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소극적인 자유에서 적극적인 자유로 전진할 수 없는 한, 결국 자유로부터도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공부를 위해 에리히 프롬을 계속 읽는다. 철학과 심리학을 넘나드는 프롬 사상을 따라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인간은 일면 끊임 없이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에서는, 그것이 역사든, 사회 현상이든 오히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인식과 그 양태, 역사적, 사회학적 이유를 찾아가는 책인 것 같다.
'양심'이란 자기 스스로 마음 속에 끌어들인 하나의 노예 감독이다.
양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 소원과 목적을 따라서 행위하게끔 하고 있지만
그 소원과 목적이란 따지고 보면 외부의 사회적인 요구가 내재화된 것이다.
양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정하고도 잔인하게 쾌락과 행복을 금하여, 그 전생애를 통해 어떤 신비적인
죄과에 대한 속죄를 하게 한다.
-- 이는 프로이트의 超自我 이론과 상통하는 개념...
중세 사회의 전통적인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는 개인에게 새로운 독립의 감정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고립되어
있다는 감정을 주어 개인으로 하여금 회의와 불안에 사로잡히게 했고, 마침내는 새로운 형태의 복종 및 강제적이며
비합리적인 활동을 감행케 했다
새로운 성격의 특징은 본래 새로운 경제력의 위협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발달된 것이지만,
그것은 서서히 새로운 경제적 발전을 촉진 강화하는 생산적인 힘이 되어 간다.
-- 중세 종교개혁의 리더였던 루터와 캘빈이 주장했던 인간의 무력함, 그리고 신의 절대성, 그래서 인간은 오직 자신의 삶을
선하고 성실하게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는 등의 이론들이 결과적으로 근대 이후 자본주의를 촉진하는
심리적, 사회적 동인이 되었다는... 프롬의 시각.
언론의 자유는 '낡은' 속박에 대한 싸움의 마당에서 얻어진 중요한 승리이기는 하지만,
근대인은 '자기'가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대부분이 모든 사람이 역시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우리는 '여론'과 '상식' 같은 익명의 권위가 가지는 역할을 경시하고 있다.
-- 미키마우스에 담긴 현대인의 초상
작은 것이 압도적으로 강력한 것의 박해를 받아 위험에 처하게 된다. 강한 것은 작은 것을 죽이거나 삼켜 버리려고 한다.
작은 것은 도망치게 되는데, 결국은 도망에 성공하여 때로는 적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강력하고 밉살스러운 적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작은 것은 분명히 관객 자신이다.............. 사실상 관객은 공포와 함께 자신의 비소함을 신변에 느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구원을 받아, 강한 것을 정복합으로써 유쾌하게 된다............................ 그의 구제는 대체로 도망치는
능력과 예측할 수 없는 우연에 달려 있다. 거대한 것이 그를 붙잡지 못하는 것은 그 우연 때문이다.
근대인은 전통적 권위에서 해방되어 '개인'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는 고립되고 무력한 존재가 되고, 자기 자신이나 타인으로부터
분리되어 외재적인 목적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 더우기 이러한 상태는 그의 자아를 뿌리에서부터 위태롭게 하고 그를 약화 시키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 적극적인 자유는 능동적, 자발적으로 생존하는 능력을 포함해서 개인의 여러 능력의 충분한 실현과 일치된다.
자유는 그 자체의 다이나믹한 운동법칙에 따라 자유와 상반되는 것으로 전환하려는 위협을 받는 위험한 위치에 도달했다.
자유의 승리는..... 개인이 국가이건 경제기구이건 자기의 외부에 있는 어떤 힘에도 종속되지 않고 또한 그러한 것에 조종되지 않는
사회로 발달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조건은 소수이기는 하나 큰 경제력을 휘두르며, 그 결정으로 민중의 운명을 좌우하며, 민중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숨은 지배력을 제거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인간이 사회를 지배하여 경제기구를 인간의 행복이란느 목적에 종속시킬 때에만, 또한 인간이 적극적으로 사회과정에
참여할 때에만, 지금 그를 절망 - 고독과 무력감 - 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을 극복할 수 있다.
민주화를 거치고 자칭 민주주의 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로부터, 정치로부터, 교육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적어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 이유는 장하준 박사가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말한 것 처럼 전세계에 걸쳐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글로벌 파워엘리트들의 이기적
권위주의 등에 있음을 E. 프롬은 이야기 한다. 그들에 비해 개인은 너무나 무력하여 자유를 발전시키거나 고양하려하기 보다는
순응하고 나를 그 시스템 속에 집어 넣음으로써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자유로부너의 도피'의 핵심인듯 싶다.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당연하지만.^^
하지만 프롬이 제시하는 적극적인 자유를 되찾을 방도는 너무나 허약해 보인다. 인간 의지를 처음부터 조정하고 조작하는 폭력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혼자서 두눈을 크게 뜨고 정신 차려야 한다는 류의 방법은 참 답답한 것이 아닌가? 그 참의 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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