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아빠 / 실비아 플라스

취몽인 2011. 11. 29. 15:42

 

 

 

 

 

아 빠    

  

 

                             실비아 플라스(1932~1963)

 

 

이젠 안돼요, 더 이상은

안될 거예요. 검은 구두

전 그걸 삼십 년간이나 발처럼

신고 다녔어요. 초라하고 창백한 얼굴로.

감히 숨 한 번 쉬지도 재채기조차 못하며.

 

아빠, 전 아빠를 죽여야만 했었습니다.

그래볼 새도 없이 돌아가셨기 때문에요-

대리석처럼 무겁고, 神으로 가득찬 푸대자루,

샌프란시스코의 물개와

아름다운 노오쎄트 앞바다로

 

강낭콩 같은 초록빛을 쏟아내는

변덕스러운 대서양의 갑처럼 커다란

잿빛 발가락을 하나 가진 무시무시한 조상.

 

전 아빠를 되찾으려고 기도드리곤 했답니다.

아, 아빠.

 

전쟁, 전쟁, 전쟁의

롤러로 납작하게 밀린

폴란드의 도시에서, 독일어로.

하지만 그런 이름의 도시는 흔하더군요.

제 폴란드 친구는

 

그런 도시가 일이십 개는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전 아빠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뿌리를 내렸는지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전 결코 아빠에게 말할 수가 없었어요.

혀가 턱에 붙어 버렸거든요.

 

혀는 가시철조망의 덫에 달라붙어 버렸어요.

전, 전, 전, 전,

전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전 독일 사람은 죄다 아빤 줄 알았어요.

그리고 독일어를 음탕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유태인처럼 칙칙폭폭 실어가는

기관차, 기관차.

유태인처럼 다카우, 아우슈비츠, 벨젠으로.

전 유태인처럼 말하기 시작했어요.

전 유태인인지도 모르겠어요.

 

티롤의 눈, 비엔나의 맑은 맥주는

아주 순수한 것도, 진짜도 아니에요.

제 집시系의 선조 할머니와 저의 섬뜩한 운명

그리고 저의 타로 카드 한 벌, 타로 카드 한 벌로 봐서

전 조금은 유태인일 거예요.

 

전 언제나 아빠를 두려워했어요

아빠의 독일 空軍, 아빠의 딱딱한 말투,

그리고 아빠의 말쑥한 콧수염

또 아리안족의 밝은 하늘색 눈,

기갑부대원, 기갑부대원, 아, 아빠-

 

神이 아니라, 너무 검은색이어서

어떤 하늘도 비걱거리며 뚫고 들어올 수 없는 十字章

어떤 여자든 파시스트를 숭배한답니다.

얼굴을 짓밟은 장화, 이 짐승

아빠 같은 짐승의 야수 같은 마음을.

 

아빠, 제가 가진 사진 속에선

黑板 앞에 서 계시는군요.

발 대신 턱이 갈라져 있지만

그렇다고 악마가 아닌 건 아니에요, 아니,

내 예쁜 빠알간 심장을 둘로 쪼개버린

 

새까만 남자가 아닌 건 아니에요.

그들이 아빠를 묻었을 때 전 열 살이었어요.

스무 살 땐 죽어서

아빠께 돌아가려고, 돌아가려고, 돌아가 보려고 했어요.

전 뼈라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침낭에서 끌어내

떨어지지 않게 아교로 붙여버렸어요.

그리고 나니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었어요.

전 아빠를 본받기 시작했어요.

고문대와 나사못을 사랑하고

 

'나의 투쟁'의 표정을 지닌 검은 곳의 남자를.

그리고 저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그래서, 아빠, 이제 겨우 끝났어요.

검은 전화기가 뿌리째 뽑혀져

목소리가 기어나오질 못하는군요.

 

만일 제가 한 남자를 죽였다면, 전 둘을 죽인 셈이에요.

자기가 아빠라고 하며, 내 피를

일년 동안 빨아마신 흡혈귀.

아니, 사실은 칠년만이지만요.

아빠, 이젠 누우셔도 돼요.

아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혔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조금도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춤추면서 아빠를 짓밟고 있어요.

그들은 그것이 아빠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어요.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제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