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늘
詩 박주하
당신의 명치끝에 방이 하나 있습니다
정작 당신은 그 방으로 오는 길을 모르고
슬픔을 세놓으려 한 적 없지만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방에 들어가
평화롭게 저물곤 했습니다
당신의 숨소리가 흰 띠를 타고 내려와
벽을 더듬거릴 때면
행여 내가 당신 몸속에서
너무 오래 살고 있진 않나
와락 눈물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출구를 봉한 내게
근심이 머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영원히 알아채지 못했을 그 방에서
오늘 새벽 세찬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귀를 허물며 들려오는 빗소리
그것은 당신의 울음소리였습니다
그 소리가 너무도 길고 무거웠으므로
나는 가만히 일어나 오래오래
온몸으로 번진 자줏빛 멍을 핥았습니다
육체는 운명이 아니라지만
몰락이 이리도 깊은 까닭에
나는 죽은 칼을 들고 천천히 일어섭니다
당신의 명치 끝을
도려내야 할 때가 기어이 온 것입니다
* 박주하 시집 ≪숨은 연못≫ (세계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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