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신경림 <묵뫼>

취몽인 2009. 11. 3. 11:17

 

 

 

 

 

묵뫼

 

                                                     신경림

 

여든까지 살다 죽은 팔자 좋은 요령잡이가 묻혀 있다.

북도가 고향인 어린 인민군 간호군관이 누워 있고

다리 하나를 잃은 소년병이 누워 있다

등 너머 장터에 물거리를 대던 나무꾼이 묻혀 있고 그의

말 더듬던 처를 꼬여 새벽차를 탄 등짐장수가 묻혀 있다

청년 단장이 누워 있고 그 손에 죽은 말강구가 묻혀 있다

 

생전에는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이들도 있다

부드득 이를 갈던 철천지원수였던 이들도 있다

지금은 서로 하얀 이마를 맞댄 채 누워

묵뫼 위에 쑥부쟁이 비비추 수리취 말나리를 키우지만

철 따라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으면서

뜸부기 찌르레기 박새 후티새를 불러 모으고

함께 숲을 만들고 산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면서 서로 하얀 이마를 맞댄 채 누워

 

 

  * 묵뫼 : 오래 돌보지 않아 방치된 무덤

  * 물거리 : 땔나무의 하나.

     잡목의 우죽이나 굵지 않은 잔가지 따위와 같이 부러뜨려서 땔 수 있는 것들을 이른다.

  * 말강구 : "말강고" 의 다른 말, 쌀을 말로 담아 주며 구전으로 먹고 사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