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교토우지시(京都-宇治市) 우토로(ウトロ)재일조선인 마을이야기 이 곳이 재일조선인 마을으로 형성된 것은 1941년 제2차세계대전 중 교토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본 정부에 의해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가 한바(노동자가 집단으로 합숙하던 가건물)를 만들어 생활하면서부터입니다. | |
조국을 떠나 우토로에 들어오게 된 경위는 다양합니다. 강제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왔다가 우토로로 흘러 들어온 사람, 일본군 징용을 피할 수 있다고 해서 노무를 선택한 사람,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거짓 선전으로 이주해 온 사람 등. 요컨대 총칼 앞에서 강제 징용 당하거나, 논밭을 빼앗기는 등 생계수단을 빼앗겨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도일해온 사람들입니다. | |
1945년 일본이 전쟁에 패망하자 비행장 건설은 중단되었고 많은 조선인들이 해방의 기쁨을 안고 자비로 일본을 빠져나갔지만, 조국에 친척도 집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사람들, 배 삯을 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그 후 이 곳 우토로 51번지는 현재 65세대 203명이 거주하는 일본의 마지막 강제징용 조선인 마을로 형성되었습니다. | |
우토로는 교토부의 토지였으나, 일본이 패전하자 토지 소유권은 닛산차체주식회사(닛산자동차 계열회사)로 계승되었습니다. 닛산차체는 토지를 우토로 주민회 회장에게 3억엔에 매각하였고, 주민회 회장은 또 다시 4억5천만엔에 부동산 회사 서일본식산(니시니혼쇼쿠산)에 전매하였고, 이후 1989년 강제퇴거에 관한 소송을 시작으로 2000년 현재 최고재판소의 최후 사법적 판단으로 우토로 주민은 철거를 하여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www.utoro.net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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