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끝 [성미정]
무덤에서 돌아오는 길에 먹은
김밥 몇 개 얹혀서
손가락 끝을 바늘로 따니
붉은 눈물이 손가락 끝에
피어난다
언제부터인가 어스름한 저녁이면
명치끝이 더부룩해진다
한 시절 다정했던 그대들
청천벽력처럼 이별했던 그대들
명치끝에 오글오글 모여 산다
모두 잊겠다고 잊고
나 살아보겠다고
침을 섞어 밥을 꼭꼭
씹어 먹어봐도 소용없다
남 몰래
이 웬수야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내가 어찌 너를 잊을까
그대들 명치끝에
나 또한 기거했으므로
기꺼이 나의 명치를 내어주리라
어스름한 저녁이면 명치끝
그대들을 쓰다듬으며
때로는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며
나 살아가리니
그대들 아직은
나의 명치끝에서 나와 함께
오래오래 다정하라
* 사랑에 가장 민감한 곳은 명치끝일 게다. 사랑이 통하지 않으면 밥통부터 막힌다. 밥통이 막히면 피가 돌지 않는다. 손가락을 따야 검붉은 피가 빠져나오고 비로소 피가 돈다. 위내시경을 별도로 받겠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아, 사랑이 통하지 않는 중이구나, 알겠다. 하긴 나도 몇년전에 위내시경을 몇번 받은 적이 있다. 생감자를 먹어도 소용없고 노루모를 먹어도 소용없다. 사랑은 그저 명치끝에서 오래오래 다정하게 함께 해야 살 수 있다. 다정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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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OOFE HOUSE
글쓴이 : JOOF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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