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무인도를 위하여/신대철

취몽인 2019. 1. 8. 14:59

무인도를 위하여

 

 

개나리꽃이 피지 않는 걸 보고 봄을 기다린다

언 귀를 비빈다.

살아 남아야지,

개나리꽃이 피지 않는 걸 보고 봄을 기다린다.

할 말은 미리미리 삼키고

생수를 마신다.

바닥난 하늘을 본다.

흐림.

함박눈이 내리려나?

꼬리를 감춘 사람들이 얼핏 온화해 보인다.

 

1974년, 무죄?

제 죄명을 모르시다니요?

제 땅에 악착같이 살아 있잖아요?

제 땅에서 죽으려는, 죽을 죄를 졌잖아요?

무슨 소릴, 제 땅이라니? 이 땅은 공동 소유야. 넌 무죄야, 죄가 없어.

정말 죄가 없어요?

그렇다면 이 고마움 저 혼자 가져도 좋을까요?

 

무인도를 위하여

바닷물이 스르르 흘러 들어와

나를 몇 개의 섬으로 만든다.

가라앉혀라,

내게 와 죄짓지 않고 마을을 이룬 자들도

이유 없이 뿔뿔이 떠나가거든

시커먼 삼각 파도를 치고

수평선 하나 걸리지 않게 흘러가거라,

흘러가거라, 모든 섬에서

막배가 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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