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새로운 자유

라면의 경제학

취몽인 2020. 9. 7. 13:00
라면의 경제학


식탁 위에 놓인 라면 한 그릇.

몬타나의 휘트먼씨가 몬산토 농약을 쏟아가며 키운 밀이 디젤트럭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와 컨테이너선에 실려 1만킬로미터를 항해한 끝에 부산항에 도착해 박제민씨가 밀가루로 만들었겠지. 전기 모터로 돌아가는 제분기로. 김용달씨가 모는 트레일러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안성에 도착. 독일의 헤르만이 생산한 감자 가루와 말레이시아 살만씨 농장에서 딴 팜유를 만나 잘 섞였겠지. 어디서 왔는 지 알고싶지도 않은 변성전분, 난각칼슘, 정제 소금, 야채조미추출물, 산도조절제, 올리고녹차풍미액도 같이 버무려졌겠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가면서. 따로 타스마니아에서 제임스가 키운 소고기와 광저우에서 쟝양이 키운 고추가루 따위가 붉게 섞인 스프 봉지들이 도착하면 안성B05 박영아씨는 잘 튀겨진 라면을 박스에 담았겠지. 다시 고속도로로 국도로 라면은 디젤을 태우며 달려 우리 집앞 365마트 진열대에 놓였지. 선학표 알루미늄 냄비에 청호정수기 물을 넣고 귀뚜라미도시가스로 라면을 끓이고 김포의 양준알씨가 키우는 불면의 닭이 낳은 계란도 넣었지.

땀 흘리며 맵게 먹은 라면 한 그릇은 내게 500kcal의 마이너스 엔트로피를 남겼지.

이 미천한 내 한 끼를 위해 전 세계 수 백명이 농사를 짓고 배와 트럭을 몰고 1만 킬로미터를 달려오는 일. 기름과 가스와 물과 쏟아넣는 노동을 후르륵 먹는 일.

하, 인류가 위대하게 멸망하는 일.

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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