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2013년 11월2일 Facebook 두 번째 이야기

취몽인 2013. 11. 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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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새롭게 해보겠다.
    시류를 따라 익숙하지 않은 이마쥬를 꺼내보겠다는 노력이 오히려 헛수고란
    생각을 하게 하는 시 한 편.
    내 나이에 맞게 내가 가장 잘 낼 수 있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옳으며 그것이
    나 외의 단 한 사람에게라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봅니다.
    늙어가는 아내에게/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의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 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은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 지성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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