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취몽인 2019. 2. 4. 14:29

 

88년에 나온 시집.

삼십 년이 지났고

시인도

세상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 시절

올림픽에 들뜨고

내 첫딸이 태어났던 무렵의 세상도

시인의 눈에는

또다른 삼십 년전

온통 썩어 분에 찬 마음들

그때와 다르지 않은

이때를 분노하는구나.

 

지금은?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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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겨울

 

 

저 환호 소리 아우성 소리가

우리를 귀머거리로 만들고 당달봉사로 만들고

저 발구르는 소리 손뼉치는 소리가

우리 길 헷갈리게 하고 머뭇거리게 하고

길동무 뿔뿔이 헤어지게 만들고

그 사이 원수들은

쥐새끼처럼 살쾌이처럼 도망쳤던 원수들은

번득이는 총칼 새로 벼려 든 채

큰길에서 신바람나게 망나니 춤추는데

우리는 서로 손톱을 세워

동무들의 얼굴에 깊은 상처를 내고

돌아서는 야윈 어깨에 칼을 꽂고

원수들의 날나리 장단에

병신춤을 추는구나.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달려온 걸음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협박과

꼬임에 뒤뚱대면서 절뚝이면서

쓰러지면서 엎어지면서 달려온 걸음

그 어려운 걸음 되돌려진다는 걸 모르면서

 

올해 겨울은 춥구나,

따슷한 겨울이라서 더욱 춥구나,

무학여고 가까운 소줏집에 앉아

광장을 덮은 깃발을 거리를 메운 노래를

텔레비젼으로 보면서

혼자서 술을 마시는 저녁은.

아카시아 꽃냄새가 깔리던

삼십 년 전의 그 봄보다도 더욱 춥구나.

한강 백사장으로 가는 대신 학교 운동장에 앉아

외로운 사람의 목 쉰 얘기를 듣던

그 봄보다도 춥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