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의 즐거움
양문규(시인)
한국 현대시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이는 시를 사랑하고 시를 아끼는 독자들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즉 시 읽기의 즐거움이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며, 시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소통되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상생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지 그지없다.
시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동인은 어디에 있는가. 시를 읽는 즐거움이 크게 작용하는 요인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삶과 실재된 구체적 살림살이의 정황을 풍요로운 언어를 통해 빚어낸 시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는 우리에게 감동을 줄뿐만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어 영원성을 갖는다. 그럼 그런 시를 읽는 즐거움을 찾아나서 보자.
먼저 백석 시를 만나보도록 한다. 그의 시는 참으로 풍요로운 언어의 숲을 이루고 있다. 그가 쓴 시들은 요즘 우리 시단의 대다수 시인들과는 달리 공동체적 언어를 빈번하게 운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시어들은 민족 공동체의 따스한 정감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 백석은 그러한 시어를 사용하여 관념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실재적인 삶의 양식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
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 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新里 고무 고무의 딸 李女 작은李女
열여섯에 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 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가까이 사는 土山 고무 고무의 딸 承女 아들 承동이
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山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 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洪女 아들 洪동이 작은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촌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
나물과 뽂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 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 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 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 를 멫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멫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 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홍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백석, 「여우난골族」 전문
위의 시「여우난골族」은 4연의 산문체의 시다. 시적 내용은 명절날의 정겨운 풍경을 어린이의 시각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명절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큰집에서의 가족 모임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식민지 치하의 삶의 과정에서 볼 때 가족 구성원의 풍요로운 삶의 동경은 바로 민족 공동체의 결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의도하는 시적 세계는 식민지 이전 민족 공동체적 삶의 화해로운 세계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는 그의 민족 지향적인 시 창작 방법의 원리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빚 얘기
약장수 기타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신경림, 「파장」 전문
이 시는 신경림의 초기 시편 중에서 「농무」와 더불어 가장 빼어난 시로 찬사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서정과 서사, 서경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소외 계층의 삶의 세목들을 구체적으로 묘파해내고, 공동체 의식을 시의 행간 속에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시속에 숨어서 드러나 있지 않지만 ‘못난 놈들’과 함께 하면서 시골 장터의 풍물을 객관적으로 그려낸다. ‘못난 놈들’에 대한 정서의 결속력은 우리의 삶의 원형인 공동체 의식을 드러낸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물질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전통적 삶의 덕목인 우리의 공동체 의식이 해체되면서 그 자리에는 일회적이고 소비적인 문화가 들어선다. 그러나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민중들의 모습을 공동체 의식으로 육화한다. 시골 장터의 단순한 풍물 묘사나 넋두리 차원의 묘사가 아닌 삶의 구체적 실상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드러낸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에서 드러나듯이 쓸쓸함 속에서도 따뜻한 정감이 선명하게 배어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전체적인 시적 전개가 평이한 진술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고도의 압축과 절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굵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
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문태준, 「역전 이발」 전문
문태준의 시편들은 대부분 ‘사라져간 것’, ‘낡은 것’, ‘사라져갈 운명에 놓인 것’ 등의 오래된 것들을 시적 모티브로 삼는다. 그것은 어쩌면 빛바랜 흑백사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흑백사진은 문태준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인용시의 밑바탕에도 그것이 깊게 처해 있다.
이 시는 이발소를 소재공간으로 활용하여 유년의 행복했던 삶의 여정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역전 이발’의 간판은 곱사등이 이발사의 내력을 함의하는 단적인 물적 토대이다. 뿐만 아니라 산동네에 갇혀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외부지향적인 욕망을 소통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중요한 사실은 역전 이발소를 통해 시적 화자가 대단히 자족했던 어린시절을 재구한다는 사실이다. 앞서 밝혔듯이 이 시는 현실지향적인 어떠한 것들이 개입되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이발소를 통해 두 가지 장면을 추억한다. 하나는 머리를 깎고 나서 곱사등이 이발사가 머리를 감겨주는 것으로, “머리통을 박박 굵어주는”행위가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으로 전이시키는데 있다. 또 하나는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들켜선 헤헤헤 웃는” 행위이다. 하여튼 이발소는 보잘것없는 허름한 공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공간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따라서 곱사등이 이발사는 “구정물에 담긴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문태준은 「역전 이발」의 자족했던 공간을 통해 행복했던 유년을 재구하고, 우리는 그의 시편들을 통해 잃어버렸던 소중한 그 무엇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전문
그늘이라는 말
참 듣기 좋다
그 깊고 아늑함 속에
들은 귀 천 년 내려놓고
푸른 바람으로나
그대 위해 머물고 싶은
그늘이라는 말
참 듣기 좋다
―허형만, 「그늘이라는 말」 전문
하늘 받든 은행나무는 안녕하신지?
햇살 푸지도록 환한 날
다시 천태산 영국동(寧國洞)으로 든다
은행나무는 낮고 낮은
골짜기를 타고 천 년 동안 법음 중이다
해고노동자, 날품팔이, 농사꾼
시간강사, 시인, 환경미화원
노래방도우미, 백수, 백수들……
도심 변두리에 켜켜이 쌓여 있는
어둠이란 어둠,
울음과 울음의 바닷속을 떠돌던
사람이란 사람 모다 모였다
가진 것 없어 정정하고
비울 것 없어 고요한
저 은행나무 그늘이 되고 싶은 게지
하늘을 닮아가는 아버지도
밭둑가 구름이 드리운 그늘에
잠시, 고단한 몸 풀고 있을 것이다
모든 그늘 속에서 쉬는,
키가 큰 만큼 생이 깊은
천태산 은행나무 아직도 법음 중이다
―양문규, 「그늘 속에는」 전문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 받는 시편의 동인은 어디에 있겠는가. 이는 무엇보다도 풍요로운 언어, 삶과 실재된 구체적 정황들을 시로 빚어냈기 때문이다. 이들 시편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아련한 추억을 제공한다.
문학이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언어로 창조하는 행위지만, 요즘 우리 시들은 알맹이가 빠진 속 빈 강정처럼 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시를 이루고 있는 언어가 남발되는 관념어들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시의 위기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언어의 궁핍, 관념어의 남발에서 오는 공식적인 문화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신경림 시인은 요즘 우리 시의 경향에 대해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내용을 주절주절 혼잣말처럼 지껄이는 시,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시가 좋은 시의 표본으로 내세워져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고 토로한 적이 있다.
시는 우리의 정신과 사물을 연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언어를 사용하며, 사실을 보다 더 사실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가치화된 언어를 활용하는 것이다. 삶의 실재와 밀착된 언어를 통해서 구체적인 삶의 결을 형상화시키는 것은, 옳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우리 시의 왜소화를 막고 위기에 처한 현대시를 구하는 대안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시인들은 극단적으로 도시적 삶만이 현대적이라 믿고 이를 좇아가기에 분주하다. 그리고 언어의 불확실성을 주장하며 삶과 유리된 언어, 이미 생기를 잃은 기호화된 언어로 구축된 시들이 더욱 새로운 시들이라고 박수를 받는다. 이러한 때 우리는 삶이 묻어나는 좋은 시를 만나 시 읽는 즐거움에 한껏 취해보자.
* 충북 영동 출생.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문학 박사).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집으로 가는 길』. 『식량주의자』. 산문집 『나무도 큰 당신』. 논저 『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등. 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총무국장. (주) 실천문학 기획실장. 대전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현재 계간 『시에』 편집주간. 천태산은행나무를사랑하는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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