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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대화, 들어보셨어요?

취몽인 2022. 3. 25. 09:28

오후에 비소식이 있는 금요일입니다.

오늘도 변함 없이 아침 일찍 나와 커피 한잔 하며 시 몇 편 읽습니다.

세상살이에 쫒기는 탓인지 그닥 마음에 닿는 시가 없습니다. 그런 날도 있는 법이지요.

책을 읽는 일도, 음악을 듣는 일도 어쩌면 대화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시인이, 작곡가가, 연주자가 내게 건네는 말을 듣는 것이지요. 물론 내가 그 말들에 대꾸를 하지는 않지만 입을 다물고 있어도 마음이 울리면 그 또한 대화가 아니겠습니까?

어제 페이스북 친구 한분이 목격한 상황을 옮겨놓은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 먹으러 들른 식당 옆 테이블에서 농아 친구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쓴 글이었습니다. 소리를 들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친구들끼리 수어로 수다를 떠는 상황이었나 봅니다. 손짓 발짓 그리고 표정으로 그 친구들은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무 소리도 없이요. 그 친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참 시끄러움을 느꼈다고 하네요. 기분나쁜 의미의 시끄러움이 아니라 소리없는 함성 같은 즐거운 시끄러움. 그 느낌이 참 새로웠던 모양입니다. 상상해보면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보청기센터에서 일을 하면 목소리가 커지게 됩니다.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분들과 상담을 해야하니 큰소리로 말을 해야하는 탓이지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상담하는 상대방의 목소리도 큽니다. 난청으로 소리를 잘 못 듣게되면 본인이 잘 못듣는 상황을 일반화하게 됩니다. 내가 잘 안들리니 상대방도 잘안들리겠거니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서로 고함을 치듯이 대화를 이어가게 됩니다. 옆에 가족이 같이 있으면 그분 또한 큰소리로 말합니다. 그래서 상담중인 보청기센터는 마치 말싸움을 하는 듯 시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집에서 연로하신 부모님의 대화 목소리가 예전보다 커졌다면 십중팔구 난청이 오신 경우가 많습니다. 오랜만에 들른 어머니 댁의 텔레비전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로 크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의 경우입니다. 모두 소리를 잃어가는 분들의 비명소리입니다.

농아인들은 아예 소리를 듣지 못하므로 오히려 특별한 변화는 없습니다. 하지만 난청인은 듣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니 상실감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상실감은 자칫 단절감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바뀌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자기 안에 가두고 마는 것이지요.

노인성난청은 계속 나빠지는 쪽으로 진행이 됩니다. 노부모님과의 대화 소리가 커졌다면 그 부모님은 소리를 자꾸 잃어버리는 중이란 걸 아셔야 합니다. 지금 바로 조치하지 않으면 언젠가 소리 없는 대화의 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보청기는 가장 확실하게 부모님의 소리를 지켜드리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