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모습 / 문정희
유빙 사이를 떠돌던 배가
낡은 해안선에 당도하듯이
그가 내 앞에 뒷통수를 들이민다
누렇게 시든 갈대 숲에 검은 칠을 해달라고
송충이같이 꿈틀거리는 염색 솔을 쥐어준다
슬픔은 최고의 진리라
이윽고 여기에 도달했다
짐승들 뛰어노는 풍랑에서 살아남은
늙은 남자의 뒷머리에 염색을 하는 오후
노을의 갈피마다 먹구름이 자욱하다
위대한 삶이 겸허히 닻을 내리는 곳
이 곳에 이르기 위해
그 많은 해가 이글거리고
찬비 들이치고 바람 울부짖었을 것이다
(현대문학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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