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같이 영화보기 미션 계속...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절에 택시운전을 한 적이 있었다.
택시 일은 일주일은 새벽에 나가서 저녁까지 일 하고 다음 일주일은 저녁에 나가서 다음 날 새벽까지 일을 하는 이 교대로 이루어진다. 각각 주간근무, 야간근무로 불린다. 주간근무야 일반적인 노동시간에 해당되니 별 특별한 게 없고 야간근무는 밤을 꼬박 새워 운전을 하는 일이니 특별한 일들이 많았다.
자정 무렵 거리로 쏟아져 나온 손님들이 어느 정도 귀가를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밤의 세상이 거리에 펼쳐진다. 만취한 사람들을 드문드문 태우고 달리는 심야의 거리는 텅 빈 풍경 속을 진공의 상태로 달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았다. 뒤에 앉은 취객은 난폭한 동물이거나 썩은 시체(?)로 양분될 경우가 많았지만 가끔은 그 한 밤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 또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적막한 도로를 빈차로 달리면서 듣는 음악들은 평생 들어왔던 음악들과는 분명히 달랐고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밝아오는 새벽 속에 젖는 일도 특별했다. 아침은 매일 오지만 그 걸음을 매 순간 느끼는 일은 그리 잦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그렇게 밤의 세계는 내 인생에서 새로운 세계로 다가왔고 아직도 깊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
심야식당은 일본 영화다. 영화 시작 무렵 나오는 도시의 풍경으로 봐서는 도쿄 중에서도 신주쿠 번화가 뒷골목 어디쯤으로 보이는 곳에 있는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식당을 무대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마스터는 왼쪽 눈자위 위에서 아래로 길게 흉터가 남아있는, 그리 만만치 않은 삶의 이력을 가진 사내처럼 보인다. 그런 그는 좁은 식당 주방에서 투박 숙련된 칼질로 손님들을 위한 모든(?) 요리를 만들고 바처럼 직각으로 둘러진 식탁에는 잠들지 못하는 도시의 군상들이 그가 만든 요리와 술을 마시며 불완전한 심야의 삶과 드라마를 펼친다.
도시와 낮으로 상징되는 주류 사회와 뒷골목과 밤으로 상징되는 소외된 세계의 대비. 그 소외의 세계 속에도 가슴 뜨거운 삶과 정의는 분명히 있음을 영화는 묵묵하게 보여준다. 살 만한 세상이란 사람들이 부딪히며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를 모두가 잠든 밤에 한 그릇의 우동과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사람들이 들려주고 마스터는 그 세상을 신주쿠 뒷골목 좁은 식당에 펼쳐 놓았다.
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루를 마치고 잠들고 쉬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도 사람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이고 낮과는 다른 그 나름의 세계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는 주류의 뒷편에서 묵묵히 세상을 뒷받침하는 사람들이 있고 빛나고 화려한 낮 시간의 얼굴과는 다른 따뜻하고 서러운 표정들이 웃고 있다.
앞만 보고 걷는 삶 속에서 가끔은 뒤를 돌아봐야 한다. 당신의 발꿈치에 매달려 평생 땅에 끌리고 있는 그림자의 표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취한 당신이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을 때 겨우 설거지를 마치고 소주 한 잔으로 노동을 끝내는 술집 주인이 있음도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거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거리에서 듣는 음악의 엄청난 깊이를 경험해보기 바란다.
어제가 끝나고 오늘이 시작됐지만 아무도 그 시작에 참여하지 못하는 캄캄한 밤. 그 하루의 끝 같은 시작의 시간에 사람의 정신을 살찌우는 침묵의 향기, 두런두런 하는 마음의 소리, 그리고 소중한 슬픔이 있음을 이 영화는 말하고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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