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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일을 새로 벌여 통 책을 읽지 못한다. 일년에 이백 권 정도의 책을 읽었는데 일주일 동안 시집 한권도 못 읽으니 오히려 신기하다. 이게 정상이지 싶다가도 괜스레 불안하다. 일종의 중독과 금단 현상이다.
그래도 읽고싶은 책은 세상에 자꾸 나오고 목록만 쌓인다. 그 중 한 권, 이 책. 나희덕시인이 쓴 예술의 주름들. 詩가 분명히 예술일진데 내가 쓰는 詩를 예술이라 여긴 적이 없다. 내게 예술은 아직 감상의 대상일뿐 창작의 대상은 아니다. 한마디로 수준 미달이다. 나희덕시인 정도면 분명 훌륭한 예술가다. 그의 詩를 읽으며 감동받은 적이 많으니 내겐 더욱 그렇다. 그가 보는 예술은 어떤 것인지, 예술의 세계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예술이란 무엇인지, 나도 언젠가는 예술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런지.. 뭐 이런 질문을 마음에 담고 책을 읽는다.
#休
오전에 개업 예배 드리고 온식구가 함께 점심 같이 먹고 집으로 돌아와 창밖에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다.
지난 한 달. 준비하느라 이래저래 바빴다. 끝도 없이 뭔가를 사고 여기저기 관공서도 다니고 교육도 받고.. 거기에 인턴일에 시민기자 취재에 기사작성에.. 통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나희덕시인의 이 책도 지난 5월말에 샀는데 이제 겨우 반쯤 읽었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다른 쟝르의 예술들. 영화, 사진, 음악, 미술 등의 작품에 담긴 예술가들의 내면 또는 시인의 가슴에 비친 그들 영혼의 목소리를 짧게 언급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시인의 그것들을 예술가의 주름들이라 이름 붙였다. 주름, 들뢰즈가 말한 그 주름과 이어진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내 짧은 소견으로는 예술작품이란 결국 예술가의 인생이 오래 주름져 새겨진 것들이란 의미일 것이라 생각해본다.
예술은 예술을 통해 깊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희덕시인의 폭넓은 예술적 안목은 부럽다. 그리고 겨우 언저리만 기웃거리는 내 안목이 새삼 초라하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좋은 시를 쓰고 나는 낙담만 거듭할 수 밖에 없나보다.^^
베란다 조금 열어둔 창틈으로 장마 비바람이 콘트라베이스 소리를 내며 들락거린다. 수많은 빗줄기는 그곁에서 창을 때리고 튕겨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 소리들이 좋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감자 찌는 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는 이 시간도 좋다. 모처럼 제 자리를 찾은 것도 반갑다.
아니다. 이제 내 자리는 여기가 아니다. 월요일부터 매일 아침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야 하니 내 자리는 저 비 내리는 바깥인가? 아무렴 어떤가. 가끔이라도 이렇게 쉬면 되지.
시인이 소개한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글렌굴드 연주로 한번 들어봐야겠다. 자코메티의 마른 발걸음 소리를 그 속에서 듣게 될 지도 모른다.
#나희덕 #예술의주름들
-#나희덕. . #마음산책.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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