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와 글 공부

<詩란..> R.M. 릴케

취몽인 2011. 6. 13. 19:26

 

 

 

 

  그리고 詩들. 아, 하지만 젊어서 쓴 詩란 별 것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기다려야 한다. 평생을 두고, 가능하면 오래 살면서

세상사의 의미와 달콤함을 주워 모아야 한다. 그런 후에라야 아마도 훌륭한 열 줄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詩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감정(그것을 예전에 족히 가졌었다)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詩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를 보아야만 하고, 새들이 날아가는 것을 느껴야만 하고, 작은 꽃들이 아침이면 만들어 내는 몸짓들을

알아야만 한다. 낯선 지방의 길을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기대치 못한 만남과 오랜 시간 후에 맞게 될 이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해명되지 않은 어린 시절, 아이를 기쁘게 하고도 이해를 받지 못했을 때 마음 상했을 것이 틀림없는 부모님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기쁨이었다), 너무나 심각하고 중대하게 변화하면서 아주 이상하게 시작하는 어린 날의 질병, 쥐죽은

듯 조용한 방에서 보낸 날들, 바닷가에서의 아침, 바다의 일반적인 광경들, 숱한 바다들, 바스락거리며 별과 함께 높이 날아간

여행의 밤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랑의 밤에 대한 추억과 산고의 외침에 대한

기억과 산고를 치른 뒤 가볍고 하얗게 잠든 산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죽어 가는 사람의 곁에도 있어야 할 것이고,

창문이 열려 잇어 이따금 덜컹거리는 방에서 죽은 사람 옆에 앉아 밤을 지새운 적도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추억을 가졌다고 해서

충분한 것도 아니다. 추억이 많다면 잊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추억이 되살아얼 때를 참을성있게 기다려야 한다. 추억 자체는 아직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이 우리 마음 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이 되고, 몸짓이 되어, 그 이름을 잃고 우리와 더 이상 나뉘어

지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아주 드물게 추억의 한가운데에서 詩의 첫 단어가 일어나 추억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게 된다.

 

 

--- 말테의 수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