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부재
반포를 지나며 그녀는 차창을 내린다
짐짓 눈을 내리깔고 얼굴을 밖으로 내밀며 긴 숨을 들이킨다
음, 그래 이 냄새야
벌써 느낌이 다르잖아
이거야말로 제대로 어울린 모습이지
지나는 사람들 걸음도 다르잖아
나는 이 곳에 있는 게 어울려
이수교차로를 지나 동작대로를 달릴 즈음까지 그녀는 창밖에 매달려있다
힐스테이트 롯데 캐슬이 빛난다 저 멀리 보이는 파스텔시티
나는 늘 저 길을 걸었어
나를 닮은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쇼핑을 하고
저 길 구석구석에 우리를 심었지
지금 이 냄새야말로 나의 오리지널리티라니까
나는 이 곳에 있는 게 어울려
강남순환도로 긴 터널을 지나자 불쑥 나타나는 산복도로
어느새 그녀는 차창을 닫고 눈 앞으로 달려드는 가을 산을 굳이 외면한다
특별히 남루하게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한 잎만 바라보며
여기는 싫어
기름진 향기가 없어
모든 게 죽은 빛이야
자연스럽다는 건 그저 누추함의 이름일 뿐
나는 이 곳에 있는 게 어울리지 않아
왼쪽은 제법 높은 산기슭 오른쪽은 벼랑에 솟은 아파트들
사이를 달리다 그녀는 옛 달동네에 들어선 오래된 아파트 주차장에 멈춘다
지겨워
이 무슨 어림없는 숲의 향기람
나와 어울리지 않아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니까
무엇보다 이 동네는 백화점이 없어
나를 충전할 방법이 없아 정말 미치겠다니까
여보 듣고 있어
2016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