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폭력 창고

내가 싸우는 프로 야구

취몽인 2010. 4. 19. 16:44

 

 

 

 

 

 

해마다 4월이 오면 나는 장장 6개월에 걸친 기나 긴 싸움에 돌입한다.

 

누가 내게 월요일 하루 빼고 매일 저녁 마다 세시간씩 싸움을 하라고 하면 분명 완강히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녁마다 싸운다. 두 눈을 부릅 뜨고 두 주먹을 꽉 쥔채  상대를 때려 눕히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이겼을 때 잠깐의 도취와 졌을 때의 분노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 전투의 시간에 가족 중 누가 말이라도 건네면

거침 없이 화 또는 짜증을 쏟아내고 만다. 승부에 집중하는 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해는 사실 승부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 싸움은 엄밀히 말해 나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겨우 옆에서 용병들의 전투를 응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스포츠는 그저 즐기기만 할 대상인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집착을 하느냐고..

물론 나 자신의 성향 탓이기도 할 것이다. 약간의 겜블러 기질과 감정적 몰입이 지나친 성격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꾸로 스포츠 산업의 의도가 이런 성향을 적극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은 아닐까?

나같이 몰입히고 열광하는 관중이 없다면 프로로 대변되는 스포츠 산업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스포츠 산업은 대리 폭력을 상품화하고 그 폭력의 확대를 조장함으로써 그 파이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승리가 주는 기쁨은 의외로 작다. 반면  작은 희열의 뒷편에는 분노가 늘 웅크리고 있다.

패배에 따른 좌절과 분노는 더 큰 욕망에 대한 기대를 가슴 속에 심어 놓고  폭력의 규모를 쌓아 간다.

다음엔 이겨야 한다! 왜? 나의 팀이 진 것이 아니라 내가 싸움에서 졌기 때문에. 복수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는 과정 속에 참여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다.

 

저녁마다 그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간단하게 야구중계를 보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리모컨을 들고 그 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이미 그 폭력의 메카니즘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산업이 의도하는 결과가 이미 내겐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스포츠는 이제 증진의 도구가 아니라 소모의 도구, 대리 폭력 행사의 장, 그리고 그 폭력이 나를 구속하는 구조가 돼버렸다.

나는 프로야구로부터, 삼성라이온즈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