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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 신춘문예를 위한 열 가지 레시피

취몽인 2011. 12. 15. 23:11

 

 

신춘문예를 위한 열 가지 레시피

(http://poetry.tistory.com 님이 직접 올린 글입니다.)

 

 

신춘문예의 계절이 다가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지새우며 막바지 퇴고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밤은 유난히 길고 고통스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희열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게 신춘문예만이 가진 매력이다. 나는 십년 가까이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지독하게도 미끄러졌다. 그리고 신춘문예가 아닌, 문예지로 등단이라는 것을 했다. 충분히 기뻤지만,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당선 통보가 오는 신춘문예보다 덜 기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후배들과 스터디를 한다. 그들에게 매번 말하는 것들이 있다.

 

신춘문예란 이런 것이다, 혹은 좋은 시란 이런 것이다, 이런 종류의 말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신춘문예 응모에 대한 요령이다.

 

좋은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시가 다른 이유 때문에 라면박스에 들어간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가 사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그릇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시, 산문과 다름없는 글을 행만 나눈 시, 행을 나누어도 될 것을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산문시 형식을 부득부득 고집한 시, 굳이 시라는 형식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엉성하게 시의 외피를 입혀 놓은 시,

상투적인 관념어와 생경한 외래어를 남발하고 있는 시, 낯선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쓸데없이 멋을 부린 시, 신춘문예의

 이러저러한 유형을 흉내 내는 데 골몰하느라 자신만의 목소리가 없는 시, 표지며 원고 구성에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은 시―

내가 라면박스에다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시들이다. 안도현(시인·우석대 교수)

 


1. 작품만큼 중요한 게 편집이다.

2005년 세계일보 예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안도현 시인의 예심평을 읽어보면, ‘표지며 원고 구성에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은 시’라는 말이 있다.

심사위원들은 수천 편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노동을 견뎌야 한다. 편집이 엉망인 작품들은 작품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작품을 편집을 할 때는, 시집이나 잡지의 편집 스타일을 따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작품에 어울리는 폰트(명조체 스타일)를

구해서 가독성을 늘려야 한다. 작품이 약간 부족하더라도 좋게 느껴지는 현상을 느낄 수 있다.


2. 산문시를 멀리하자.

시의 경우, 보통 3~5편을 응모한다. 그 중 가장 첫 번째로 두는 작품을 보통 ‘타이틀작’이라고 부른다. 나는 후배들에게 이 타이틀작을 산문시로

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산문시가 등단작으로 뽑히는 경우는 대부분이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을 뽑은 것이라고 말한다. 타이틀 작품은 행시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기본실력을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행갈이는 응모자의 내공을 판단하게 해준다. 그렇다고 상투적인 작품을 내라는

것은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참신한 작품이 필요하다. 기본기가 잘 닦인 대작을 준비해야 한다. 좋은 타이틀 작이 있는 사람은 다른

 작품들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뽑히는 경우가 있다.

 
3. 사회이슈를 피하자.

사회이슈를 소재로 활용하여 시를 쓰는 것은 신춘문예 낙방의 지름길이다. ‘연평도’, ‘천안함’ 이러한 국가적 사건들을 예를 들어보자.

소재 자체가 가진 힘을 시로 옮긴다고 하여 그대로 옮겨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근본적인 사회 문제들을 소재로 다룬 시들이 당선이 된다.

‘청년실업’, ‘가족문제’, ‘외국인 노동자’ 이런 이야기들은 최근 신춘문예에서 유행처럼 당선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를 피하는 게 이번 신춘문예 당선의 지름길이 아닐까? 가장 좋은 소재는 자신의 이야기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노래할 때,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나온다.


4. 신춘문예 스타일은 없다.

문청들 사이에서는 ‘신춘문예 스타일’이라는 말이 오고간다. 비슷한 말로 ‘신문사 스타일’이라는 말도 있다. 신문이라는 특정한 매체,

1월 1일이라는 특정한 시간 때문에 신춘문예는 희망을 노래하거나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이 주로 뽑혔기 때문이다.

또한, 한 심사위원이 여러 신문사의 심사위원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신문사 스타일’이라는 말도 생겼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스타일의 문제는 옛이야기다. 없다고 확실하게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근래에 뽑힌 작품들을 보면 ‘신춘문예 스타일’이라는 말은

이제 사라져도 된다고 생각된다. 단, 신문사 별로 심사위원이 고정되거나 순환하는 경우가 있어, 심사위원들의 성향을 알아보는 건

‘아주 조금’ 필요하다. 나는 그것도 공부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열을 올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좋은 작품은 당선되기 마련이다.


5. 유행하는 시들은 멀리하자.

신춘문예 당선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어라? 비슷하네.’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시단에서 유행하고 있는 시풍들을 따라서 시를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온전히 자기 작품’을 추구하는 작품을 쓰라고 하고 싶다. 당선되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비슷한 경향의

시들 사이에서 자신의 작품이 빛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단에서 유행하는 시의 경향에서 과감하게 멀어질 필요가 있다.

자시만의 영역을 등단 전부터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6. 누가 뭐래도 좋은 작품이다.

신춘문예가 운발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절대적으로 동감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이 예심을 통과하고, 본심 심사위원에게

가는 것이다. 모든 심사위원들은 좋은 작품을 뽑고자 한다. 자신의 명예가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은 언제나 환영을 받는다.

 아, 이게 대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퇴고를 해보자. ‘표절한 작품’ 혹은 ‘어떤 시와 비슷한 작품’은 절대로 보내면 안 된다.

평생 ‘표절작가’라는 딱지를 달고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8. 딱 그만큼만 보내자.

신문사에서 원하는 분량, 딱 그만큼만 보내자. 작품이 많다고 작품이 좋은 건 아니다. 좋지 않은 한 편 때문에 낙방되는 불운을 겪을 수도 있다.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뽑아, 그 작품들을 보내자.


9. 쓰러질 때까지 퇴고를 해보자.

마침표 하나까지도 신경 써가면서 퇴고를 해야 한다. 쓰러질 때까지, 수백 번 퇴고를 해야 한다. 퇴고를 할 때는 내 시를 퇴고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것을 퇴고 해준다는 심정으로 퇴고를 해야 한다. 내 작품을 사랑하면 절대로 안 된다. 어차피 내놓은 작품은 본인의 것이 아니다.

문학이라고 썼으면, 그것은 독자의 것이다. 내 작품이 아니니까, 사랑하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퇴고를 해야 한다. 시를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타인의 눈으로 봤을 때, 어떤 게 걸리는 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귀가 너무 얇으면 안 된다. 적당한 고집이 필요하다.


10. 도움되는 책을 옆에 두자.

나는 시를 쓸 때, 다른 시인의 시를 읽지 않는 편이다. 괜히 불필요한 생각들이 들어 시를 쓰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춘문예 준비를

할 때는 도움이 된다. ‘미당시문학상 수상작품집’,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현대시문학상 수상작품집’ 같은 수상 작품집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학상을 받은 시인들의 작품, 본선에 오른 시인들의 작품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의 시를 흉내내지 말고,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물론 ‘신춘문예 당선시집’도 옆에 끼고 시를 쓰는 게 좋다. ‘신춘문예 당선시집’ 같은 경우에는 당선작품보다 심사평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정도가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등단 욕심에 눈 먼 사람들이 하는 짓’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을 지킬 때, 신춘문예도 가까이 다가온다. 아무리 그래도 좋은 작품이 정답이다. 좋은 작품만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길이다, 라고 생각해야 한다.

작품을 보낸 후, 일주일이면 연락이 온다. 늦어도 크리스마스이브까지는 연락이 온다. 그동안 가슴께는 심하게 두근거릴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12월 31일이 되도, 혹시 몰라 연락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02가 찍힌 전화번호가 핸드폰 액정에 뜨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1월 1일,

신문을 확인하며 심사평에 올랐을지도 모르는 본인의 이름을 꼼꼼하게 살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서야 신춘문예의 계절은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