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정민 <漢詩 이야기>

취몽인 2010. 4. 28. 10:16

 

 

 

 

 

 

국문학자이자 한문학자인 정민교수가 딸에게 한시를 가르치는 형식으로 씌여진 漢詩 감상 또는 詩 작법 책

얼마 전 <다산어록청상>이란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시는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상 의미의 함축성이 남다른 것 같다.

문제는 한문에 익숙치 않아 도무지 원문으로는 감상이 어렵고, 해설 또는 번역에 기대어 감상을 해야하는 한계가 안타깝다.

언젠가 공력을 들일 시간이 허락되면 한문학을 공부해서 원래 한시 고유의 멋을 느껴보고 싶다.

 

년전에 아는 친구가 정민교수에 관한 이야기를, 아마 시를 이야기하는 중에 나왔던 것 같다,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 그때 들은 일화가 다시 이야기되고 있어 옮겨 놓는다. 글을, 또는 시를 쓸 때 잊지 말아야 할 가르침 같아서 이다.

 

 

    대학원생 시절에 논문을 써서 선생님께 보여 드렸다.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空山木落雨蕭蕭     텅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선생님께서는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내 자식이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

    무슨 말씀인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선생님은 원문의 빌 '空'자를 손가락으로 짚으셨다.

    "이게 무슨 글자지?"

    "빌 空자입니다."

    "거기에 '텅'이 어디 있어? 空山이면 그냥 '빈 산'이지, 왜 '텅 빈 산'이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빈 산' 하면 될 것을 '텅 빈 산'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나뭇 잎'이나 '잎'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냥 '잎'이라고 그래! '떨어지고'도 '지고'로 고쳐! '비는 부슬부슬'이라고 하면 충분하지,

   부슬부슬 올라가는 비도 있다더냐?"

    한참 정신을 못 차리게 야단치시더니, 이렇게 고쳐 주셨다.

 

         空山木落雨蕭蕭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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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서 글 쓰는 방법을 크게 깨달았다. 요점은 이런 것이다. 말을 아낄수록 좋은 글, 좋은 詩가 된다.

    자꾸 설명하려 들지 마라. 단지 보여 주기만 해라. ..... 좋은 詩는 절대로 다 말해 주지 않는다.

 

옳은 말이다. 우리 말에는 유난히 형용사, 부사가 많다. 그 많은 형용사, 부사를 주렁주렁 달아 무슨 드레스처럼 문장을 만들어야

좋은 글인 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 수가 딸려서 그렇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오래 전 글을 처음 쓰고자 했을 때, 그때는 단편이었다., 김동인의 단문 형식을 참 좋아 했었다. 짤막짤막한  문장 속에 담긴

의미의 함축과 간명한 호흡이 좋아서 였다. 그때는 그렇게 쓸려고 흉내도 많이 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되지 못할 미사여구의 화장발에 집착하는 모습을 스스로 발견할 때가 많다.

화장을 지우고 울림을 말 해야 할텐데..................................

 

말을 아낄수록 좋은 글, 좋은 시가 된다.... 좋은 시는 절대로 다 말해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