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의 시 / 김영현
나는 아직 그 누구에게도 경의를 표했거나
경의를 표할 마음도 없지만
이 짝눈의 늙은 시인에겐 귀싸대기 한 대쯤
기꺼이 맡겨도 좋으련.
비장과 고통의 극치에서 터져나오는
그의 불꽃같이 현란한 은유 앞에,
양동 지게꾼 출신인 그의 무거운 등짝에 실려
여러가지 둥둥 떠 온 불안한 세상의 무게 앞에,
그의 시를 절세 고수의 칼날처럼 번쩍이게 하는
저 광기 어린 외로움의 숫돌 앞에,
그리하여 온몸으로, 온몸으로,
시를 밀어 온 그의 전 생애 앞에,
겸손히 머리 숙여 처분을 기다려조 좋으련.
언젠가 밤 열두 시 인사동에서 나는
만취한 그를 보았고
촌스러운 은이빨을 드러내고 떠드는 그의 소리를 들었고
황급히 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달아났지만
이제 나는 그를 위하여
다른 뭇 시인들을 경멸하여야 하리.
장담컨데,
내 명예와 돈을 걸고 장담컨데,
(별 거 없긴 하지만)
이 머리카락으로만 앓고 있는 꽃들이 지고 나면
이를테면 천재들의 우스꽝스런 가면이 떨어지고 나면
훗날
하나의 흔적만이 남으리니
사람들은 그것을 김신용의 시라고 부르리라.
- 김영현 시집 < 그후, 일테면 후일담 > 2005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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