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란 이름과 '악의 꽃'이라는 표제는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마치 떨어질 수 없는 연리지처럼 딱 들어 붙어 있는 느낌이다.
현대시의 원천으로 칭송받는 '악의 꽃'을 다시 읽어 본다.
저주와 모욕 속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독설의 상징을 쏟은 보들레르
그 권태에 지친 천재의 목소리를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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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내 청춘 한갓 캄캄한 뇌우였을 뿐,
여기저기 눈부신 햇살이 뚫고 비쳤네.
천둥과 비가 하도 휘몰아쳐 내 정원에는
빠알간 열매가 몇 안 남았네
나 지금 사상의 가을에 닿았으니
삽과 갈퀴 들고 다시 긁어 모아야지,
홍수가 지나며 묘혈처럼 곳곳이
커다란 웅덩이들 파놓았으니
누가 알리,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모래톱처럼 씻긴 이 흙 속에서
활력이 될 신비의 양분을 얻을지를
--- 오 괴로워라! 괴로워라! <시간>은
생명을 파먹고, 심장을 갉는 정체모를 <원수>는
우리 흘리는 피로 자라며 강대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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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
오랜 권태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마음 위에
무겁게 내리덮인 하늘이 뚜껑처럼 짓누르며
지평선의 틀을 죄어 껴안고, 밤보다도 더욱,
처량한 어두운 낮을 우리에게 내리부을 때
대지가 온통 축축한 토굴 감옥으로 변하고,
거기서 <희망>은 박쥐처럼 겁먹은 날개로
마냥 볃\ㄱ들을 두들기며, 썩은 천장에
머리를 이리저리 부딪치며 떠돌 때,
내리는 비 광막한 빗발을 펼쳐
드넓은 감옥의 쇠격자처럼 둘러칠 때,
더러운 거미들이 벙어리떼를 지어
우리 뇌 속에 그물을 칠 때면,
하늘을 향하여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니,
흡사 고향을 잃고 떠도는 정령들이
끈질기게 울부짖기 시작하는 듯.
--- 그리곤 북도 음악도 없는 긴 영구차 행렬이
내 넋 속을 느릿느릿 줄지어 가는구나.
<희망>은 꺾여 눈물짓고 잔인 난폭한 <고뇌>가
내 푹 숙인 두개골 위에 검은 기를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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