사람은 죽을 때에
한번은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고
죽는다는데
새들도 죽을 때에
푸른하늘을 향해
한번은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고
죽는다는데
나 죽을 때에
한번도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길에 핏방울만 남기게 될까봐 두려워라
풀잎도 죽을 때에
아름다운 종소리를 남기고 죽는다는데
2005-09-10


내가 쓴 연애편지 / 정호승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별들이 하나씩 있지.
우리가 사랑 한다는 것은
서로의 가슴속에 있는
그 별을 빛나게 해주는 일이야.
밤하늘에 저렇게 많은 별들이 빛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별들이 많기 때문이야.
우리의 만남에는
어떤 절대자의 힘이 작용되었을 거야.
그건 분명해.
난 지금까지 널 만나기 위해
기다려왔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은 자기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게 가장 중요해.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데 따라서
인생이 달라져.
그동안 내가 어떤 부도를 만났느냐.
어떤 스승을 어떤 친구를 만났느냐 하는 것은
잘 알고 있어.
그런데 어떤 여자를 만날 것인지는
널 만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어.
이제 널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뻐.
정말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야.
우리는 무엇보다 중매로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는 한때 중매를 통하여
평생 같이 살 여자를 만나게 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던 적이 있어,
중매는 자칫 잘못하면 사랑의 바탕도 없이
조건적, 타산적, 이기적인 결혼으로
몰고 갈 위험이 다분히 있거든.
중매라는 형식 자체보다는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세속적인 모습이 나는 싫어.
나는 내 삶의 자유스러운 형태 속에서 운명적으로
한 사람을 만나게 되길 원했는데,
이제 널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
정말 신의 축복을 받은 거 같애.
우리들의 사랑에는 신의 축복이 있어야만 해.
나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널 사랑할 때와 사랑하지 않을 때와 세상 모든 것이
어쩌면 그렇게 달라 보일 수 가 있을까.
함께 오가던 집 앞의 골목길도,
버스정류장 앞에 모인 사람들도,
거리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도,
플라타너스 잎새에 스치는
한 줄기 바람과 햇살까지도
예전에 보고 느끼던,
그런 것들이 아니야.
심지어 시내버스가 내뿜고 가는 매연까지도,
쥐약 먹은 쥐들이 물을 찾다가
그대로 죽어 있는 시궁창까지도
내겐 아름답기 그지 없는 하나의 풍경이야.
그뿐만이 아니야.
버스를 타고 무악재 고개를 수 없이 오가면서 본
인왕산이 갖가지 형태의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도,
그 인왕산 너머로 펼쳐진 하늘이
청자빛처럼 곱고 푸르다는 사실도.
비가 오다가 갠 날 밤에는
인왕산 밤하늘에
유난히 달무리가 곱게 진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 밤하늘에 별이 많다는 사실도
난 너를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알게 되었어.
예전에는 밤하늘을 쳐다보아도
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널 사랑하고부터는
밤하늘에 왠 별들이 그렇게 반짝이던지...
우리의 사랑을 신념화해야 해.
릴케가 그렇게 말했어.
감정을 신념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건 인간의 감정만큼
변하기 쉬운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거야.
사랑의 감정도
변하기 쉽기 때문에 신념화하는 것만이
그 사랑을 변하지 않게 할 수 있다는거야.
사랑한다는 감정의 기초가 튼튼하면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적어도 우리한테는 말이야.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을 필요로 해.
우리는 서로 자라온
성장과정이나 환경, 형성된 성격이나 인격
삶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나
미래에 관한 꿈, 소망 등 모든 것이 다 달라 .
그런데 이렇게 다른 두 개체의 만남이
결혼까지의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또 어떠한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일까.
내 생각엔 무엇보다도 서로를 이해 할 수 있는
성실한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돼.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야.
이해할 수 없으면 사랑할 수도 없으니까.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에 대해
진실되지 않으면 안돼.
그래야만 그 진실을 바탕으로
서로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형성될 수 있는 거야.
서로 믿음 없이는 사랑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우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해.
사랑도 노력이야.
또한 용기이기도 하고,
어떤 죽음보다 강한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어.
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그런 열정적인 꽃들이 좋아.
너도 잘 알겠지만
개나리, 진달래, 목련, 매화 같은 꽃들이
바로 그런 꽃들이야.
다른 꽃들은 잎이 난 뒤에 꽃이 피는데,
유독 그런 꽃들만은 그렇지가 않아.
겨우내 꼭 죽은 것 같기만 하던
가지 어디에 그런 꽃들이
숨어 있었는지 정말 신비한 일이야.
나는 그런 꽃들을 볼 때마다
나도 그런 꽃들처럼
열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005-09-10


연어 / 정호승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떠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2005-09-10


당신에게 / 정호승

해질 무렵
서울 가는 야간열차의 기적소리를 들으며
산 그림자가 소리없이 내 무덤을 밟고 지나가면
아직도 나에게는
기다림이 남아있다

바람도 산길을 잃어버린
산새마저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
두 번 다시 잠들 수 없는 밤이 오면
아직도 나에게는
산새의 길이 남아 있다

어느날 찬바람 눈길 속으로
푸른 하늘 등에 지고 산을 올라와
국화 한 송이 내 무덤 앞에 놓고 간
흰 발자국만 꽃잎처럼 흩뿌리고 돌아선
당신은 진정 누구인가

어둠 속에서도 풀잎들은 자라고
오늘도 서울 가는 야간 열차의 흐린 불빛을 바라보며
내가 던진 마음 하나 별이 되어 사라지면
아직도 나에게는
그리움의 죄는 남아 있다
2005-09-10


개망초꽃 / 정호승

죽은 아기를 업고
전철을 타고 들에 나가
불을 놓았다

한 마리 들짐승이 되어 갈 곳 없이
논둑마다 쏘다니며
마른 풀을 뜯어 모아

죽은 아기 위에
불을 놓았다

겨울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붉은 산에 해는 걸려
넘어가지 않고

멀리서 동네 아이들이
미친년이라고 떠들어대었다

사람들은 왜
무시래기국 같은 아버지에게
총을 쏘았을까

혁명이란 강이나 풀,
봄눈 내리는 들판 같은 것이었을까

죽은 아기 위에 타오르는
마른 풀을 바라보며

내 가랑이처럼 벗고 드러누운
들길을 걸었다

전철이 지나간 자리에
피다 만 개망초꽃
2005-09-10


모닥불을 밟으며 / 정호승

모닥불을 밟으며 마음을 낮추고,
그대는 새벽 강변을 떠나야 한다.
떠돌면서 잠시 불을 쬐러온 사람들이,
추위와 그리움으로 불을 쬘 때에,
모닥불을 밟으며 꿈을 낮추고,
그대는 새벽 강변을 떠나가야 한다.
모닥불에 내려서 타는 새벽이슬로,
언제 다시 우리가 만날 수 있겠느냐.
사랑과 어둠의 불씨 하나 얻기 위해,
희망이 가난한 사람이 되기 위해,
꺼져가는 모닥불을 다시 밟으며,
언제 다시 우리가 재로 흩어지겠느냐.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불을 피우면
따뜻해지는 것이 눈물만이 아닌 것을,
타오르는 것이 어둠만이 아닌 것을,
모닥불을 밟으며 이별하는 자여.
우리가 가장 사랑할 때는
언제나 이별할 때가 아니었을까.

바람이 분다.
모닥불을 밟으며 강변에 안개가 흩어진다.
꺼져가는 모닥불을 다시 밟으며,
먼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은 모두 꿈이 슬프다
2005-09-10


너에게 / 정호승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 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 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옆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지평선이 되고 싶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이 되어
나는 너의 천국이 되고 싶었다.
200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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