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에 나온 시집.
삼십 년이 지났고
시인도
세상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 시절
올림픽에 들뜨고
내 첫딸이 태어났던 무렵의 세상도
시인의 눈에는
또다른 삼십 년전
온통 썩어 분에 찬 마음들
그때와 다르지 않은
이때를 분노하는구나.
지금은?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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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겨울
저 환호 소리 아우성 소리가
우리를 귀머거리로 만들고 당달봉사로 만들고
저 발구르는 소리 손뼉치는 소리가
우리 길 헷갈리게 하고 머뭇거리게 하고
길동무 뿔뿔이 헤어지게 만들고
그 사이 원수들은
쥐새끼처럼 살쾌이처럼 도망쳤던 원수들은
번득이는 총칼 새로 벼려 든 채
큰길에서 신바람나게 망나니 춤추는데
우리는 서로 손톱을 세워
동무들의 얼굴에 깊은 상처를 내고
돌아서는 야윈 어깨에 칼을 꽂고
원수들의 날나리 장단에
병신춤을 추는구나.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달려온 걸음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협박과
꼬임에 뒤뚱대면서 절뚝이면서
쓰러지면서 엎어지면서 달려온 걸음
그 어려운 걸음 되돌려진다는 걸 모르면서
올해 겨울은 춥구나,
따슷한 겨울이라서 더욱 춥구나,
무학여고 가까운 소줏집에 앉아
광장을 덮은 깃발을 거리를 메운 노래를
텔레비젼으로 보면서
혼자서 술을 마시는 저녁은.
아카시아 꽃냄새가 깔리던
삼십 년 전의 그 봄보다도 더욱 춥구나.
한강 백사장으로 가는 대신 학교 운동장에 앉아
외로운 사람의 목 쉰 얘기를 듣던
그 봄보다도 춥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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