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피에르 신부 <단순한 기쁨>

취몽인 2010. 3. 20. 21:38

 

 

 

 

법정 스님이 돌아 가신 뒤 서점가에 '무소유'를 비롯한 스님의 저서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야단이다.

나 또한 '무소유'를 찾긴 매 한 가지였다. 분명히 사서 읽었는데 집 서가를 다 뒤져도 없다.

'오두막 편지'와 '산에는 꽃이 피네'가 생뚱맞게 두권씩 꽂혀 있다. 아마 누군가에게 선물로 줬을 터이다.

 

대신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 추천하신 내가 '사랑한 책 50권' 목록을 책상 앞에 붙여 놓고 한권 한권 읽어보기로 맘 먹는다.

마침 지난 주는 큰딸 하늬부터 사무실 송실장까지 생일을 맞은 사람이 넷이나 됐다.

생일 선물을 50권 중에서 골라 하기로 맘 먹고 칼린디의 <비노바 바베> 한 권,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 두권을 샀다.

그 중 하늬에게 선물로 준 <단순한 기쁨>을 되빌려 읽었다.

 

행동하는 신앙인.. 인간이 태어난 목적을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단언하는 노 신부의 목소리를 읽고

주말과 주일을 한결 무직하게 보낼 수 있었다.

 

50권을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 기존에 읽은 책이 겨우 두 권, 이번에 한 권, 앞으로 47권이다.

올해 안에 읽자! 괜한 다짐을 해 본다.    

 

 

삶이란 그것이 시작된 순간부터 우리에게 환상을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는 예쁜 것을

보면 그것이 불일지라도 다가가서 만지고 싶어한다. 그러다 손을 데면 다시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 아이는

환상을 품고 있다가 깨어난 것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삶은 점차 우리가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에 다가가도록

인도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열광(enthousiasme)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이스어로 ' en'은 '하나'라는 의미이며

'theos'는 '하느님'을 의미한다. 따라서 '열광하는 자'란 하느님과 하나 된 자를 말한다. 그런데 이 결합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환상으로부터 해방되어야만하는 것이다.

 

영생은 우리가 하나님과 합일된 충만함 속에 사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얘들아, 불행한 사람들을 보살필 자격을 갖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았지?"

 

나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 하느님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다. 그분은 존재 자체가 사랑이며, 그것이 그분의 본질을 이룬다.......

신자와 비신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들 간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유일한 신성 모독은 사랑에 대한 모독뿐이다.

 

세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 가장 힘센 자가 가장 힘 없는 자를 착취하려 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힘 없는 자를 아프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날 하늘나라는 이미 이 땅에 와 있음을 의미한다.

 

세 가지 확신, 1)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확신  2)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

                         3)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인간의 자유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확신

 

고통 받는 자들에게 충고를 하려 들지 않도록 주의 하자.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다만 애정어리고

걱정어린 몸짓으로 그 고통에 함께함으로써 우리가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그런 조심성, 그런 신중함을 갖도록 하자.

 

죽음이란 오랫 동안 늦춰졌던 친구와의 만남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