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 [박준]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 대여섯살의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영리해져서 꾀를 부리기 시작한다.
아프지 않은데 아프다고 하면 엄마는 손으로 이마를 만진다.
이때 엄마의 사랑이 이마를 통해 온몸으로 느껴진다.
때로는 거친 아빠의 손이 이마를 만져도 사랑이 느껴진다.
그 느낌이 생각나면 꾀병을 앓게 된다.
나도 어렸을 땐 꾀병을 부렸다.
병의 근원인, 콜라처럼 탁 쏘는 맛과 시원한 느낌의 가스활명수가
먹고 싶어서 배가 아프다는 꾀병을 내세웠다.
엄마가 알면서 속아준 걸까. 가끔 가스활명수를 먹었다.
출처 : JOOFE HOUSE
글쓴이 : JOOF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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